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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책 생태계’
가구당 월평균 서적 구입비가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고 한다.
최근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가 통계청 자료를 분석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가구당 월평균 책 구입비는 올해 1분기에 2만2123원으로 지난해 1분기보다 8.0% 감소했다. 관련 통계가 나온 2003년 이후 1분기 최저치이다. 2분기엔 1만3330원으로 지난해보다 13.1% 떨어져 전체 분기 중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월평균 서적 구입비가 1만5000원 아래로 떨어진 것도 처음이라고 한다. 1분기와 2분기의 평균 책 구입비는 1만7727원으로 이 역시 역대 가장 낮다. 월평균 가구당 책 구입비는 지난 10여 년간 소폭으로 등락을 거듭하면서도 2만 원대를 유지했으나 2014년 처음으로 2만 원 이하로 떨어졌고, 올해 상반기엔 지난해보다 10.0%나 하락했다. 책 구입비는 지치지도 않고 꾸준히 추락하고 있는 셈이다.
관련 통계까지 들 필요도 없이 이 같은 어려움은 현장에서 쉽게 느껴진다. 출판계에서 ‘책이 안 팔린다’는 말은 이제 일상이 됐다. 올해 들어 1000만 관객 돌파 영화가 벌써 여러 편 나왔지만 책은 초판 3000부 팔기도 어렵다. 영상과 디지털 시대에 책이 문화적 강자의 자리를 내주게 된 상황은 시대의 변화라고 해도 그 안에서 어려움을 헤쳐나가기 위한 현실적인 조치들이 필요하다.
출판사, 서점, 또 출판사라도 대형 출판사와 소형 출판사에 따라 입장이 다르지만 출판계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 중 하나가 도서공급률 조정이다. 도서공급률은 말 그대로 출판사가 서점에 책을 공급하는 가격이다. 현재 도서공급률은 출판사들마다, 또 같은 출판사라도 서점에 따라 다르다. 이 때문에 지난해 11월 책 할인율을 15%로 규정한 새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이후 가장 이익을 많이 본 곳은 온라인서점이다. 각종 할인 마케팅을 이유로 출판사로부터 가장 낮은 가격에 책을 공급받았지만 새 도서정가제 도입으로 대폭 할인이 사라지자 그 차액을 고스란히 이익으로 가져갔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서 소규모 출판사들은 대형 온·오프서점에, 반대로 동네 작은 서점들은 주요 출판사들에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일 수밖에 없다. 책 역시 시장에 나온 상품으로 보면 이 같은 ‘경쟁’이 당연하지만 출판 생태계는 다양성이 사라지는 순간, 전체가 무너진다. 열정 넘치고 의욕적인 중소 규모의 출판사들이 만드는 다양하고 실험적인 책이 필요하고, 동네 작은 서점들이 실핏줄처럼 버텨 줘야 그 생태계가 살아난다.
남송(南宋) 시대 시인 우무(尤)는 배고플 때 책을 읽으며 고기로 삼고, 추울 때는 책을 읽으며 가죽옷으로 삼고, 쓸쓸할 때는 책을 읽으며 친구로 삼고, 울분이 쌓였을 때는 책을 읽으며 악기로 삼는다고 했다. 요즘 시대야 배고플 일도 없고 옷도 넘쳐 나며 쌓인 울분을 풀 방법도 많지만 그래도 책이 갖는 다양한 역할은 여전하다. 책 읽는 개인과 책 읽지 않는 개인의 차이도 차이려니와 책 읽는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의 격차는 크다. 교양있는 사회를 위해 출판계가 자신들의 이익에서 조금씩 물러나 개선할 것은 개선해야 한다. 그것이 출판 생태계 전체를 살리는 길이다.
[문화일보 2015.9.17 최현미/ 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