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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애인敬天愛人에서 신종여시愼終如始까지!
서명 : 천자를 읽어 천하를 알다 (2016.3)
저자 : 진세정
정가 : 16,000원
출판사항 : 사계절
경천애인敬天愛人에서 신종여시愼終如始까지
사자성어 250구로 새로 쓴 천자문
우리에게 익숙한 ‘하늘과 땅은 검고 누르다’로 시작하는 『천자문千字文』은 6세기 중국 양梁나라의 주흥사周興嗣가 왕희지王羲之의 글씨를 모아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통시대 이래로 한자 문화권에서는 이 책을 기초 한자를 학습하는 학문 수양의 첫 관문으로 삼았던 동시에 인과 예를 익혀 인격의 기틀을 세우는 데 이용했다.
『천자를 읽어 천하를 알다-독천자 지천하』는 오늘날 한·중·일 동아시아 3국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사자성어 250구을 활용해 새로 풀어 쓴 천자문이다. 역사가도, 고전 연구가도, 철학자도 아닌 보통의 회사원이었던 지은이는 ‘중요한 사자성어로 다시 천자문을 만들면 어떨까?’라는 호기심에서 출발하여 꼬박 10년의 연구와 집필 끝에 이 책을 완성했다. 출전과 쓰임이 확실한 사자성어를 골라내고 그 가운데 단 한 자의 한자도 겹치는 것이 없도록 만드는 과정은 가히 우공이산(愚公移山: 우공이 산을 옮기다)의 현실 버전이다.
사자성어에는 역사와 세상의 이치, 그리고 인간의 본성이 담겨 있다. 우리가 한 해를 정리하거나 새로운 결심을 마음에 새길 때 가장 먼저 사자성어를 떠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천자문』의 차례를 참고하여, 이 책 역시 자연自然·정사政事·수학修學·충효忠孝·수덕修德·오륜五倫·인의仁義·군웅群雄·군자君子·한거閑居·잡사雜事·경계警戒의 열두 장으로 구성했다. 모든 성어마다 한자 독음과 성어 풀이, 출전 및 비슷한 말과 반대말, 함께 생각해볼 영어 명언을 수록했다.
때로 백 마디 설명보다 한 단어로 사물과 인생의 복잡한 이치가 명쾌하게 풀리는 순간을 경험한다. 250구의 필수교양 사자성어로 새로 쓴 천자문, 『천자를 읽어 천하를 알다-독천자 지천하』를 통해 독자들은 오랜 시간 축적된 지혜와 통찰에 맥락관통(脈絡貫通: 조리가 일관하여 일의 줄거리가 환하게 통하다)하게 될 것이다.
10년간 홀로 산을 옮긴 현대판 우공 이야기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주흥사는 하룻밤 만에 『천자문』을 완성하고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었다. 같은 글자를 단 한 자도 사용하지 않고 문장을 만들면서 그 안에 역사와 사상을 담기란 좋은 글을 짓는 것 이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자문을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부른다. 한문에 대한 해박한 지식뿐 아니라 고도의 훈련과 의지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천자를 읽어 천하를 알다-독천자 지천하』의 지은이도 이 과정을 마다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사서와 오경을 비롯한 고전의 숲에서 출전이 확실한 네 글자들을 골라냈다. 나아가 겹치는 한자가 없도록 성어를 교열하고 출전과 본뜻을 충실히 설명하며, 성어의 의미와 맞닿는 영어 명언도 함께 소개하여 동서고금의 가치 체계를 연결했다. 이 작업을 마치고 나니 “천지현황 우주홍황(天地玄黃 宇宙洪荒: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며 우주는 넓고 거칠다)”으로 시작하여 “위어조자 언재호야(謂語助者 焉哉乎也: 어조사는 언재호야이다)”로 끝나던 기존의 1,000자는 “경천애인 역지개연(敬天愛人 易地皆然: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처지가 바뀌면 말과 행동도 달라진다)”에서 출발하여 “두점방맹 신종여시(杜漸防萌 愼終如始: 나쁜 일은 미리 제거하고, 처음부터 그러했듯 끝까지 신중하라)”로 마무리되는 새로운 1,000자로 바뀌었다.
