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4273

 

구도자적 삶의 精髓 - <일기일회>를 읽고

                                                                                                   기장군 정관면 예림리 윤현우

 

 

 

아버지께 

 

 머리에 이고 다니던 갈매빛 푸르름이 盛夏의 태양아래 더욱 짙어지고 있습니다. 

 

아버지, 저는 최근에 한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은 법정스님께서 지으신 법문을 모은 “일기일회”라고 하는 책입니다. 지은이를 모른 채 책을 접했을 때는 제목이 풍기는 첫 인상의 날카로움에 그다지 반갑지 않았습니다. 마치 “이번이 마지막이다”라고 윽박지르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누구라도 책을 지을라치면 그 책의 사상과 내용을 관통하는 번쩍이는 제목을 붙이려고 심사숙고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아버지, 저는 아직 수양의 깊이가 얕아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책장을 넘겨가면서 왜 법정스님께서 一期一會라는 書題를 두셨는지 조금은 알 듯도 하였습니다. 스님과 만나는 시간이 깊어질수록 스님의 수행의 깊이에 저 역시 은근하게 물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스님을 뵙기 전, 저에게는 뭔가 억눌러지지도 않고 억누를 수도 없는 것이 제 안에 있었습니다. 마치 커다란 불덩이가 가슴 속을 휘젓고 다니는 듯 하였습니다. 목구멍에 손가락을 찔러 넣고서라도 켜켜이 쌓인 기분 나쁜 그 느낌을 토해내고 뜨거운 태양아래 뽀송하게 마른 하얀 빨래들처럼 저도 그렇게 되고 싶었습니다. 늘 그렇듯 의미 없는 삶의 질주 속에 남아있는 것, 견딜 수 없었던 그것은 공허한 자괴감과 당혹감이었습니다. 홀로 있음을, 고독과 외로움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밤이었습니다. 아~ 제가 밤이었다니요. 

 

그러던 제게 법정스님은 온유한 미소를 지으시며 나약한 저에게 손을 내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손을 저는 차마 부끄러워 바로 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저에게 주신 그 손을 덥석 잡지 않은 것이 돌이켜보면 잘 한 것 같습니다. 법정스님의 통찰력과 慧眼을, 字間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연륜의 향기를 이토록 진하게 느끼는 까닭은 저 나름의 사유의 시간을 가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직선주로를 맹렬히 질주하는 제 삶에서 이제는 그만 내려오라고 하셨습니다. 신발을 벗고 큰 호흡 한 번하고 구불구불한 길을 걸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맨발로는 세상의 굴곡을 느끼고 열린 가슴으로는 뜨거운 삶을 껴안아 거침 땀방울 속에서 새록새록 숨 쉬며 피어나는 生의 고갱이를 향유하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습니다. 앞서가는 많은 사람들, 따라오는 또 다른 많은 사람들. 이 사람들 속에서 이탈하는 것이 과연 잘하는 것인지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무모한 질주 속에는 오로지 저만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그저 뿌리대로 숨 가쁜 그 질주에서 걸음을 멈추는 순간 마음은 한 결 가벼워졌습니다. 혹독한 수련과 자기성찰에서 나오는 스님의 은은함이 달릴 줄 밖에 모르는 저를 세우셨습니다. 그러자 무심했던 풍경이 진한 향기를 남기며 저를 둘러싸는 것이었습니다. 질주 속에서는 무채색의 풍경이었는데 힘겨운 삶을 잠시 내려놓으니 저를 둘러싼 풍경들이 이토록 다채로운 향기를 간직하고 있었다니…….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스님의 법문은 제게는 天上의 언어가 땅에 내리는 한 줄기 별빛과 같았습니다. 그 빛은 사물 본래의 색과 본래의 향을 향유케 한 빛이었습니다. 스님의자취로 인해 팍팍한 저의 삶이 한층 풍요로워 지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스님의 저의 밤을 밝히는 구도자의 빛이었습니다. 

 

아버지, 우리는 겉으로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고 있는 것 같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다른 추억을 만들며 다른 곳을 바라보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밤마다 돌 빛 흐르는 시린 가슴을 부여잡습니다. 날카롭고 잔인한 혀 때문에, 이를 데 없이 거친 힘 때문에 우리는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에게는 떨림이 없습니다. 떨림이란 새로운 시작에 대한 차가운 憧憬에서 나오는 경이가 아니던가요. 냉정한 떨림이 사라져버린 지금 바로 이 순간, 아름다운 열정은 사라지고 추악한 욕망만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 중에 진정으로 떨림을 가족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진정으로 흔들리고 있지 않다면, 진정으로 떨리고 있지 않다면, 차라리 꺼져버리는 것이, 차갑게 식어져서 툭 떨어지는 것이 그리고 나서 다시 활활 타오르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시작이라는 것은 알을 깨고 나오는 破瓜의 고통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떨림 없는 시작이 어디 있습니까? 법정스님의 법문은 저에게 스스로 燦然하게 빛날 수 있게 해주는 떨림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아브락사스를 향해 날아가는 작은 새조자초 떨림을 간직한 채 용감하게 두려운 그 시작의 알을 깨고 창공을 훨훨 날지 않았던가요. 스님께서는 고통 없는 시작은 우리를 나약하고 安逸하게 만들 것이나, 험난한 시작은 강하고 아름답게 우리를 가꿔 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두렵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고, 살아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한 것임을 스님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삶이 어깨를 눌러 저와 저의 동료들이 힘들어하고 두려워하고 있다면 즐거워할 일입니다. 시작하는 사람에게만 두려움이 존재 할 지니 진정으로 우리가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뜻일 겁니다. 존재의 즐거움, 아름답지 않습니까? 

 

법정스님을 몰랐던 때의 저는 아는 척하며 거들먹거리기도 하고, 없는 것을 있는 양 거짓부렁도 하였습니다. 많이 가지지 못 한 것 을 아쉬워하고, 많이 쓰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였습니다. 하지만 스님의 一喝에 정신이 번뜩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제게 “너는 이제 어찌 할 것이냐? 너도 나와 함께 삶의 정수를 만끽하며, 많이 소유하지 못하나 실은 더 많은 것들을 소유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추구할 것이냐? 아니면 무미건조한 삶의 질주를 의미 없이 계속할 것이냐?”고 서슬 퍼런 話頭를 던지셨습니다. 아버지 스님의 말씀대로 百尺竿頭에 선 시퍼런 칼날 같은 지성을 가지고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하는 이가 사라지고 기도만이 남을 때까지, 無常조차 무상해지는 몰입의 그 순간, 우리에게는 날개가 돋아날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손잡고 하늘을 날 수 있을 겁니다. 아버지……. 

그리하여 마침내 기도하던 우리는 저 멀리 있는 별을 향해 날아갈 수 있을 겁니다. 가슴 속에 묻어둔 차가운 칼로 어두움의 긴 이 밤을 잘라나가, 결국에는 우리, 新새벽의 그윽한 햇살을 온 몸으로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스님은 제 인생의 오롯한 꽃이 되어주셨습니다. 맑고 향기롭게……. 

 

아버지, 뜨겁던 여름의 태양아래 시작한 편지였는데, 어느 덧 가을의 발자국이 문지방을 넘은지 한참입니다. 짧은 글재주라 고치고 다듬는데 시간이 제법 걸렸습니다. 

 

환절기 건강 조심하십시오. 

 

                                                                                                                2009년 9월 20일 

                                                                                                       여전히 어린 자식 현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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