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영광독서 감상문

영광도서 0 5230

소소한 행동들을 통한 진지한 영혼의 해방

<유쾌하게 나이드는 방법58>를 읽고 

서울 성북구 길음1동 신미애 

 

 

특정한 일과 없이 방황에 방황을 거듭하던, 그리고 그 방황이 절정에 이르던 나의 2002년 여름은 그 긴 장마처럼 지리했다. 심리적으로 한번 주저앉으면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공황에 빠지곤 하는 나를 잘 알아서인지, 아니면 아무리 더운 날씨에도 ‘여름’이라는 단어조차 체감할 수 없는 볕 안 드는 시원한 자취방 때문인지, 친구들은 자주 내 집에 오고 싶어하였다. 

 

활기찬 여름이라는 계절을 서늘하기까지 한 방 구석에서 어느 시간부터가 낮인지, 어느 시간부터가 밤인지도 모른 채, 또 어느 순간부터 오늘인지, 어느 순간부터 내일인지도 감지하지 못한 채 시간을 빨아드리고 있는 내 모습을 보이기 싫은 탓에 내심 친구들이 귀찮고 꺼려졌다. 내가 점점 나를 벽 속으로 몰아 쳐가고 있음일까 라고 생각하는 틈에 친구들은 나의 사적이며 비밀스러운 영역으로 손을 내뻗었다. 

 

세수도 채 하지 못한 얼굴로 비소인 듯한 미소로 자신들을 맞는 내게 어떤 친구가 한 권의 던져주었다. ‘조그만 책? 이거 어디 기차여행이나 가면서 심심할 때 잠깐 잠깐 읽는 류의 책이잖아.’ 싶은 게 일단 기차 여행은커녕 전철 타고 한강근처 나가본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내게는 정서적인 더 큰 이유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뚱하니 만지작거릴 때 그제야 눈에 박힌 것은 제목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타임지 에세이스트가 권하는 - ‘전형적인 삼류의 전형을 밟는군.’ 하는 순간 한술 더 떠, USA 투데이가 선정한 ‘올해의 우수도서’ 라는 문구에 눈길이 멈추자 권력에의 호소라도 해야하는 이 책이 더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58’ 일단 ‘나이듦’ 과의 연장선상에서 나를 바라볼 수 없는 ‘어린’ 나이 탓도 있겠거니와, ‘아니 이것들이 내가 유쾌하게 나이 들 수 없는 사람 같다는 건가 뭔가.’ 하는 선물 한 사람의 호의를 작위적으로 해석함에서 오는 쓸데없는 패배감까지 덧입혀져 그야말로 책이 손에 쥐어지는 그 짤막한 순간, 실로 내 안에서는 여러 감정들이 맞부딪치며 지나갔다. 친구는 최근 읽은 책 중에 최고라며 너스레를 떨었고, 그 성화에 못 이겨 서문이나마 펴 보게 되었다.

 

 

 

“단지 당신이 감수하게 될 뭔가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따름이다.” 

 

허허. 이 작은 녀석은 당돌하게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넌 무언가를 감수해야 할거야.’ 라고 마치 난쟁이 현자처럼 내게 말을 건네 왔다. 그것은 꽤나 일방적인 통보 같은 느낌이었다. 감수해야 할 것? 감수해야 할 무언가? 이렇게 우리의 만남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게 시작되었다.

 

 

친구들은 그 날 밤 이후로 이틀을 더 지내다가 갔고, 친구들이 간 후에 다시 나는 그 작은 현자를 손에 잡았다. 무슨 책이건 한 손에는 자, 한 손에는 펜을 들고 잡아먹을 듯이 읽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나는 그래도 뭔가 한가지는 건지겠지 하며 책을 펼쳐들었다."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제1법칙)로 시작하는 내가 유쾌하게 나이 들 수 있다는 그 첫 번째 방법은, 내용을 보지 않아도, 그저 그 짧은 타이틀만으로도 내게는 면죄부 그 이상의 해방이었다. 

 

20대에 들어선 후로 줄곧 3년이 넘게 ‘~한 것이 문제야’ 라고 늘상 입버릇처럼 삶을 죄어 메고있던 나로서는 “그것은 네 잘못이 아니란다” 라는 천상의 어루만짐을 듣는 것보다 더 짜릿한 경험이었다. 그렇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1년 전, 내가 죽기 살기로 그토록 치열하게 고민했던 문제들, 그 문제들은 지금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비록, 그것이 해결되지 않은 채 남겨져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더불어 "당신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제2법칙) 라니! 이 얼마나 명쾌하고 나를 평안케 하는 진리인가. 우리의 대부분은,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내 생활의 대부분은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아파하며,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불필요한 변태적 도취에 빠져 스스로를 짓누른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리하여 내가, 신파조를 즐기며 스스로를 문제상황과 맞닥뜨려 있다는 착각으로 밀어 넣으면서 시작되는 로맨틱하기까지한 상상들과, ‘세상 사람들이 나만을 생각하고 있겠지.’, ‘그 때 나의 그 말 그 행동에 대해 곱씹어 생각하겠지.’ 하는 나르시즘을 직시할 수 만 있다면, 아마 동일한 시간에 같은 로맨스를 꿈꾸며, 같은 방식의 나르시즘에서 허덕이는 타자들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나를 생각할 것 같은 그 시간에 그들 역시 자신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짐 지워져있을 법한 삶 속에서의 지나친 자기 비하에 대해 저자는 “당신을 지겹게 하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야.”(제8법칙) 라며, 나를 벌거벗겨 거울 앞에 서게 한다. 

