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의 힘으로 성공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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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 |
34년 동안 도서관에 보낸 시간, <자본론> 탄생하다 - 카를 마르크스 (1818년~1883년)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위대한 일 세 가지를 꼽으라면, 종교의 창조, 예술 장르의 창조, 사상의 창조가 아닐까 한다. 이것들은 위대하기도 하지만 위험하기도 하다. 위험은 숨기고 위대함을 내세워 수많은 사이비 종교, 사이비 사상이 태어나고 있다. 마르크스는 위대하고 위험한 새로운 사상을 창조했다.
마르크스는 평생에 걸쳐 가장 좋아하는 일이 ‘책 속에 파묻히기’라고 했다. 그에게 독서는 존재 이유, 그 자체였다. 그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비판적으로 회의하고, 책 속에서 새로운 지식을 끊임없이 갈망한 욕심 많은 독서가였다.
인류사의 대변혁을 몰고 온 세 가지 이론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다윈의 ‘진화론’,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을 꼽는다. 마르크스 사회주의 이론은 20세기를 강타한 폭풍이었다.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엉뚱하게 그의 이론을 무기로 삼아 전쟁, 학살이 이루어졌다. 노벨의 의도와 달리 다이너마이트를 살상용으로 사용한 것처럼. 결과의 참혹함을 깨닫고 노벨상을 만들었다. 성공, 실패를 떠나 마르크스의 이론은 살아있다. 시장 만능의 신자유주의가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고 인간의 삶이 자본(돈)에 의해 소외당하자, 사회주의가 추구하려 했던 인간의 자유와 행복에 다시 주목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 이론을 만들었지만, 정치를 통해 이를 실천하려 한 혁명가는 아니다. 평생 가난과 고독의 굴레에 갇힌 채 책에만 묻혀 살았다. 그는 단벌옷을 전당포에 잡혀 외출을 못 할 정도로 빈곤했다. 사회와 단절된 채 오로지 도서관에 묻혀 세상의 모든 책을 읽고자 했다. 그는 책에서 읽은 이론과 사상들을 재구성하여 행복한 세상으로 바꾸려고 노력한 철학자, 사색가였다.
마르크스는 독일 트리어에서 부유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7세 때 고교를 졸업했고, 같은 해에 본 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대학 시절 술집에 들락거리며 패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대학 안에 있는 학생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그런 생활 중에도 괴테와 하이네,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 생시몽 등의 책을 읽었다. 대학에서는 헤겔의 《논리학》,《법철학 강요》등에 빠져들었다.
그 후, 베를린 대학으로 옮겨 집안의 기대와 달리 법학보다 철학에 몰두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 연구로 예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마르크스가 독서와 사색에만 전념하자, 그의 아버지는 눈을 감기 직전까지 아들이 철학 중독자가 되어 사회생활과 단절되는 것을 걱정했다. 이 시절에는 케네의《경제표》, 리카아도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 등의 경제학 독서에 몰두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1842년에 <라인 신문> 편집장이 되었다. 그때부터 마르크스는 사회문제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졌다. <라인 신문>은 라인 지방의 신흥 부자가 발행하는 신문이었다. 마르크스는 신문을 통해 귀족들의 특권을 비판했다. 그 논조가 너무 신랄했기 때문에 결국 발행 6개월 만에 신문은 폐간되고 마르크스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졌다. 마르크스는 파리로 망명했다. 프랑스는 1789년의 대혁명과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자본가와 노동자의 투쟁이 격화되고 있었다. 이때 마르크스는 독일의 망명자들이 발행하는 신문에 노동자를 옹호하는 글을 싣기 시작했다.
이 무렵 그는 결혼했다. 신혼여행에 수십 권의 책을 싸 들고 갔다. 가져간 책 중에는 루소의 《에밀》과 《민약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등이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노동자들을 선동하는 그를 추방했다. 브뤼셀로 이주한 마르크스는 1848년 독일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독일로 돌아왔다. 혁명을 지지하는 활동을 하며, 엥겔스와 함께 《공산당 선언》을 발표했다. 그러나 혁명이 실패하자 다시 추방령이 내려졌다. 마르크스는 어쩔 수 없이 영국 런던으로 건너갔다. 이후, 마르크스는 다시는 독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때, 마르크스의 나이 서른이 넘었다.
영국에서 마르크스는 자신이 꿈에 그리던 새로운 신천지를 만났다. 그 신천지는 바로 영국박물관(대영박물관) 안의 도서관이었다. 책을 포함한 모든 자료 이용이 무료였다. 도서관은 책을 좋아하는 마르크스에게 지상 낙원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책을 읽거나 집필을 하면서 무려 34년을 보냈다. 영국박물관 도서관에 비치된 모든 책을 읽고자 했다. 그곳에서 그의 역작인 《자본론》이 탄생했다.
《자본론》은 총 2,5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초기 산업사회의 암울한 사회상을 묘사했고, 날카로운 경제 이론과 깊이 있는 철학적 사고를 담고 있다. 마르크스는 무려 20년이나 걸려 《자본론》을 집필했지만, 1867년에 출간된 1권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의 생전에 세상에 나오지도 못했다. 마르크스의 유일한 친구인 엥겔스가 그의 집필을 이어받아 2권(1885년)과 3권(1894년)을 출간했다. 4권은 1910년에 출간되었다.
2018년5월 5일, 카를 마르크스가 탄생한 지 200주년이다. 그의 사상과 철학이 지구촌 절반을 뒤덮었지만, 우리 사회에선 여전히 그에 대한 오해와 두려움, 냉대의 시선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 그는 여전히 ‘불온시’ 되고 있다. 위대한 철학자, 경제학자, 사회학자인 마르크스가 북한 체제 유지의 이념적 숙주로서 이용되고, 역대 독재정권에선 그와 그의 저서들을 금기어로 봉인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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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힘으로 성공한 사람'은 '한 우물을 파면 강이 된다 - 독서로 성공한 사람들 -'로 출간된 도서의 일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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