▣ 독서의 힘으로 성공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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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 |
인쇄공 할아버지가 남긴 위대한 유산-움베르토 에코 (1932년~2016년)
움베르토 에코는 기호학(記號學)의 세계적 귄위자다. 기호학의 사전적 의미는, ‘기호를 지배하는 법칙과 기호 사이의 관계를 규명하고, 기호를 통해 의미를 생산하고 해석하며 공유하는 행위와 그 정신적인 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우리가 쓰는 언어 문자, 그리고 상형 문자, 거리의 표지판, 간판, 지도의 약호, 점자 등이 모두 기호이다. 기호학은 기호 작용에 관한 학문이다. 기호작용이란, 인간들이 문자를 포함한 어떤 상징으로써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으며, 서로 의사를 소통하는 것을 말한다.
움베르토 에코는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를 비롯하여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라틴어, 그리스어, 러시아어 등을 통달한 언어의 천재다. 그의 학문 영역도 기호학과 철학, 역사학, 미학, 언어학 등 다방면에 걸쳐있다. 에코를 가리켜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래 최고의 르네상스적 인물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에코의 지적 원천은 인쇄공이었던 그의 할아버지가 모아두었던 200여 권의 낡은 고전서적이었다.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어린 손자 에코는 이 책들을 읽으며 성장했다. 인쇄공 할아버지의 책은 위대한 유산이었다. 요즘 할아버지들의 고민은 손자, 손녀들에게 줄 용돈이 고민이다.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이 입시의 관건이라는 얘기까지 있다. 용돈을 고민하지 말고 읽을 책을 고민하는 할아버지가 되어야한다.
그는 어린 시절 책을 좋아했지만 마음 놓고 사서 읽을 수 없는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다. 할아버지가 남긴 책을 다 읽고 나서 그의 유일한 위안은 동네 도서관이었다. 책에 빠진 소년은 법률가가 되라는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철학과 문학을 공부했다.
그는 책이 인간의 삶을 연장시키는 유일한 도구라고 생각했다. 한 인간이 소멸한다 해도 그 사람이 지녔던 경험과 지식, 통찰은 책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옮겨지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모여 있는 도서관은 지금까지 인간이 쌓아올린 모든 결과물이 집적된 완전체이자 소통의 광장이다. 에코를 가리켜 ‘백과사전 지식인’이라고 한다. 그는 지식계의 T-Rex(티라노사우르스)로 불릴 만큼 어린 시절부터 엄청난 양의 독서가 바탕이 되었다.
에코는 무려 책을 5만 권이나 소장했다. 어마어마한 책으로 인해 아파트가 무너질 뻔해서 2번이나 이사를 했다. 이러한 독서 이력으로부터 지식과 풍부한 상상력을 얻게 된 에코는 《푸코의 진자》 등의 소설, 《미네르바 성냥갑》 등의 수필,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의 문제》 등의 이론서, 《무엇을 믿을 것인가》와 같은 서한집 형태의 철학서를 창작했다.
2012년 7월 2일 오후, 양손에 무엇인가 든 움베르토 에코가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장서각 2층 난간에 섰다. 한 손에는 자신의 소설책 《장미의 이름》과 다른 손에는 전자책을 읽는 기기인 ‘킨들’이 들려있었다. 이어 그는 두 물건을 아래로 힘껏 내던졌다. 큰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진 킨들은 산산조각이 났다. 종이책은 조금 구겨졌다. 에코의 그러한 행위는 종이책 사랑을 통해 ‘새것’에만 집착하는 현대문명의 천박함을 조롱하는 퍼포먼스였다.
에코는 인터넷이 보급되던 초창기에 “인터넷은 쓰레기 더미”라고 질타했다. 이러한 주장은 자기 경험을 통해서 내린 결론이었다. 그가 논문을 쓰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자, 너무나도 많은 검색 결과가 나왔다. 에코는 인터넷 검색을 포기하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는 인터넷에 넘치게 많은 콘텐츠는 아무것도 없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에코는 필요한 책을 찾느라 수만 권의 장서 속에서 며칠 밤을 새우는 고역을 치르면서도 종이책을 예찬했다. 백과사전 같은 책은 인터넷으로 대체될 수 있지만, 시와 소설 같은 글은 종이책으로 읽는 습관을 버리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서관에 가서 서가 사이를 걸으며 사색에 잠기고, 이 책과 저 책의 적대와 호응을 읽어내고, 새로운 혜안을 생각해내는 일. 그것은 인간의 두뇌 없이는 결코 가능하지 않다. 에코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난쟁이들입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마세요. 난쟁이지만 거인의 무등을 탄 난쟁이랍니다.”
“세상이 멸망해도 미국 의회도서관만 건재하다면 인류 문명을 재건하는 건 시간 문제다”라는 말도 했다.
에코의 대표작 ‘장미의 이름’은 도서관 장서를 둘러싼 음모를 다룬 소설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이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그것을 봉인하려는 자와 세상에 꺼내 놓으려는 자가 대결을 벌이는 이야기다. 시종 아드소가 화자로 등장하는데 그는 처음 도서관에 들어갔을 때 이런 말을 한다.
“그제서야 나는 책들끼리 대화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장서관이란 수세기에 걸친 음울한 속삭임이 들려오는 곳. 이 양피지와 저 양피지가 해독할 길 없는 대화를 나누는 곳. 만든 자, 옮겨 쓴 자가 죽어도 고스란히 살아남는 수많은 비밀의 보고. 인간의 정신에 의해서는 정복되지 않는 막강한 권력자였다.”
2016년 2월 19일, 움베르토 에코가 세상을 떠났을 때 사람들은 이렇게 애도했다. ‘거대하고 유기적인 도서관 하나가 사라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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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힘으로 성공한 사람'은 '한 우물을 파면 강이 된다 - 독서로 성공한 사람들 -'로 출간된 도서의 일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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