 

그리하여, 이제 모든 것을 확연하게 볼 수 있는 내가 굳이 카톨릭의 제의를 빌리지 않고서도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오소이다.”(제6법칙)를 신실히 고백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일련의 영적 제의를 통해 해방되고 치유된 나는 또한, 이 책을 통해 이제 내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비전마저 보게된다.

 

 

“자신이 잘 하지 못하는 분야를 파고들지 말라.”(제16법칙) 나는 얼마나 여러 가지 죄목을 붙여 스스로를 회개하게 하였던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그 일’을 찾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평정심을 찾기까지를 생각해 본다. 

 

3년이라는 시간동안, 내게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일도 해보고, 남이 하니 좋아 보이던, 그러나 정작 내 자신은 그 어떤 흥분도, 떨림도 느낄 수 없던 그런 일들도 해 보았지만, 남의 땅에서 손에 익지 않은 도구들로 내 집을 짓는 일이란 여간 어렵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 마음에 드는 아름다운 집도 결코 지을 수 없었다. 누구나 우주로부터 혹은 어떤 생명성으로부터 부여받은 그 원초적인 탤런트를 기반 하여 살아가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우며, 가장 아름다울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 나의 그 기반만큼이나 타인의 원초적 기반 역시 중요함을 역설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다른 사람을 개선하려 하지 말라. 그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걸 안다해도”(제31법칙)를 일깨워 주면서 언제나 가장 좋은 상담자, 가장 좋은 선생, 그리고 가장 좋은 의사를 자처하고 나서는 우리 스스로를 말려준다. 그것이 얼마나 무모하며 무의미까지 한가에 대해서 말이다. 

 

하긴, 나 스스로도 그렇고, 내가 ‘고쳐주기’를 희망하는 그 대상에 대해서도 그렇고, 일생을 다 걸고 죽기살기의 각오로 개선시켜 본다면야 언젠가 그 ‘창대한’ 꿈을 이루는 날이 오기는 올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우리 자신이 누구보다 더 잘 알 것이다. 여전히 잔소리를 하며 우리의 뒤를 쫓고있는 엄마들을 보라. 그녀들의 한결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더한 한결같음으로 변치않는 우리 자신을! 역시나, 그 ‘창대한’ 꿈에만 매두 몰진 하기에는 내 인생이, 그리고 우리의 인생이 너무도 짧은 것 같다.

 

 

이 책을 처음 손에 잡았던 그 여름에서 이제 벌써 많이 추워진 가을이 되었지만, 좌절 속에서 한아름 다시 나를 피울 수 있게 했던, 여전히 외형은 맘에 들지 않는 이 책을 중간고사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몇 일간 찬찬히 읽어보았다.

 

물론, 58가지의 모든 항목이 한결같이 나를 유쾌하게 나이들 수 있게 인도해 줄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대로 하다가는 내 명을 더 재촉할 법 한 법칙들도 있었다. 그러나, 처음 책을 읽었을 때의, 너무나도 개인주의적이어서, 혹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어서, ‘허허. 그렇게 살면 속은 편하겠네.’ 라고 헛웃음 짓게 했던 더러의 항목들은, 이제 끝 보이지 않던 절망 속에서 나를 해방시켜주던, 그 큰 느낌 그 아래로 천천히 가라앉는 것 같다. 

 

그리하여, 처음 대면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글쓰기의 참 목적은 더 넓게 살게 하는 것, 감각과 의식의 집중으로 빈틈없이 살게 하는 것, 그리고 더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는 것임”(p91)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저자의 그러한 글 쓰기가 그 자신뿐만 아니라 지구 저편에 있는 한 젊은이의 삶도 행복할 수 있도록 감염시켰음을, 그리고 그 젊은이 역시 그런 소소하지만 꽤나 힘이 센 행복을 전염시키기 위해 이렇게 쓰고있음을 상기하며, 나는 어쩌면 매우 유쾌하게 나이 들어가고 있을지 모른다는 착각에 빠졌다. 

 

이제 이 글에 마침표를 찍고나면, 나만큼이나 힘든 긴 방황을 하고 있는 내 친구에게, 나의 어떤 친구가 그랬듯이 이 책을 던져주고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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