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의 힘으로 성공한 사람


 

김윤환
(주)영광도서 대표이사 | 경영학 박사
yhkim@ykbook.com
[약력] 경남 함안 대산 구혜 출생(1949).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일본학과 졸업, 부산외국어대학교 경영학석사, 부산대학교 국제학석사, 동아대학교대학원 경영학박사. ‘87 JCI부산시지구 회장, '88한국청년회의소중앙부회장, '89부산시체육회이사, 한국청년회의소 연수원 교수부장, (사)목요학술회 부회장, '06국제신문 부사장, 부산고등법원민사 조정위원, 부산문화재단 이사, (사)한국마케팅관리학회 부회장, 2014부산ITU전권회의범시민지원협의회 부회장, 2014한ㆍ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범시민지원협의회 부회장, 부산광역시 새마을회 회장, 부산새마을신문 발행·편집인 등 역임...< 더보기 >

자유인 조르바, 나도 그처럼 살고 싶다 - 국민배우 최 불 암 (194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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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최불암이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바로 내 아버지가 저랬다', 혹은 '내 아버지가 저랬으면', 또는 '내가 저런 아버지였으면' 하고 생각한다. 60년간 연기 인생을 살고 있는 최불암. ‘전원일기’ 22년간 방영, ‘수사반장’ 18년간 방영 등 국내 드라마의 전설이다. ‘차마고도’, ‘한국인의 밥상등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을 맡아 찡한 감동을 주었다. 대중들은 그에게 국민배우’, ‘국민 아버지라는 호칭을 헌정했다.

 

 그의 인생에서 사고의 근원을 제공해 온 책은 중학생 때 읽은 인간의 조건이다. 일본 소설가 고미카와 준페이가 쓴 이 책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루며 휴머니즘의 시각에서 전쟁의 비인간성을 비판한 것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역경 속에서도 인내하는 남자의 길과 인도적 정신을 배웠고, 인간을 무모하게 살생하는 전쟁에 반대하는 사고를 갖게 됐다.

 

 그는 한국 현대 문학사를 장식한 여러 명사들과 친분이 많다. 이는 어린 시절 그의 어머니가 명동에서 운영한 술집 은성이 당대의 문학가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박인환, 한하운 등 유명 인사들이 외상으로 막걸리를 많이 마셔댔다. 어린 최불암에게도 한 잔씩 권하기도 했다. 명동 유네스코 회관 맞은편에는 '은성주점 터'라고 쓰인 표지석이 남아 있다. 어머니가 타계하신 뒤 은성의 외상 장부를 손에 넣고 외상값을 모두 받으면 부자가 될 거란 생각을 했다. 장부를 펼쳐보니 장부의 내역이 모두 암호로 되어 있었다. 그것으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최불암은 악역에 어울리지 않는 배우다. 최불암이 악역으로 나오는 영화, 드라마를 본 적이 없다. 배우로서는 불행한 일이다. 강한 캐리터는 악역에서 나온다. 진중하고 믿음직한 인상과 연기가 그의 캐릭터로 굳어졌다. 코믹한 연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중심이 든든해야하는 불행한 아버지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자유분방함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최불암은 모 일간지 인터뷰에서, 자신의 인생에서 수십년 동안 영향을 미치고 있는 작품이 있다고 했다.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장편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이다. 이 소설이 출판될 당시 동방정교회는 대놓고 카잔자키스를 비난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제정신 아닌 수도자인 자하리야가 수도원에 대고 불을 지르는 장면이나 조르바의 난잡한 행동들 등을 놓고 신성모독으로 여겼던 것이다. 카잔자키스는 평생 노벨문학상 후보에 1951년과 19562번 올랐지만 그의 무신론적 성향이 문제가 되어 결국 수상하지 못했다.

 

 1983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를 방문한 최불암은 뮤지컬로 만들어진 그리스인 조르바를 우연히 접했다. 당시 40대 초반이었지만 자유롭고 유쾌한 60대 노인 조르바에게 빠져들었다. 한국에 돌아온 후 그는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다. 1964년 앤서니 퀸이 주연을 맡은 영화도 찾아봤다. 그때부터 30년 가까이 그는 조르바를 꿈꿔왔다.

이 소설은 펜대 운전수라 불리는 작중 화자()가 막노동판 십장 분위기를 풀풀 풍기는 예순 줄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만나 크레타 섬에서 함께 갈탄광 사업을 벌이다 실패하면서 겪는 이야기다. 지식인과 막노동꾼, 젊은 축과 늙은이, 신사와 방탕아라는 대립을 이루는 두 사람이 만드는 대화가 이 소설의 핵심 줄거리다.

 

 조르바는 어느 마을에나 처음 가면 과부 있는 집을 찾아가서 잠도 자고 재미도 본다는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내뱉는다. 학교에서 무언가를 배운 적도 없고, 남들처럼 책을 읽어 그 속에서 교훈을 얻은 적도 없다. 그가 삶을 배운 곳은 바로 삶 그 자체다. 어린 나이에 크레타 독립전쟁 의용군이 되어 사람을 죽이고, 잡상인이 되어 여기저기 물건을 팔며 떠돌아다녔다. 어지간한 막노동은 안 해본 것이 없다. 조르바는 말과 행동이 거침없고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여자만 보면 미쳐 날뛰는야성적인 남자다. 물질과 이성이 아닌 정신과 본능에 따라 거침없이 사는 자연인이다. 믿음직하고 기대고 싶은 연기자 최불암. 그의 내면에는 뜨거운 야성이 있다. 야성이 없으면 연기에 힘이 없다.

 

 요즘 드라마의 현실에 대해서도 원로로서 일침을 가한다. 가벼운 연애 이야기가 넘쳐날 뿐 가정과 사회문제를 깊이 바라보고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만한 내용은 보기 힘들다. 그는 작가들이 그런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글을 써줬으면 한다고 바랐다. 더불어 젊은 배우들이 너무 외모에만 신경을 쓰는 것 같아 아쉽다고도 했다.

 

 그의 충고는 서늘하다. 얼굴이 잘 생기지 않아도 좋은 옷을 입지 않아도 정신과 주장이 뚜렷한 배우가 돼야 한다. 요즘 촬영장에 가보면 코디들이 붙어 머리카락 하나도 예쁘게 다듬어주고 있다. 배우는 외모만 중요한 게 아니라 정신이 더 중요하다.

 

 연기 인생 60년의 배우가 들려주는 이 말에 그가 왜 국민배우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 최불암의 외면에는 푸근한 아버지가 있지만 내면에는 꺼지지 않는 조르바의 불꽃이 있다. 우리 가슴에도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어야 한다. 불꽃이 없는 삶은 식은 재다. 우리의 가슴에 고래를 키우고 사자를 키우자.

고래와 사자의 모델을 책에서 찾아 가슴에 심자. 얼굴에 주름이 느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돈 주고도 못 사는 훈장이다. 우리가 걱정할 것은 가슴의 불꽃이 식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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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힘으로 성공한 사람'은 '한 우물을 파면 강이 된다 - 독서로 성공한 사람들 -'로 출간된 도서의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