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싫어하지만 누군가가 해야 될 일, 훈련 중 온갖 고초가 있지만 스포츠에서는 금메달 만 따면 목표달성, 임무 끝이다. 목표달성, 임무 끝이 보이지 않는 일, 눈만 뜨면 피투성이와 씨 름해야하는 일, 외과의사 이국종 박사의 일상이다. 양복 입고 가끔 행사에 참석하고 드문드문 언론과 인터뷰하는 모습은 이국종 박사의 참모습이 아니다. 카메라가 들어갈 수 없는 수술실이 그의 일터다. 피투성이 환자의 처참한 모습에 흔들리지 않고 그를 살리겠다는 집념의 덩어리가 이국종 박사의 참모습이다.
강한 정신력, 사명감, 급박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독서 는 그를 흔들리지 않게, 반듯하게 움직이게 하는 기둥이다. 이국종의 손에 들린 10센티 메스와 이순신의 2미터 장검은 다르지 않다. 매 순간 생사 고비에 선 외상환자의 몸속을 뚫고 들어가 칼로 사투를 벌이는 그에게 있어 책은 이순신 장군이 전쟁 중에 써내려간 난중일기와 다를 바 없다. 그래서일까. 이국종 박사가 감명 깊게 읽고 추천한 책은 ‘칼, 전쟁’ 에 관한 것들이다. 그 에게 하루하루는 삶과 죽음의 처절한 현장인 전쟁과 다를 바 없다.
<이국종 박사가 추천하는 책>
<칼의 노래> 김훈 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입니다. 이순신 제독(그는 해군 출신이다. 장군이란 표현 대신 제 독이라고 표현한다)이 전쟁터에서 명예롭게 목숨을 바치기까지 겪은 사건들이 굉장히 사실 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무너질 것 같은 자신을 끝없이 일으켜 세운 이순신 제독의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불안하고 고독한 그의 내면도 몽환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가끔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읽었던 걸 다시 읽고 또다시 읽 기도 합니다. 어떤 페이지를 펼쳐도 제 상황에 대입해 제 이야기로 다시 써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한 상황과 내면을 이토록 진정성 있고 유려한 언어로 써 내려갈 수 있다니 요. 경외감을 느낍니다.
<남한산성> 김훈 저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 갇힌 인조와 당파의 다툼, 무너져가는 조국 앞 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민중의 삶을 그렸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소설적 상상력을 펼쳤 습니다. 저의 짧은 소견으로는 감히 평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완서 작가께서 김 훈 작가를 두고 “한국문학에 내린 벼락같은 축복” 이라 표현하신 적이 있었는데 참으로 정확 한 찬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안정효 저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의도한 메시지와 완전히 반대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품 속 영화광이 작부와 살며 시나리오를 쓰고 훌륭한 영화를 만들지만 실은 그것이 할리우드 영화의 교묘한 짜깁기였음이 밝혀집니다. 작품은 주인공의 삶이 가짜에 불과하다며 끝나지 만 오히려 제 생각에는 카피의 모자이크화도 얼마든지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고, 선진 국 여러 곳에서 가져온 각기 다른 장점의 모자이크를 잘만 맞추어 환자를 살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좋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과의사라고 해서 모든 수 술을 다 잘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조금 부족하더라도 나보다 더 좋은 의술을 가 진 세계의 훌륭한 의료진들의 의술을 잘 카피하고 공부해 모자이크화하면 더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사가 환자 살리는 일엔 저작권이 없습니다.
<사람의 아들> 이문열 저
대학 때 국문학과 선배한테 물었습니다. 어떤 책을 읽으면 되냐고. 그랬더니 선배가 한국 을 대표하는 현대문학 작가인 만큼 이문열 책을 읽어보는 게 좋겠다며 추천했습니다. 그날 부터 <사람의 아들>을 시작으로 <영웅시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등 이문열 작가 의 작품은 가리지 않고 읽었습니다. 저는 책을 읽을 때 한 작가의 작품을 쭉 따라가는 편입 니다. 그 과정에서 작품을 떠나 책을 쓴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느낄 수 있습니다. 일단 표 현력이 정말 뛰어납니다.
<초한지> 이문열 저
초나라와 한나라의 전쟁. 전쟁의 주축인 항우와 유방이라는 두 영웅과 그를 둘러싼 수많 은 자들이 충성과 변절의 과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영웅이 되기를 꿈꾸는 두 주인공들의 파 란만장한 인생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지요. 마지막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항 우와 마지막까지 남은 최측근 무장들이 죽기 전까지 전투를 치르는 상황이 생생한 서사와 묘사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다 죽음을 맞이합니다. 마치 초한전을 실제로 보고 쓴 것처럼 독자를 치열한 전장의 한복판으로 이끌어가는 작가의 문장력에 수없이 감탄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데 사용되는 그의 칼이 더욱 빛나길, 그의 손과 영혼이 평정심을 잃지 않도록 책이 함께 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