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할배' 이순재, 고된 일정에도 독서를 했다 -국민배우 이 순 재 (1934년~ )

 이순재는 서울대 출신 연예인 1세대다. 김태희, 이적, 유희열, 김정훈, 서경석, 장기하 감우성, 이하늬, 김창완, 루시드폴, 버벌진트, 뮤지컬배우 김소현 등도 서울대 출신이다. 공부의 신들이 모인 서울대 출신이 연예인이 된다는 건 신기하다. 이순재는 현역 최고령 배우이자 최고참 배우이다. 연예인 전체를 통틀어도 이순재보다 고참은 송해가 유일하다.

 이순재는 ‘독서 사랑인’이다. tvN ‘꽃보다 할배-그리스 편’에서 그리스 여행에 나선 할배들과 이서진, 최지우가 나온다. 연출된 연기가 아니어서 생동감, 긴장감이 있어 시청자의 공감을 산 프로그램이다. 그 중 이순재는 고된 일정에도 불구하고 잠들기 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침대에 누운 채 독서를 하다가 잠에 빠져들었다. 무슨 책을 읽었을까. 화면에 잡히지 않았다.

 다음날 아크로폴리스에 갔을 때 이순재의 독서가 빛을 발했다. 건축물에 대해 박학한 지식을 털어놓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 책에 정답이 있다. 귀찮고 피곤해서 정답을 찾지 않을 뿐이다. 국민배우 이순재는 책 선물을 가장 좋아한다. 촬영 중에도 틈틈이 책을 읽는다. 이순재는 언제나 에너지가 넘친다. 무엇보다 살아온 날들에 대한 후회가 아닌, 기쁨과 즐거움에 대해 얘기하는 순간이 더 많다. 최근 각종 예능프로그램, 영화정보 프로그램 그리고 수 십여 개의 언론 인터뷰까지 소화한다.

 노년 연기자의 자세에 대한 그의 지론과 충고는 확고하다.

나이 먹은 사람들이 퇴조할 수밖에 없다. 눈에 띄는 역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용돈이나 벌기 위해 타성에 젖어서 출연한다.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 노년 배우들은 남다른 욕구와 열정이 있어야한다. 나문희 씨가 영화 ‘아이 캔 스피크’로 상을 타는 것을 보고 너무 기분이 좋았다. 나이가 들수록 대충 연기하지 말고, 열심히 해야한다.

 이순재에게 놀라는 점은 암기력이다. 지금도 한국 역사는 물론 미국 역대 대통령의 이름까지 줄줄 외운다. 자연스럽게 인터뷰에서도 미국의 역사와 과거 자신이 사극에서 맡았던 인물에 대한 얘기를 줄줄 쏟아냈다.

대사를 외우는 것은 배우에게 필수적이다. 그래서 암기력을 유지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늘 자신을 단련해야 한다. 그래서 연극을 자주 한다. 평상시 재미 삼아 미국 대통령 이름을 외우기도 한다. 단순히 외우는 것뿐 아니라 당시의 역사를 생각하며 외운다. 예전에 후시 녹음을 할 때도 대사는 다 외웠다. 암기 능력이 있을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 연기를 하고 싶다.

60여 년 동안 연기를 하면서 깨달은 바는,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좋은 선배로 든든하게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선배, 원로의 자리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 조직은 입구와 출구가 있다. 입장과 퇴장이 있다. 어느 지점이 지나면 은퇴해야한다. 자연도태와 자발적 퇴장이 있다. 무소속 창기병과 같은 연예인에게는 정년이 없다. 정년은 자신이 정한다. 자기관리, 새로운 도전, 시대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100세가 되었다고 누가 거부할 수 있겠는가. 불나비처럼, 반짝스타가 되지 않으려면 노력 뿐이다. 하늘의 별은 별다른 노력 없이도 빛난다. 연예계 스타는 대중이 보지 않는 곳에서 치열한 노력을 해야한다. 여름 한철 잠깐 세상에 나와 노래 부르는 매미도 6년간 굼벵이 생활을 한다.

 연기자 이순재 씨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기본’이다. 연기할 수 있는 조건은 좋아졌다. 그런 상황일수록 중요한 게 바로 ‘기본기’라는 것이다.

‘빨리 빨리’를 강조하며 기술이나 경제, 문화 분야 등이 표면적으로는 어느 단계까지는 올라왔지만, 이젠 그 속을 한번 들여다보고, 탄탄하게 다져나갈 때라고 생각한다. 그게 바로 기본이자 내공이다. 연기자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차곡차곡 자기 자신을 만들고 탄탄히 쌓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운 좋게 최상의 자리에 오르는 연기자도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소리 없이 사라지는 더 많은 연기자들이 있다. 반면, 젊은 꽃미남 연기자들이 방송계를 점령한 가운데서도 60년이 넘도록 한결같은 사랑을 받고 있는 ‘국민 아버지’ 이순재 씨도 있다. 그만의 내공을 쌓은 덕이다.

 연기자로서 매일 새로운 대본을 외우고, 그와 관련한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여러 작품을 소화하기 위해 참고가 되는 책을 많이 읽는 게 그만의 평생학습”이다. 특히 역사서에 관심이 많다. 우리 역사뿐 아니라 외국의 역사서를 많이 읽는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역대 대통령을 평가한 ‘대통령과 국가경영’을 접하고 흥미롭게 읽었다고 추천한다. 이 책은 ‘Leader for Nation Building’의 한글판으로 파란만장했던 한국의 현대사를 소개한 책이다. 일본에서 구입한 역사서를 통해 일본 고대사와 우리 역사의 연계성을 찾고 문화를 고찰해 보는 재미에도 흠뻑 빠졌다. ‘기본’을 중시하는 이순재에게 역사의 기본을 이해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