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영광독서 감상문

영광도서 0 6560

사후세계의 두려움, 그러나 유쾌한 삶 

"단테의 신곡" 를 읽고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맞게 된다. 살아서는 고생만 숱하게 하다 생을 마감하는 민초들은 물론,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고 천년만년 살고 싶어 하던 왕후장상들 또한 그 죽음의 술잔을  피해갈 수 는 없다 .중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통일제국을 세우고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었던 진시황도, 죽음을 피하기 위해 불로초를 구하러 전 세계에 초동을 보냈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절대적으로 평등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등하게 모두가 죽는다고 해서 그것이 꼭 유쾌한 일만은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야 할 뿐만 아니라 그간 일생을 통해 쌓아올린 모든 업적을 잃어버리고, 혼자서 빈손으로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두려운 죽음 후의 세계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기 시작했다. 이에 기독교에서는 살아있는 동안의  언행에 따라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게 된다고 가르치며 사랑을 주장하였고, 불교에서는 생전의 업보에 따라 사후에는 다른 생명으로 태어난다는 윤회를 바탕으로 자비를 실천하기를 강조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이러한 가르침조차도 죽은 자가 우리에게 직접 이야기 해준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가 생각해 낸 상상의 세계이므로 결국‘살아있는 자의 사후세계’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죽음 후의 심판이나 인과응보를 강조하여 만인을 교화하여 선한 일을 행하고 악한 일을 멀리하게 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적 기능을 해왔음을 부인하기도 어렵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신곡’은 죽음을 매개로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하여 소설형식으로 지은 단테의 윤리학 교과서라고도 할 수 있다. 과연 그가 바라보는 사후세계는 어떠한 모습일까?

 

그가 신곡의 첫 부분에서 노래하고 있는 지옥의 모습은 사후의 모습이라기보다는 현실에서 실제 우리들이 저지르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에 다름 아니다. 물론 지옥 편에서 벌을 받는 자들은 생전에 각종 욕망과 쾌락에 사로 잡혀 앞뒤 안 가렸을 뿐만 아니라 거짓말과 기만, 모략 등을 저질러 그 대가를 치르는 자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저지른 죄는 실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무수히 접할 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종종 저지르는 잘못이기도 하므로 결국 단체는 현재 생을 영위하는 우리에게 죄를 멀리하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물로 우상과 이교도의 죄를 저질러 벌을 받는 자들의 모습을 보면, 현재 종교의자유가 인정되는 사회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기는 하지만 당시 로마 가톨릭으로 종교가 통일되어 있던 유럽에 살던 단체에게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당연한 처벌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모두에게 지옥 편에서 보던 가혹한 형벌을 받는다고 하면 이 책의 원제(La Divina Commedia)처럼 결코 신성한 ‘희곡(Commedia)'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스신화를 보더라도 교만하고 신을 경멸한 인간을 벌하기 위해 제우스는 판도라에게 상자를 보내어 온갖 고통을 인간에게 부과했지만 그 상자에 마지막으로 희망이 남아 있었기에 인간은 고난에서도 버틸 수 있다고 하였다. 단테는 신곡을 읽는 독자에게 죄악의 대가가 가혹할 것임을 지옥 편에서 강조하였지만, 살인과 같은 큰 죄를 저지르지 않고 가벼운 거짓말이나 친구끼리의 싸움 정도만의 죄를 저지르고 생을 마감하는 대다수 선량한 사람들에게도 지옥에서의영원한 고통을 말한다면 그 가혹함에 사람들은 신에게서 등을 돌리지도 모를 일이다.

 

따라서 무서운 지옥 순례가 끝나면 단테는 연옥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연옥이라는 개념 자체가 초기 기독교 사상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모습이었으나 가벼운 죄를 저지른 자를 구언하기 우해 교회의 목적상 창안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는 만큼, 연옥에서의죄인의 모습은 형벌을 받긴 받으나 그 형벌은 영원한 기쁨을 주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정화(淨化)의과정이므로 죄인들은 회개하며 천국에 입장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다. 구원의 희망마저 사라지고 절망 속에서 끊임없는 고통을 받으면서도 죽을 수조차 없는 지옥에서의 비참한 죄인들과 달리 연옥에서 죄인들은 생전의 자신의죄로 인해 벌을 받지만 더 나은 곳으로 갈수 있다는 희망으로 그 고통을 이겨내고 끝내 천국으로 입장하는 영광을 가질 수 있으므로 그 고통을 이겨낸다는 점에서 현실의 어려움을 미래에 대한  희망을 견뎌내는 인간의 숭고한 의지를 엿 볼 수  있다.

 

그리고 지옥과 연옥의 여행을 거쳐 그가 마지막으로 도달하는 곳이 바로 천국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는 자신이 사모하였던 청춘의 상징베아트리체를 만나게 되며 기독교도인 그가 바랄 수 있는 최고의소원인 절대자 신을 한번 우러러 볼 기회를 가지며, 하느님이 정의와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결국 단테는 천국편을 통하여 우리에게 천국에서의 기쁨과 평안을 소개하고 그러기 위해 살아 있는 동안 선을 행하고 악을 미워하라는 교훈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실천들이 쌓여져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사회가 더욱더 살기 좋은 모습이 되기를 기원했던 셈이다.

 

앞서 말했듯 신곡은 제목만 보면 유쾌한 희곡(Commedia)이다. 신곡을 보며 사람들이 하나둘 죄악에서 떠나 영원한 기쁨을 얻는 천국으로 향하는 행렬에 몸을 실을 것을 상상하니 작가인 단테는 그 기쁨이 넘쳤을 것이고 또 단테와 같이 신심이 깊은 사람이라면 사후에 천국은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문화권이 다른 우리 한국인에게 사후세계를 상상하는 이 신곡이라는 책은 유쾌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양이 방대하고 재미없는 시만 잔뜩 나올 뿐만 아니라 유럽 문명의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배경지식이 많이 요구될 분만 아니라, 우리네 속담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 한국인은 괴로워도 죽음보다는 삶 속에서 웃을 찾기를 더욱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단테의 신곡은 유쾌한 희곡이 아닌 껄끄러운 비극(Tragoedia)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이 솔직한 이야기일 것이다.

 

흔히 서양은 합리적이고 동양은 감정적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는 얼마 전 타개한 에드워드사이드에 의해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비판받았지만 확실히 동양과 서양은 그 지리적 거라나 환경의차이만큼이나 다른 점들이 없을 수 없다.그래서인지 신곡이라는 서구 유명작가의 거대한 서사시보다는 우리네 작가 황순원씨의 인터뷰 한 소절이 삶과 죽음에 관해 더욱 깊은 감동의 성찰의 기회를 주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사람들은 모두 천국에 갈 겁니다. 왜냐고요?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면 자기 자식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런데 대관절 자식이 죄를 지어 속을 좀 썩이고 아무리 미울 만정 내치는 부모 있습니까? 결국 자기 새끼니 잘 봐 주시겠죠……. ‘ 하며 근거 없는 낙관론에 빠져 오늘도 친구와 술 한 잔 할 것을 기대하며 미래를 꿈꾸며 즐거워하는 나는 황순원씨 같은 토종 한국인인가 보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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