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의 힘으로 성공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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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 |
18년 유배생활, 독서와 저술로 역사에 꽃을 피우다 -다산 정 약 용 (1762년~1836년)
정조 임금이 승하한 뒤 바로 순조 임금이 즉위했다. 정조의 갑작스런 승하로 총애를 받던 정약용의 고난이 시작되었다. 정권을 잡은 노론은 남인을 조정에서 몰아내기 위해 천주교를 탄압했다. 신유박해로 정약용, 정약전 형제는 장기와 신지도로 유배를 갔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조카사위 황사영의 백서가 발견되면서 정약용 형제는 다시 강진과 흑산도로 유배를 갔다.
정약용은 1801년 11월에 강진 땅에 도착했다. 천주학을 전파한 죄인이라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의 외면을 받았다. 겨우 주막집 쪽방을 얻어 유배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고성사의 보은산방, 제자인 이청의 집 등을 전전하다가 외가인 해남 윤씨 자손들의 공부방으로 사용되던 강진 땅 만덕산 언저리 야트막한 야산인 다산(茶山)의 산 중턱에 초당을 지었다. 다산초당이 만들어졌다.
그는 이곳에서 독서와 저술에 몰두했다. 유배로 세상과 격리된 정약용이 선택한 길은 학문과 저술의 길이었다. 조선의 사회 현실을 비판하고, 개혁안을 정리하는 데 몰두했다. 목민관들의 지침서인 <목민심서(牧民心書)>, 행정 기구의 개편과 제도의 개혁 원리를 제시한 <경세유표(經世遺表)>, 죄와 형벌에 관한 <흠흠신서(欽欽新書)> 등을 포함하여 약 500여권의 책을 썼다. 그는 18년 만에 귀양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1836년(헌종 2) 2월에 75세를 일기로 고향집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생전 쓴 책은 필사본인 《열수전서》에 경집 88책 250권, 문집 30책 87권, 잡찬 64책 166권 등 총 182책 503권이다
현재 남아 있는 다산초당은 다산이 머물렀던 때의 초당(草堂)이 아니라 1958년 사적 제107호로 지정받으면서 초가를 허물고 정면 5칸, 측면 2칸의 기와집으로 중건한 것이다.
“내가 몇 년 전부터 독서에 대하여 깨달은 바가 크다. 마구잡이로 그냥 읽어 내리기만 한다면 하루에 백 번, 천 번을 읽어도 읽지 않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무릇 독서하는 도중에 의미를 모르는 글자를 만나면 그 때마다 세밀하게 연구하여 근본 뿌리를 파헤쳐 글 전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부지런함이란 무얼 뜻하겠는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며, 아침에 할 일을 저녁 때로 미루지 말며, 맑은 날에 해야 할 일을 비오는 날까지 끌지 말고, 비오는 날 해야 할 일도 맑은 날까지 끌지 말아야 한다.”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다산 정약용의 편지 중에서
다산은 18년간 강진의 다산초당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자식에게 많은 편지를 보냈다. 편지글에는 학자로서 갖춰야 하는 자세, 마음가짐 그리고 옷차림이나 살림살이에 대한 세세한 충고가 가득 들어 있다. 또한, 자신의 유배로 인하여 자식들이 학문에 대한 뜻을 꺾을까 염려하는 아버지의 사랑도 가득 담겨있다.
정약용은 당대 최고의 사상가, 정치가, 행정가, 의사, 지리학자, 과학 기술자였다. 그야말로 만능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엄하고 다정한 아버지, 속 깊은 동생, 백성의 올바른 스승이었다. 다산의 유배 18년 개인에게는 불행이었지만 우리 역사에는 행운이다. 세상과 격리된 유배지에서 좌절하지 않고 백성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조선의 청사진을 그렸다.
형제의 우애는 유배지에서도 변치 않았다. 육식을 하지 못한다는 정약전의 편지에 형의 건강을 염려하며 구체적인 요리법까지 꼼꼼히 적어 보냈다. 그는 자녀 교육에 많은 힘을 쏟았다. 독서를 게을리 하는 두 아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기도 했다.
다산은 조선에서 가장 많은 책을 쓴 학자이다. 그는 갔지만 남긴 책과 말은 지금 우리에게 고마운 선물이다.
◈ 복은 청렴하고 검소해야 생기고 덕은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야 생긴다.
◈ 절약하지 아니하면 집안을 망치고 청렴하지 않으면 관직을 잃는다.
◈ 사람들 아는 것은 가마 타는 즐거움 뿐, 가마 메는 가마꾼의 괴로움은 모르고 있네.
◈ 대중을 통솔하는 방법에는 위엄과 신의가 있을 따름이다. 위엄은 청렴한데서 생기고 신의는 충성된 데서 나온다, 충성되면서 청렴하면 능히 대중을 복종시킬 수 있을 것이다.
◈ 남이 알지 못하게 하려면 행동하지 말고, 남이 듣지 못하게 하려면 말하지 말라.
18년간의 유배라는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어려운 시련이다. 다산은 분노와 좌절로 자신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독서, 수양, 저술을 통해 조선 사회를 개선하고 변화시킬 사상을 완성했다. 반상의 구분이 당연하던 조선시대에 사회의 부조리와 부패를 보며 문제의식을 느끼고, 서구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상을 받아들여 체제에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고자 했다. 조정에서 배척당하고 쫓겨나 소외된 채 18년을 살아야 했던 그는 후학들을 기르고 자신의 사상을 집약해 책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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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힘으로 성공한 사람'은 '한 우물을 파면 강이 된다 - 독서로 성공한 사람들 -'로 출간된 도서의 일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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