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4274

 

사랑하는 친구, 영희에게 -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읽고

                                                                                                   부산진구 당감3동 조명희

 

 

 

영희야 안녕~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기운이 가을임을 상기시켜 주는구나. 지난 번 만난 뒤로 잘 지내고 있지? 물론 나도 잘 지내고 있어. 

 

너, 혹시 내가 지난봄에 우리 아이 영어 자습서 사러 갔다가 너랑 성명이 똑 같은 이름이 고등학교 영어 교과서 저자로 올라 있다면서 전화했던 것 기억나니? 왜, 내가 너랑 똑 같은 이름이 고등학교 영어 교과서 저자 이름 맨 앞에 있더라고 하니까, 그 이름이 바로 너라고 해서 막 웃었잖아, 기억나? 알고 보니 그 분이 에세이집도 몇 권내시고, 번역서도 제법 많으신 영문과 교수님이셨어. 장영희 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다 뛰어난가봐^^ 우리 학교 다닐 때, ‘영희야 영희야 이리 와 나하고 놀자~바둑아 너도 이리 와’ 라고 놀리면 너는, 국어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좋은 이름이라며 맞섰잖아. 

 

최근에 장영희 교수님 에세이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을 선물로 받아서 읽어보았는데, 잔잔하지만 살짝 웃게 만드는 좋은 글들로 가득 차 있더라. 월간 <샘터>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서 낸 수필집인데 읽으면서 몇 번이나 혼자 웃었단다. 그런데, 그 교수님 암으로 투병하시다가 지난 5월에 돌아가셨어. 우리보다 겨우 열두 살 정도 많으신데.... 돌 무렵에 소아마비에 걸리셔서 다리가 불편하게 사셨어. 그래도 미국에 가서 공부해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으시고, 서강대 교수로 번역가로 칼럼니스트로 영어교과서 집필자로 바쁘게 사셨더구나. 역시 장영희 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다 대단한 것 같아. 30여 년 전, 오빠도 대학 가야 하고 두 살 아래에 남동생도 대학 가야하는데 네가 어떻게 대학에 갈 수 있겠냐면서, 고등학교 졸업하면 바로 돈 벌어서 집에 들여다 줘야 한다면서 울던 네 모습이 아직도 내 눈에는 선해. 너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좋은 회사에 다니면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다녔잖아. 보직이 좋지 않을 때는 휴학까지 해 가면서 어렵게 공부해서 문학사 학위를 받고는 우리 같이 기뻐했던 기억이 나는 아직도 생생해. 장영희 교수님이 신체의 장애에도 굴하지 않고 공부했던 것 못지않게 내 친구 장영희 역시 대단한 의지로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을 헤치고 공부해 냈지. 나는 내 친구 장영희가 정말 자랑스럽다. 

 

이 책에 나오는 글 중에 <미리 갚아요>라는 제목의 글이 있어. 교수님도 너나 나처럼 무슨 일이든 ‘미리’하는 법이 없고 항상 마지막 순간에 다급하게, 아슬아슬하게, 약간의 스릴감을 느끼면서 하셨다는 부분을 읽으니, 교수님이 좀 더 친숙하게 느껴지네. 

 

<스물과 쉰>이라는 제목의 글도 실려 있어. 교수님 고등학교 동창이 몇 년 전 ‘명퇴’를 당하고 봉사활동을 하며 소일하고 계시는데, 아직도 일을 잘 할 수 있는데 어디가나 무용지물에 퇴물 취급 받는다고 하소연하시는 부분이 나오는구나. 네 생각이 막 나더구나. 너도 재취업하고 싶은데, 몇 군데나 지원서를 넣어도 아무데서도 연락이 안 오더라고 속상해 했잖아. 우리도 한 때는 나이 덕 보면서 어디가나 환영 받는 존재였는데, 그 옛날이라면 생각지도 않았을 그런 회사에 지원해도 연락이 안 와서 알아보니, 적어도 서른다섯 이하라야 채용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속상하다고 했지? 직원 채용 시 나이 제한 없어졌다는 말을 그대로 믿고 여기저기 지원했던 네 자신이 바보 같았다고 속상하다고 했었지? 영희야, 속상해 하지 마. 그래도 네가 그 때 희망 퇴직한 덕에 네 딸이랑 함께 시간도 보내고, 네 딸이 제법 공부도 잘하고, 원하는 학교에 다니고 있는 것 아니겠니? 그것만으로도 너는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좋겠어. 장영희 교수님 같은 분도 쉰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젊은 이십 대 백화점 식품부 여직원에게 ‘나이 드신 분’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주눅이 들어서 젊은이들이 먹는 메뉴를 포기하는 부분이 나와. 최근에 네가 속상해서 했던 말이 생각나서 한참을 웃었어. 

 

참, 책 욕심이 많은 너는 내가 이 책을 빌려 주겠다고 해도 이 책을 사러 서점에 갈 게 분명한데, 가면 교수님의 또 다른 책 <생일>도 같이 사기를 바라. 그 책은 영미시를 교수님께서 번역하시고, 교수님의 코멘트도 달려 있어. 물론 영어로 시도 실려 있고, 우리가 좋아하는 예쁜 그림도 그려져 있으니까 네 마음에도 쏙 들 거야. 나도 요즘,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는 내 딸이랑 이 책에 실린 시 한편을 한 줄 씩 교대로 읽으면서 서로 느낌을 이야기 해주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어. 우리가 고등학교 때 외웠던 시들도 들어 있으니까, 네가 다시 한 번 외워보고, 엄마가 고등학교 때 외웠던 시라고 말해 봐. 네 딸도 아마 우리 딸처럼 ‘엄마 정말 멋져’를 외치면서 감탄의 눈빛을 보낼 거야. 

 

가을이 깊어가고 있어. 사랑하는 내 친구, 영희야. 

장영희 교수님은 당신이 투병하며 버텨낸 하루하루의 나날들이 기적이었다고 하더구나. 우리, 현실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도 불평하지 말자. 우리가 사는 하루하루가 장영희 교수님이 살지 못했던 정말 귀중한 시간이라는 것만 생각해도 위안이 되고 감사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 해 보자. 사랑하는 내 친구 장영희에게 사랑의 마음을 담아 보낸다. 안녕. 

 

                                                                                                                이천구년 시월 어느 날 

                                                                                                  너를 가장 사랑하는 친구 명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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