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의 힘으로 성공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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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 |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 안 중 근(1879년~1910년)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일일불독서 구중생형극)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이 말은 안중근 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쓴 글귀다. 그는 풍전등화 같았던 조국을 구하기 위해 대한제국 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의 이름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했다.
거사의 날, 1909년 10월26일 아침 9시, 하얼빈 역 플랫폼에 이토가 하차했을 때 많은 수행원들과 섞여 있어서 누가 이토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런 순간에, 이토의 하얼빈 방문을 환영하는 현지 일본인 환영객들 중 누군가가 이토의 이름을 크게 부르자 이토가 뒤를 돌아보면서 손을 흔들었다. 안중근이 이토의 얼굴을 확인했다. 전광석화처럼 FN M1900 권총, 할로 포인트 탄환으로 3발을 발사했다. 제1탄은 이토의 오른팔 윗부분을 관통하고 흉부에, 제2탄은 이토의 오른쪽 팔꿈치를 관통해 흉복부에, 제3탄은 윗배 중앙 우측으로 들어가 좌측 복근에 박혔다. 3발 모두 급소를 맞췄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현장에서 ‘대한만세’의 러시아어인 ‘코레아 우레’를 외치고 러시아 군인들에게 순순히 체포되었다. 안중근은 예심도 거치지 않았고, 일본인 관선 변호사로부터만 변론을 받았다. 그의 법정 발언은 전체 내용이 아니라 ‘요약’된 부문만 통역해서 재판부에 전달됐다. 재판은 2월7일부터 14일까지 6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그는 살인죄로 사형을 언도받았다.
재판에서 안중근은 “대한제국 의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이토를 저격한 것이지 자객으로서 한 것이 아니다. 포로를 처벌하려거든 국제 공법(公法)에 따라 처리하라.”고 요구했다. “일본이 한국의 독립을 부정하고 동양의 평화를 해치기 때문에 이토를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살해의 사실만을 판결에 적시하고 살해의 목적과 동기는 끝내 언급하지 않았다. 안중근은 이토가 죽은 지 다섯 달만인 경술년 3월 26일 오전 10시, 한복으로 갈아입고 형장에 서서 기뻐하며 말하기를 "나는 대한독립을 위해 죽고, 동양평화를 위해 죽는데 어찌 죽음이 한스럽겠소?" 라고 했다. 조용히 형장으로 나아갔다. 나이 32세였다.
안중근은 폭력을 좋아하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그는 깊은 인문학적 교양을 쌓은 독서인이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안중근이 뤼순 감옥에서 죽음을 앞두고 쓴 글귀들을 감명 깊게 보고 있다. 그는 뤼순 옥중에서 많은 글씨를 남겼다. 이 중 몇몇이 보물 제569호 안중근 의사 유묵으로 지정됐다. 이 가운데 유명한 것이 보물 제569-2호인 "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이다. 이것은 『명심보감』나오는 구절이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자라는 것처럼 입이 거칠어져 남을 비난하고 욕하고 말을 함부로 한다는 뜻이다. 이 한마디를 보아도 안중근은 독서를 소중히 여기는 선비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날마다 독서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독서를 통해 사물의 이치를 깨달았고, 세상의 흐름을 읽었다. 이 때문에 그는 대한제국의 고관이 아니었으나, 나라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겠다는 결의를 품게 되었다.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원대한 뜻을 품지 못했을 것이고, 설사 잠시 비분강개한 마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애국심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을 것이다. 책이 사람을 만들고 책이 영웅을 만든다.
안중근이 남긴 유묵을 보면 숙연해진다. 그가 연마한 독서의 깊이, 인간의 깊이가 느껴진다.
◈ 見利思義 見危授命(견리사의 견위수명)
불의를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
◈ 黃金百萬兩 不如一敎子(황금백만량 불여일교자)
황금 백만 냥도 자식 하나 가르치는 것만 못하다.
◈ 博學於文 約之以禮(박학어문 약지이례)
폭넓게 공부하고 글을 익히되, 예법으로써 자신을 단속하라.
◈ 貧而無諂 富而無驕 (빈이무첨 부이무교)
가난하되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되 교만하지 말라.
◈孤莫孤 於自恃 (고막고 어자시)
가장 외로운 것은 스스로 잘난 척 하는 것이다.
◈ 白日莫虛渡 靑春不再來(백일막허도 청춘부재래)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말라. 청춘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유해를 하얼빈 공원에 묻었다가 고국이 독립되면 고국 땅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그가 처형당한 뒤 두 동생이 유해를 인수하기 위해 찾아왔지만 일본은 안중근 의사의 묘지가 독립운동의 성지가 될 것을 우려해 유해를 넘겨주지 않았다. 유해는 뤼순 감옥 인근 죄수 묘지에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유해는 아직도 발견되지 않았다. 뤼순 주변은 1930년대 이후 여러 차례 개간되어 1910년대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2008년 남북이 공동으로 진행한 발굴사업에서도 결국 유해를 찾지 못했다. 그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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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힘으로 성공한 사람'은 '한 우물을 파면 강이 된다 - 독서로 성공한 사람들 -'로 출간된 도서의 일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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