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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독서 토론회 성황
19일 오후 6시30분쯤 부산시 부산진구 부전동 영광도서 4층 영광도서 사랑방. 입구부터 사람이 꽉차 말 그대로 송곳 꽂을 자리마저 없었다. 참가 인원은 350여명. 주최측에서 준비한 의자 250여개가 동나고도 100여명은 구석구석에 칼처럼 서 있었던 셈.
소설가 이문열씨의 독서 토론회를 찾은 독자들의 열기는 입구부터 후끈했다. 이씨가 최근 펴낸 신작,「술단지와 잔을 끌어 당기며」발간을 기념해 마련된 자리였다. 이날 지정토론자는 평소 이씨의 문학과 사회에 대한 발언을 두고 강한 비판을 해온 노혜경 시인. 창과 방패의 현란한 비무가 예견된 건 당연한 일.
토론은 역시「문화권력」「앤티」 등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것들에 집중됐다. 이씨는 기조 발제에서 『90년대 맹위를 떨친 해체는 파괴를 하면서 대안을 제시했으나, 최근의 안티 움직임은 대안없는 단순한 파괴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소설이 작가 이데올리기 유포 도구인가"
"작가 주장이 들어가지 않은 소설 있나"
노 시인은『작품 속 인물들의 발언이「앤티조선에 대한 지독한 폄하」를 담고 있어 소설이라기 보다는 작가의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는 도구라는 느낌을 받는다. 최근 이 선생의 사회나 현실에 대한 발언이나 작품을 보면 경향문학화(극우보수)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씨는『실제 작품중「앤티」부분은 120매 단편 가운데 4줄 정도다. 안티 논쟁이 신물이 나 고향으로 내려가 소설을 쓰게 된 경위 등을 녹여 내다 보니 들어간 귀절이다. 수사배분이나 지면할애 등의 고려 사항이 있겠지만, 작가의 주장이 들어가 있지 않은 소설이 어디 있나. 오히려 그런 비평이 경향비평이라 생각한다. 그에 대한 평가는 나중에 독자들이 할 것이라 본다.』
한 독자가『공인으로서 너무 편향적인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이씨는 『편향성이 무조건 나쁘다고 보지는 않는다. 80년대까지 이쪽 저쪽 다 잘 보일 수 없을까 고민도 했다. 그러나 「한 마을 사람들이 다 좋다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다」는 논어 구절에서 힘을 얻었다. 편향적이라도 생각을 달리 하는 사람을 인정할 마음만 있다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 시인이 다시「굳이 소설속에서「앤티 조선」얘기를 하는 이유」를 묻자, 일부 독자들이『앤티 조선을 빼면 말이 안되느냐』며 항의했다. 이에 대해『한번만 더하자』고 서두를 꺼낸 이씨는『「문화권력」이란 말이 쓰이는 것을 보면서 중국 문화혁명 당시 어떤 때는 자로 어떤 때는 흉기로 쓰였던 「학술권위」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당시 이 말은 법도 아니면서 단죄와 처벌의 근거와 기준이 되는 개념이었다. 거기에서 힌트를 받아 「홍위병」이란 말을 썼다. 그 말을 할 때 (공격당할) 각오를 했다.』
이씨는 작품 후기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논쟁을 하면서 한달이 지나니까 「내가 왜 이러나」하는 생각이 들어 고향에 내려갔다. 사실 칼과 힘으로 하는 싸움은 금방 결론이 나는데 말로 하는 싸움은 끝이 없다.「나한테 칼은 소설이니 소설을 쓰자」는 생각이 들더라. 「술자리…」는 지난 여름 나의 자화상이다. 만약 내가 룰을 깨고 상업성을 의식해서 작품을 썼다면 당연히 독자로부터 벌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또 토론회 말미에 『간절한 희망은 기사화안됐으면 좋겠다. 말 한마디만 바꿔도 이상하게 된다. 오늘 저녁 걱정이 많이 된다』고 덧붙였다. 토론회는 예정시간(오후8시50분)을 훌쩍 넘겨 끝났다.
[조선일보 2001.12.21 - 박주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