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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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 <하루라도 공부만 할 수 있다면>을 읽고

                                                                                                   부산국제고 2학년 박민주

 

 

 

대한민국 고등학생, 아니 학생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사는 우리들에게 ‘공부’는 마치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여겨진다. 누군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외쳤던가. 하지만 지금 우리들의 눈앞에 성적은 적성이고 대학이고 성공 여부의 판단 기준이 되고 있다. 책상에 앉아 연필을 뱅뱅 돌리며 머릿속으로 언제쯤 이 험한 입시라는 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심각했던 고민들이 이 책 한권으로 배부른 고민이 되었고, 오히려 행복한 고민이 되어버렸다. 지금부터 내가 발견한 4가지 사소한 행복을 소개하려고 한다. 

 

행복의 이유 첫 번째, 나는 고등학생이다. 

날이면 날마다 전국의 고등학생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대학의 입시제도가 만연한 이곳은 대한민국 입시전쟁터이다. 새벽까지 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하루 24시간 1년 365일 ‘공부’라는 사슬에 얽매여 있는 고등학생의 삶은 그리 썩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오죽하면 공부 때문에 성적을 비관하여 자살하는 학생들이 생겨났겠는가. 하지만 이상하게도 난 고등학생으로 산다는 것이 참 기쁘고 좋아졌다. 넉넉하지 못한 우리 집 형편에서 난 오직 공부만 하면 되니 말이다. 21살이 된 언니는 대학교를 다니면서 남는 시간은 거의 아르바이트를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 때 언니는 참 많이 울었다. 그렇게 조금씩 언니는 세상의 소용돌이로 휘말려 가고 있었다. 난 그곳에서는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어야 하고,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아만 하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에게 있어서 한없이 청초했던 고등학생 언니는 이제 작은 엄마가 되었다. 금전적인 문제에도 늘 신경을 써야하고 엄마가 바쁘신 날이면 혼자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 하는 리틀 슈퍼 우먼이 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언니는 나에게 말한다. “넌 공부해라.” 나에게 이 말은 감사함, 그 자체이다. 아무 걱정 없이 공부만 해도 용서가 되는 난 고등학생이기 때문이다. 

또 나는 꿈과 희망으로 미래를 얼마든지 설계할 여유가 있는 18살이다. 늦게 결혼하신 탓에 벌써 50대 중반을 바라보시는 엄마는 카드회사에 다니신다. 엄마는 늘 ‘현실’이라는 높은 벽과 씨름하신다. 나의 학비와 급식비, 책값 등 눈앞에 몰아치는 매서운 현실 때문에 정작 진정으로 원하고 꿈꿔왔던 일은 뒷전으로 미루신지 오래이다. 이런 엄마의 모습을 볼 때 마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엄마는 종종 사이버 대학이라도 좋으니 상담공부를 해서 불우한 가정의 청소년들과 이혼부부들의 조언자가 되고 싶다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덧붙여 “니 대학가면......”하고 말꼬리를 흐리신다. 이에 비하면 나는 거의 축복받은 셈이다. 아직까지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꿈꿀 수 있고 그것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시간이 있으니 말이다. 내가 바라는 ‘이상’ 하나만은 바라보고 살 수 있는 것 자체나 나에겐 행복이다. 

 

행복의 이유 두 번째, 나는 1등이 아니다. 

이상하리만큼 잔인한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 분야든지 1등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 2등이 누군지, 3등이 누군지는 관심 밖이다. 하지만 1등이라 해서 꼴등이라 해서 그 노력의 가치가 다른 것은 아니다. 단지 저 멀리 있는 종착점으로 가는 과정에서 잠시 앞서가는 것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오히려 지금 1등이 아닌 것에 감사하다. 내가 쫒아 가야할 목표가 뚜렷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나에게 노력의 이유를 만들어 주고 나를 끊임없이 채찍질할 수 있는 핑계거리를 제공해 준다. ‘나는 왜 뒤쳐질까.’라는 자책보다 적당한 자극으로 받아들여져 ‘이제 앞서가는 일만 남았어.’라는 자기 쇄신에 이용하게 된다. 1등이 아니라서 다른 사람의 시기와 질투를 받지 않아도 되고, 또 어른들의 과도한 기대로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되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르겠다. 

