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의 힘으로 성공한 사람
|
김윤환 |
선진 문명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배워라 - 초정 박제가 (1750년∼1805년)
『북학의(北學議)』는 1778년(정조 2) 실학자 박제가가 청나라의 풍속과 제도를 시찰하고 돌아와서 그 견문한 바를 쓴 책이다. 북학’이란 『맹자(孟子)』에 나온 말로, 중국을 선진 문명국으로 인정하고 겸손하게 배운다는 뜻을 담고 있다. 박제가는 청년 시절부터 시인으로 유명해 연경에까지 명성을 날렸다. 그는 채제공의 배려로 연경에 갈 수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그 동안 연구해 왔던 것을 실제로 관찰, 비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그래서 자신이 연구한 것과 3개월의 청나라 여행, 1개월 동안 연경 시찰에서 직접 본 경험적 사실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더해 집필한 책이 ‘북학의’다.
박제가는 11세 때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집안은 몹시 가난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반드시 아들이 성공할 것이라 믿고 삯바느질을 해가면 아들의 둿바라지에 최선을 다했다. 아들의 친구들이 오면 술과 안주를 내주며 대접했다. 이런 어머니의 헌신 덕분으로 박제가는 마음껏 책을 읽고 여러 지역을 다니며 조선의 현실을 목격했다.
박제가는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 등 한동네에서 사는 절친한 서얼출신의 친구들과 의기투합했다. 13세 연상인 연암 박지원을 스승으로 모시고 제자가 되어 실학을 공부했다. 그들은 스승으로부터 청나라 문물을 전해 듣고 동경했다. 하지만 학문을 닦아도 쓸 데가 없는 신분을 한탄하며 술과 시로 세월을 보냈다.
그런데 절망이 희망으로 바꿘 사건이 발생했다. 박제가의 나이 27세 때 유득공의 숙부인 유탄소가 그들 네 사람이 쓴 시문을 선별하여 연경에서 <건엽집>이란 문집을 간행했다. 그 책을 본 청나라에서 명망 높은 문인 이조원이 감탄했다.
“어허! 대단한 실력이오. 해동에 이런 문장가가 있단 말이오? 도대체 어떤 인물들이오?”
청나라 대가에게 인정을 받은 것이다. 유탄소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제 조카와 친구들인데 넷 다 서얼출신입니다. 벼슬에 나아가지 못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대가들에게 무슨 신분타령이오. 정말 한번 만나보고 싶구려.”
이 이야기가 조선 땅에 널리 알려졌다. 네 사람은 당대 시문 4대가(4가시인)로 불렸다. 청나라에서는 시문도 문사로 대접해 주는구나. 감격한 박제가는 이조원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 ‘심부름꾼이라도 좋으니 연행 사절단에 끼어 가고 싶습니다. 선생님을 뵙고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중국의 산천을 둘러보고 문물제도를 보고 배우고 싶습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조선에 돌아와서 이름 없는 농부로 늙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이 말이 조선의 개혁군주 정조의 귀에 들어갔다. 정조는 체제공을 시켜 그들을 발탁했다. 1778년 3월, 박제가는 유득공과 함께 사은사 채제공의 수행원으로 꿈에 그리던 연경에 들어갈 수 있었다. 청나라에 도착한 박제가는 이조원을 찾아가 신학문을 배우고 청국의 선진문물을 견학했다.
청나라 발전된 문물의 내용을 보고 듣고 기록하여 조선에 돌아와 ‘북학의’ 내외편을 기록하는데 혼신을 다했다. 정조는 1779년 3월, 박제가는 이덕무, 유득공, 서이수 등과 함께 서얼 출신 선비들을 규장각 검서관 직책으로 불러 들였다. 당시 서얼로서는 파격적인 벼슬이었다.
검서관이라는 직책은 본래 어제일록이나 일성록 등을 복사하고 편집하는 것이 주임무다. 하지만 그들은 규장각의 많은 장서를 마음껏 펼쳐 볼 수 있었고 임금을 보좌하고 독대할 수 있는 특권까지 주어졌다.
규장각을 통해 친위 관료를 키우는 정조의 지극한 배려로 박제가는 생활에 대한 근심을 잊고 독서와 토론으로 밤을 지새웠다. 박제가는 그 후에도 진하사, 동지사를 수행하여 두 차례나 청나라에 다녀오면서 북학의 대한 견해를 가다듬었다.
박제가는 <북학의> ‘내편’에서 차선, 성벽, 궁실 ,도로. 교량, 목축 등 39항목의 생활 주변의 기구와 시설을 근대화하자고 주장했다. ‘외편’에서는 농잠총론, 과거론, 관론, 녹제, 장론 등 17항목을 통해 농업기술의 개량과 무역 등에 관한 조선의 후진성을 비판하고 개선책을 제시했다. 1786년 박제가는 <북학의>을 대폭 간추려 정조에게 바쳤다. 정조는 그것을 바탕으로 수원 화성 개혁을 추진했다.
양반가의 서자출신은 정체성이 모호하다. 금수저도 아니고 흙수저도 아니다. 신분에 불만을 품고 홍길동처럼 반역을 도모하기는 쉽지 않다. 크게 속 썩이지 않고 신세타령하며 세월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박제가와 그 일당들은 그것을 극복했다. 독서를 통해, 학문을 통해, 토론을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보했다. 고관대작이 될 수 있는 길은 원천적으로 막혀 있었지만 훌륭한 학자는 될 수 있었다.
Comments
*'독서의 힘으로 성공한 사람'은 '한 우물을 파면 강이 된다 - 독서로 성공한 사람들 -'로 출간된 도서의 일부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