인사동 서실에서 서예를 배우며 시작된 지은이의 공부가 하나의 새 창조물로 완성되기까지 꼬박 10년이 필요했다. ‘온고지신’의 출전인 『논어論語』 「위정爲政」의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는 구절과 프랑스 생리학자 클로드 베르나르가 “인간은 알려진 것으로부터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Man can learn nothing unless he proceeds from the known to the unknown”고 했던 말 모두 이 책의 집필 과정을 설명하는 데 꼭 들어맞는다.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가 말하길 “널리 배우고, 뜻을 돈독히 하며, 간절히 묻고, 가까이 생각하면 어짊이 그 가운데 있다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고 했다. 네 가지 모두 지혜를 구하여 얻는 길이며 인仁으로 귀결된다.
복잡 다양한 삶의 현상에 대처하려면 알아야 한다. 배우면 배울수록 더 모르는 것이지만, 문제는 배움이 학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질문은 배움의 시작이며 먼저 나를 향한 질문들을 던져야 한다. 나를 둘러싼 환경과 나의 선택을 분별해야 세상을 헤쳐 나갈 대답을 얻을 수 있다. _ 3장. [수학: 간절히 묻고 가까이에서 생각하다] ‘절문근사’ 중에서
벼랑 끝 인생에서 벗어나는 지혜
『천자를 읽어 천하를 알다-독천자 지천하』는 사자성어를 통해 고전 세계를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살아갈 힘을 구하는 데까지 쓰임을 넓힌다. 각 성어마다 붙여놓은 지은이의 해설은 오늘날 필요한 자기계발의 중요 지침으로 삼을 수 있다.
1장 [자연: 빈손으로 태어나 가득 얻어 돌아가다]를 보면, ‘앙관부찰’ 구에서 천문과 지리를 살피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인간은 밝음과 어두움이 공존하는 현세에 머물며 시공을 초월할 수 없기에 (…) 불완전한 관찰·연구·사색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유추할 뿐이다”라고 인간의 한계를 규정한다. 이어 ‘양개음폐’ 구에서 인간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법과 도덕, 나아가 양심과 신앙이라는 가치 체계가 만들어졌음을 밝히고, ‘노당익장’과 ‘등봉조극’ 구에 이르러 나이듦은 단지 벼슬이 아니며 자신과 싸우고 자신을 버리는 대가를 지불할 때만 정상에 오를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처럼 자연·정사·수학·충효·수덕·오륜·인의·군웅·군자·한거·잡사·경계 등 열두 장에 배치된 250구의 사자성어는 따로 떼어놓으면 한 편의 흥미로운 옛 이야기를 읽는 맛을, 각 장의 흐름을 따라 연결해서 읽으면 고립무원 인생을 절륜絶倫으로 이끄는 성찰을 제공한다.
벼랑 아닌 인생이 얼마나 있으랴. 어차피 능력 밖이라면 놓아줄 때를 아는 것이 지혜요 용기다. (…) 인생절벽에서 두 손에 움켜쥔 욕심을 과감하게 내려놓는 것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숭고한 사명이다. 교만과 두려움 등 온갖 배설물을 비우고 새롭고 선한 것들로 채우기 위해 힘써야 한다. 사고의 바탕을 180도 바꾸는 것은 자기표현의 극치로서, 아무나 할 수 없는 역설적 자기 승인이다. _8장. [군웅: 낭떠러지에 매달린 손을 놓아라] ‘현애살수’ 중에서
널리 읽고 많이 쓰고 깊이 생각하는 즐거움
중국 송나라의 문인 구양수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널리 읽고(看多=多讀), 많이 써보고(做多=多作), 깊이 사색하는(商量多=多商量) 삼다三多를 권했다. 이것은 글쓰기를 넘어 현대인의 마음 수련에도 꼭 필요한 일이다. 『천자를 읽어 천하를 알다-독천자 지천하』는 책을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경험을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필사노트]를 함께 구성했다. 본 책과 필사노트를 함께 펼쳐놓고, 읽고 쓰고 생각하면서 독자들은 삶의 지혜와 실천을 균형 있게 가꾸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배우고 배운 것을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 (…) 도리를 행하고 남은 힘이 있거든 학문을 배우라”고 했던 『논어論語』 「학이學而」를 떠올리며 이 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