물론 나도 속상했던 적은 많다. ‘왜 난 안될까’ 하고 스스로를 미워해 보기도 했고 ‘난 안되는가 봐’ 하고 체념하기도 했다. 중학교 시절 나에게 비춰졌던 스포트라이트는 특목고에 와서 산산이 부서지고 흩어져 지금은 촛불보다 희미한 한 뼘의 흐릿함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바뀌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입시라는 전투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고2 첫 중간고사를 치고 나서 담임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을 쉽게 잊을 수가 없다. “너희가 1등이든 아니든 너희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마라. 너무 속상해할 이유도, 자만해야할 이유도 없는 그런 가치 없는 등수에 자기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만약 내가 1등이었다면 이 말이 그리 가슴에 와 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1등이 아니었기 때문에 또 하나의 깨달음은 얻었다. 성적에는 등수가 있을지 몰라도 나라는 존재에는 등수를 매길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단지 ‘나’의 가치를 좀 더 돋보이게 도와줄 1등을 향해 노력할 뿐이다. 

 

행복의 이유 세 번째, 우리 집은 부자가 아니다. 

나는 아빠가 치과 의사, 대학교수, 사업가인 친구가 부러웠고 엄마가 선생님, 부동산 중개업자, 약사인 친구들처럼 되고 싶었다. 학생 인적 사항 란에 자랑스럽게 부모님의 직업을 적어 넣고 싶었다. 부모님 직업이 뭐냐는 그 간단한 질문에 1초의 고민도 없이 대답하고 싶었다. 아빠가 직업이 없던 6개월 동안 나는 회사원이라는 보편적인 단어를 사용했다. “엄마, 뭐라고 적어야 돼?”하고 물어볼 때마다 엄마는 아무 말씀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아빠가 회사원이었으면 좋겠다는 희망과 ‘무직’으로 차마 쓸 수 없었던 창피함을 그저 ‘회사원’이라는 한 단어에 다 묻어버렸다. 이 때문에 나는 늘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 인적 사항 란을 작성하고 따로 선생님께 제출했다. 그땐 뭐가 그리도 부끄러웠는지. 회사원이 경비원으로, 주부가 카드회사원으로 바뀌기까지, 솔직해지기까지, 부끄러워하지 않게 될 때까지 16년이 걸렸다. 그것도 아주 우연한 계기로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반 친구가 봉사활동을 함께 가지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체국에서 1년 치 도장만 냅다 찍는 게 봉사활동인 줄 알았던 나는 뭔가 제대로 된 봉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따라간 곳은 ‘천성재활원’이었다. 정신지체 장애 우들이 생활하는 곳에서 하루 종일 청소하고 목욕시키고 한숨 돌리고 있을 때 친구가 살짝 귀띔을 해 주었다. “민주야, 여기 있는 친구들 다 부모님이 버리고 가셨어. 그러니까 엄마, 아빠 이야기 되도록 하지 말고 어린애들은 많이 안아주지 마. 나중에 많이 울거든.” 그 순간 가슴이 먹먹해 지는 느낌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느꼈던 창피함을 어떻게 글로 옮길 수 있을까. 우리 집만 가난 한 줄 알았다. 아니었다. 우리 집은 행복한 집이었다. 나에게는 매일 밤 같은 식탁에서 함께 저녁밥을 먹을 수 있는 경비원인 아빠, 카드회사원인 엄마, 아르바이트를 하는 언니가 있었다. 가난이라는 것은 참 상대적이었다. 나는 내가 물질적인 것에 한해서 가난하다는 사실에 참 감사했다. 

이 값진 경험으로 좀 더 솔직해 지니 가난은 나에게 만남의 축복을 가져다주었다. 배우고자 하는 나의 열정만으로도 충분하다며 학원비의 반을 사랑과 믿음으로 채워주신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께서는 나를 그저 믿어주셨고, 감사하다고 고개 숙여 인사할 때 마다 그저 미소로 회답하셨다. 나는 그 분께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리고 선생님을 보면서 나도 커서 단 한사람에게라도 희망이 되는 그런 멋진 사람이 되리라 다짐했다. 나는 부유하지 않아서, 가난해서 감사할 것들이 더 많이 생겼다. 

가난한 열등생이 서울대에 합격한 이야기. 언뜻 들으면 정말 밉상이 아닐 수 없다. 이미 공부에 관련해서 서울대에 합격한 이야기는 어느 서점에 가도 한쪽 코너를 차지할 만큼 많은 책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엄마의 권유로 또는 선생님의 추천으로 몇 권 읽어보긴 했으나 모두들 나와는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었고 내 눈에는 그저 다른 세상 이야기로만 보여 졌다. 하지만 이 책은 달랐다. 나보다 더 심했으면 심했지 잘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곳에서 시작한 박철범군. 그래서일까.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감사했고 순식간에 삶에 대한, 당장은 공부에 대한 원동력이 되었다. 말 그대로 나는 공부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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