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의 힘으로 성공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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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 |
1만 번을 읽고 또 읽은 끈기의 독서가 - 백곡 김 득 신 (1604년∼1684년)
백곡 김득신은 명문 사대부가의 자손으로서 아버지 김 치(金緻)는 정3품 홍문관 부제학을 지냈다. 할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진주성 대첩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김시민 장군이다. 아버지는 노자가 나오는 꿈을 꾸고 아들 하나를 얻었다. 장차 큰 인물이 되길 기원하며 ‘노자의 꿈을 꾸고 태어난 아이’라는 뜻을 담아 '몽담(夢聃)'이라는 태명을 지어주었다. 몽담은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았다. 머리가 우둔해서 10살이 되어서야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안 되는 자식은 포기하고 양자나 하나 들이라고 권했다. 사람들은 아둔한 아들에게 욕심을 부린다며 손가락질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을 믿었다. 병상에 누워 임종의 순간에도 아들을 격려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당부했다.
“몽담아, 공부란 꼭 과거를 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너는 너의 길을, 너의 공부를 멈추지 말아라. 학문의 성취가 늦다고 성공하지 말란 법이 없다. 그저 읽고 또 읽으면 반드시 대문장가가 된다. 그러니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마라. 책을 열심히 읽다 보면 뜻을 알게 되고 외울 수 있다.”
김득신은 아버지의 유언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다른 친구들이 책을 한 번 읽을 때 자신은 만 번을 읽겠다고 결심했다. 읽고, 읽고, 또 읽었다. 책을 잡으면 수없이 반복하여 읽었다. 사마천의 <사기> 중 ‘백이전’을 1만 3천 번을 읽었고, 다른 책들도 1만 번 이상 읽었다.
그의 서재에서는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아서, 사람들은 서재 이름을 ‘억만재(億萬齋)’라고 불렀다. 글을 읽을 때 1만 번이 넘지 않으면 멈추지 않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어느 날 김득신은 하인과 길을 가다가 담 밖에서 어떤 선비가 글을 읽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그 글이 아주 익숙한데, 무슨 글인지 생각이 안 나는구나."라고 말했다. 그러자 하인은 "나으리, 정말 모르신단 말씀이십니까? 이 글귀는 나으리가 평생 읽으신 것이어서 쇤네도 알겠습니다요."라고 말했다. 그 글은 바로 사마천의 <사기>' 중 ‘백이전’이었다. 그가 무려 1만 3천 번을 읽은 글이었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정자에 둘러 앉아 시를 주고받았다. 김득신이 "내가 오늘 시를 지으면서 훌륭한 두 구절을 얻었다네."라고 말하자, 한 친구가 그게 뭐냐고 물었다. 김득신은 "삼산(三山)은 푸른 하늘 밖에 반쯤 떨어지고, 이수(二水)는 백로주(白鷺洲)에서 둘로 나뉘었네."라고 읊으면서 멋지지 않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친구는 그 시가 이백의 '봉황(鳳凰)'이라고 알려줬다.
수 만 번 외워도 잊어버리고 착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특별한 기록을 했다. 만 번 이상 읽은 책들만 베껴 쓴 독수기(讀數記)가 바로 그것이다. 매일 읽은 글의 제목과 횟수를 꼼꼼히 기록한 것이다. 오늘날의 '독서일기'와 비슷하다. 거기에는 36개의 고서에 대한 섬세한 평이 담겨있다. 그는 "<백이전>과 <노자전>을 읽은 것은 글이 드넓고 변화가 많아서였고, <의금장>과 <중용서>를 읽은 것은 이치가 분명하기 때문이며, <백리해장>을 읽은 것은 말은 간략한데 뜻이 깊어서였다. 이러니 여러 편의 각기 다른 문체 읽기를 어떻게 그만둘 수가 있겠는가?"라고 썼다.
김득신은 이런 노력 끝에 매우 늦은 나이인 59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에 입학했다. 그러나 조선최고의 오언절구와 칠언절구의 시인이 되었다. "고목은 찬 구름 속에 잠기고, 가을산엔 소낙비가 들이친다. 저무는 강에 풍랑이니, 어부가 급히 뱃머리 돌리네."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그의 절구시 ‘용호(龍湖)'를 보고 조선 17대 왕 효종은 “당시(唐詩) 속에 넣어도 부끄럽지 않도다”라고 칭찬했다. 서계 박세당은 "그는 옛글과 남의 글을 다독했음에도 그것을 인용하지 않고 자기만의 시어로 독창적인 시 세계를 만들었다."라고 했다.
김득신은 스스로 지은 묘비에 이런 글귀를 남겼다. “재주가 남만 못 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마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다. 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렸을 따름이다.”
어릴 때 바보 같다는 놀림을 받았던 김득신은 엄청난 독서와 필사(베껴쓰기)를 통해 조선 최고의 시인으로 이름을 날릴 수 있었다. 여러 벼슬을 거치면서도 늘 책에서 배운 대로 말하고 행동했다. 세상에 이름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묵묵히 책을 벗 삼아 살았다.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믿음과 아들의 노력이 아름다운 결실을 맺었다.
‘조선의 독서가’ 란 수식이 붙은 김득신의 7가지 독서법은 이렇다.
1) 어려워도 끝까지 포기하지 마라.
2) 부족함을 느끼고 반복해서 읽고 또 읽어라.
3) 글을 잘 쓰려면 좋아하는 문장을 모방하라.
4) 성실하고 끈기 있게 공부하면 꿈은 이뤄진다.
5) 글에 리듬을 얹어 소리 내어 읽어라.
6) 책의 기운을 흡수하는 양기 독서를 하라.
7) 책에서 풍기는 가락을 따라 책을 읽어라.
- 서상훈 지음, <나를 천재로 만든 독서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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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힘으로 성공한 사람'은 '한 우물을 파면 강이 된다 - 독서로 성공한 사람들 -'로 출간된 도서의 일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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