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4278

 

창문 너머에 -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를 읽고

                                                                                                   양정고 2학년 강영욱

 

 

 

햇살은 따스하고 시원스레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기분을 좋게 만드는 오후. 갑갑한 커튼을 올리고 사각형 창문 아래에 놓인 의자에 않아 머리를 창틀에 기댄다. 창 너머로 보이는 언덕 위의 새들은 창밖을 벗어나지 못한 채 죽은 듯이 기대어 있는 나를 비웃기라고 하는 듯이 ‘찌르르 찌르르’ 제 소리를 내며 마음껏 움직인다. 그들과 나의 눈이 마주쳤을 때 그들은 저 ‘눈부시게 푸르른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창문 안에 갇힌 내가 목을 쭉 빼더라도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날아갔다. 시인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의 영화 관람객처럼 나는 조금 내밀었던 목을 다시 안으로 넣어야만 했다. 터키행진곡의 전주부분이 스피커에서 새어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 이경혜의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의 재준이도 이런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일탈을 꿈꾸었지만 현실 상황에 얽매여 포기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장난으로 가정한 죽음이 현실에 마침표를 찍었기 때문이다. 나는 때론 그의 상황을 동경했다. 내가 만나지 못한 ‘죽음’이라는 세계에서 어떤 형태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반쯤 닫힌 반대쪽 유리 너머로 바깥 모습이 내 시야에 들어온다. 담장 전체를 뒤덮은 담쟁이도 보이고 연 노란색 국화도 보인다. 인간 아닌 다른 무언가의 삶을 동경한 것은 처음이다. 그것들은 찬 땅에 박혀 움직일 수 없었지만 그들은 스스로 나름의 흐름과 향기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교복을 입고 있다. 재준이도 유미도 나도 같은 공간 안에 있는 이들과 똑같은 것을 입고 있었다. 대한민국 청소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의무 교육 아래 우리는 속박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사실 학교가 우리를 속박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자신을 위해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부모를 위해 그들 스스로를 조이고 있었다. 재준이도 창밖의 자유로운 새들을 동경했을 것이다. ‘창’으로 인해 그들과의 소통이 단절된 채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재준이는 우리 모두가 겪는 고통을 자기 혼자만의 것으로 착각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유미를 부러워하면서도 자신은 제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나는 남은 창문도 활짝 열었다. 유미가 재준이의 진심을 알아주었던 것처럼 재준이가 소년에서 어른으로 향하는 문을 연 것처럼 다른 세상과의 소통을 하고자 했다. 재준이는 유미가 준 파란색 일기장에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라는 글귀를 새겼다. 재준이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소년이 죽어가고 있었다. 어른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멋지게 보이기 위해 오토바이도 배우고 외로운 친구를 위해 벚나무를 흔들기도 했다. 파란색 일기장의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재준이는 자라고 있었다. 하지만 사회는 그를 어른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쩌면 많이 자란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사회가 자신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갑갑하다고 느껴진 순간 자신을 던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어린 시절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지금은 이유조차도 알 수 없는 무식하다고 할 만큼 순수했던 그 시기에 무엇이 나를 그토록 잔인하게 몰아간 것인가. 작가 히로나카 헤이츠케는 ‘학문의 즐거움’에서 버섯 균근에 어느 정도 시련을 줘야 알맞은 버섯이 된다고 했다. 이처럼 우리는 시련과 고난을 겪으면서 내면의 성숙을 겪게 된다. 

 

나는 창문 밖으로 내 자신을 내 던지고 싶어졌다. 육체의 것이 아닌 정신의 것을 내 던지고 싶었다. 그리고 자유를 노래하고 싶었다. 재준이도 분명히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이던 재준이는 잘못된 방법을 택했다. 정신의 것이 아닌 육체의 것을 세상에 내 던지며 잠시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잔인하게 추락했다. 자신 속의 소년이 죽어가고 있는 과정 속에서 그는 자신을 죽이고 만 것이다. 하늘을 날아오르는 순간 그는 행복했을까. 자신이 쓴 완성된 가사를 본 유미는 행복했다. 같은 순간 서로 다른 모습으로 행복을 느낀 둘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같은 하늘 아래에 미소 짓고 있었다. 프라이팬 위에서 익어가는 계란을 위에서 볼 때는 맛있게 익은 것 같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뒷면으로 뒤집을 때 뒷면이 적당히 익었는지 탔는지 알 수 없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은 행복했지만 속은 행복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약한 불로 천천히 익힌 계란은 맛있었고 센 불에 익힌 계란은 시커멓게 탄 것이다. 

 

나는 유리창 너머에 있는 새들과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또 다시 그들끼리 날아갔다. 죽음이 아닌 생명의 땅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인간은 지역에 따라 다른 서로의 말을 하고 새들은 그들만의 소통을 하고 개미는 페르몬을 뿜으며 소통을 한다. 학교에 있으면서 많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한다. 가식 없는 진심으로 이야기하는 친구도 있고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다. 때로는 유리창 너머에 있는 새들 사이에 놓인 유리보다도 인간들 사이에는 더 두꺼운 벽이 존재하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손을 잡을 수도 있고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도 있지만 마음을 이해할 수는 없다. 어쩌면 이것이 재준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 아닐까. 유리창 너머에 있는 새들과 나 사이처럼 그는 사회에서 포기를 선택해야 한 것이 아닐까. 유리창을 활짝 열고 새들과 이야기를 하며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다. 교실 앞에서는 누군가가 칠판에 무언가를 적고 있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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