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4276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읽고

                                                                                                   동래구 안락2동 박은정

 

 

 

오늘 대학동기의 결혼식이 있었다. 스무 살 시절부터 줄곧 함께 해 온 절친한 친구의 결혼이다. 전국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있는 동기들이 한데 모였다. 참 반가웠다. 몇 년 만에 보는 얼굴들이었지만 악수를 나누고 포옹하는 동안 우리는 스무 살 그 시절로 돌아가 웃고 떠들고 즐거울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세월의 흔적을 비켜갈 수 없었는지 현재의 우리는 스무 살 그 시절과 참 많이 달라졌음을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어느새 우리는 더 이상 학생이기보다는 사회인의 냄새를 가득 풍기고 있었다. 반가움이 교차하는 가운데 한 가지 안타까웠던 것은 이제 겨우 서른둘인 우리가 이미 일상의 무게에 매우 지쳐버린 눈빛들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대화의 주요화제도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것이 주를 이뤘다. 

우리가 대학 1학년을 갓 마칠 즈음 우리나라는 IMF 구제금융위기를 맞았다. 실제로 함께 학교를 다니던 친구가 경제 사정 때문에 휴학을 하거나 자퇴를 하는 경우도 꽤 있었다. 대부분이 학교를 다녔지만 시대적인 분위기는 뭔가 달라져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우리의 한두 해 선배들에게처럼 관대하지 않았다. 수업을 땡땡이치고 파전에 막걸리를 곁들이며 사랑과 낭만을 외쳐도 높은 연봉의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던 시절은 슬그머니 사라져버린 것이다. 

 

90년대 말은 우리나라가 개방을 통해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로 전환하던 때이다. 그 과도기적인 시대에 우리는 참으로 갈팡질팡하며 좌충우돌했던 것 같다. 술 한 잔을 기울이며 사랑과 낭만타령을 하다가도 토익점수와 컴퓨터 자격증, 학점이 걱정되어 안절부절못한 것이 우리의 청춘이었다. 앞으로 먹고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최대한 상품화 하고 포장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 바로 내 청춘의 초상이었던 것이다. 지금조차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경쟁해야만 하는 참으로 고단한 시대를 살고 있다. 신자유주의체제 하의 대한민국에서 10대와 20대를 보낸 우리들은 비록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군사독재 하의 선배님들의 고충과는 다르지만 일종의 유사한 맥락의 위협에 시달리며 청춘을 보냈다. 그리고 우리뿐만 아니라 88만원 세대로 지칭되는 후배들은 어떤 사회적 변혁이 없다면 더욱 고통스런 시대를 살아가느라 자신이 가장 예쁠 때를 마음껏 즐기지도 못하고 청춘을 보내게 될 것이다. 

 

내가 공선옥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만나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바로 이 점이었다. 거대하고 무거운 시대적 아픔에 가려버린 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반짝하고 사라져버린 그 보석 같은 청춘의 날들을 놓치지 않고 챙겨준 그녀가 너무도 고마웠고 또 한편으론 따뜻하여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 

 

비록 해금이와 여덟 송이의 수선화들이 겪은 광주와 그 시대의 공동체적 고통을 우리는 경험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어떤 생생한 다큐멘터리만큼이나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그 무지막지한 시대적 폭력에 공감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녀의 느린 듯 해학적인 문체로 이뤄진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피나는 고통 속에서도 피어나는 아름다운 청춘이, 그 순간적이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시절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는다. 그 시대를 가로질러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부조리함에 그것이 훼손되지 않도록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 보게 된다. 

 

글을 읽어나가며 그녀의 간접화법이 내게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을 떠올리게 했다. 홀로코스트의 희생자인 주인공 죄르지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아 되뇌이는 독백은 홀로코스트의 잔혹함이 아니었다. 바로 가스실에서 올라오는 수용소의 굴뚝 사이 잠깐 쉬는 시간에 느끼던 행복감에 대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잔혹함과 고통에 대해서만 말하지만 죄르지는 그 행복감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어 한다. 사람이기에 느낄 수 있었던 살아 숨쉰다는 행복감 말이다. 

 

이것이 진정한 생의 핵심이자 공선옥이 전하고자 했던 바가 아닌가 한다. 광주의 아픈 상처뿐만이 아니라 그 깊은 고통 밑으로 가라앉아버린 정말 소중한 것. 바로 그 시절을 살아낸 해금이와 친구들의 아름다운 청춘과 보석 같던 사랑을 손으로 건져내 보여준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앞으로도 고단한 삶을 이어가야만 할 우리들에게도 외롭지 않다고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주어서 참으로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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