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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없는 책은 전국 어디도 없다' 전설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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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창립 40돌을 맞는 부산 영광도서의 김윤환 사장이 지난 세월을 얘기하면서 활짝 웃고 있다. 박수현 기자 

한 소년이 있었다. 살림은 넉넉지 못했다. 6남3녀의 셋째 아들. 중학교는 마쳤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한여름 논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고등학생이 된 동네 친구들이 하교하는 모습이 보였다. 까만 교복과 모자가 햇빛 속에서 유난히 빛나 보였다.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더라고." '이대로 시골에서 살기는 싫다. 공부하고 싶다'는 열망이 치솟았다. 1966년 음력설 다음날인 2월 1일, 소년은 무작정 부산으로 향했다. "그때가 열여덟 살이었다."

무일푼으로 고향 경남 함안군 대산면에서 부산에 온 소년은 우연히 일을 시작했다. '책 나카마'였다. '나카마'란 시장판에서 영업하는 영세한 중개상인을 뜻하는 속어다. "어렵게 자전거를 한 대 사서 부산 구석구석을 누볐죠. 헌책을 사고파는 일이었는데 서당과 야학을 열어 가르치셨던 아버지께 어려서부터 한문을 배웠거든. 부지런히 다니고 글도 볼 줄 아니까 조금씩 장사가 되더라고."

1년 반쯤 뒤 소년은 지금의 서면 급행장 근처 당시 중앙시장 안에 점포를 열었다. 고작 4.95㎡(1.5평) 넓이의 과일 박스를 뒤집어 헌책을 펼쳐놓은 '구멍가게'였지만 어엿한 내 점포였다. '영광'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어 '영광서림'이라는 상호까지 써 붙였다. 1968년 5월 1일 스무 살이 된 소년은 정식으로 개인영업자등록증(오늘의 사업자등록증)을 냈다. 부산의 대표적인 향토 대형서점이자 전국에도 널리 알려진 영광도서의 역사가 시작된 날이었다.

올해 창립 40주년을 맞은 영광도서 창업자 김윤환(59) 대표는 "영광도서를 시작할 때인 1960년대 말 서면 일대에는 청학서림 중앙서림을 비롯해 유명한 서점들이 많았는데 40년 뒤 돌아보니 지금은 우리만 남았더라"며 "용하게 힘든 세월을 이겨 나왔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다른 것은 제쳐 놓더라도 지역 문화인들부터 서울의 출판사들까지 모두 인정한 사실 한 가지는 이 서점이 단지 '책만 파는' 서점은 아니라는 점.

"지난달 10일 KBS TV '시사포커스'에서 전국 대형서점과 출판계의 왜곡된 도서 유통 관행을 비판하는 방송을 내보냈는데, 그때 '보기 드물게 정도를 지키는 서점이 있다'고 지목해 유일하게 긍정적 사례로 소개한 서점이 영광도서였습니다. 보람을 느꼈죠."

적극적인 문화사업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1972년 처음으로 독서캠페인을 시작했고 1985년 처음 개최한 영광독서토론회는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오는 28일에 40주년을 기념해 소설가 박범신 씨를 초청하는데 어느덧 128회째가 됐습니다." 김 대표는 "영광도서갤러리는 무료로 대관하고 문화사랑방에서는 각종 행사가 끊기는 날이 없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영광도서의 진짜 '전설'은 다른 데 있다. 부산의 지식인들은 "영광도서에 없는 책이면 전국 다른 서점에도 없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구하기 힘들고 희귀한 책을 사려고 대형서점들을 찾아다니다 허탕을 쳤을 때 바로 그 책이 영광도서에는 한두 권 비치돼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많은 대형서점이 이른바 '팔리는 책'을 중심으로 매장을 꾸미다 보니 구하기 힘든 책이 많은데 우리에겐 지금도 전국에서 그런 책을 찾는 전화가 많이 온다"고 김 대표는 말했다. 사실 이것은 놀라운 노하우라 할 수 있다. 그 비결을 물었다.

"초창기에 고객이 원하는 책이 없을 때 나는 '서점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자비로 서울을 드나들며 종로서적과 중앙도서전시관에서 정가에 책을 사서 밑지고 할인가에 부산 독자들에게 파는 일을 오래 했지요. 그것이 소문이 나면서 많은 교수님들과 연구자들이 단골이 됐습니다. 그때부터 익힌 안목과 습관 덕인 것 같아요."

음으로 양으로 부산 문화의 사랑방과 발전소 구실도 해가며 한국의 대표적인 지역 서점으로 성장한 40년의 소회는 어떨까. "저는 물론 책을 파는 사람이지만 '이윤'에만 머물지 않고자 애썼고, 문화를 생각하고 좋은 책을 갖추려고 노력한 것을 시민들이 좋게 봐 주신 것 같습니다. 모두 시민의 사랑 덕이죠. 서울 대형서점의 진출과 인터넷 서점의 공세 탓에 지금은 지난 40년보다 더 힘든 상황이고 포위된 기분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서점다운 서점, 지역문화를 생각하는 서점이 되는 것으로 보답해야지요." 그는 "40주년은 또 다른 시작"이라고 말했다

[국제신문 2008.5.14. 조봉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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