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영광독서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5641

<덕혜옹주>를 읽고 

 

                                                                                               대명여고 3학년 유다솔

 

황족의 혈통을 타고나 일본 땅으로 끌려가 처절하게 시들어간 여인 덕혜옹주. 서점에서 책을 손에 드는 순간부터 그 이름에서 베어나는 비운이란 느낌에 값 치르기가 주저스러웠다. 그 느낌이란 과거 명성황후와 관련된 소설책을 사던 느낌과 흡사했다고나 할까. 지금에 와서 아픔의 역사를 슬픔으로 곱씹어본다는 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책 속에서 떨어지는 눈물을 보았다. 표지 삽화 속 여인의 슬픈 눈이 이 책의 내용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애잔했다.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우선 나의 의식을 고착화 시키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야 했다. 과거 우리 민족의 역사를 말살시킨 제국주의, 아직도 그에 대한 반성은커녕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고 있는 파렴치한 나라 일본. 그런 선입관이 작용한다면 이 책을 읽는 나의 시선은 편협해 질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과거의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전제는 명확하지만 그렇다고 소설을 읽는데 있어 그런 사안까지 전제해 둔다면 이 소설에서 말하려는 본직을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한 것이었다.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작가 권비영님의 회고처럼 이 책에선 우리가 버린, 아니 버리고 싶어 하는 시대적 아픔의 역사가 배경으로 장식되어있다. 하지만 묻어버릴 수 없는, 결코 묻어버려서도 안되는 슬픈 역사가 한 여인의 몸을 빌어 우리에게 어떤 교훈으로 등장하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작가는 그 사명감을 버리지 못했고 결국 한 여인의 고달팠던 운명은 작가의 펜을 거쳐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과 각성이 되어 돌아왔다. 특별한 감동이나 지식을 전해주기 보다는 아픔을 곱씹으면서 반성과 저항의 힘을 가지고 하는 게 이 책의 매력이었다. 논픽션 소설이기는 하지만 책 속에 등장하는 덕혜옹주의 운명은 정말 소설 속에서나 창조될 수 있는 듯한 극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결국 그러한 운명의 모든 면에서 철저하게 덕혜옹주를 고립시켰고 본인 스스로도 타협을 외면하게 했던 건 아닐까? 그 처지를 작가는 ‘누구도 다가설 수 없는 무인도’ 라고 표현하고 있다. 천 길 낭떠러지가 서로의 소통을 막고 있는 고독한 섬, 외롭고 고단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무너트릴 수도 없었던 황족이라는 운명의 벽. ‘내가 조선의 옹주로서 부족함 있었더냐?’ 한 많은 귀국을 하던 날 덕혜옹주는 공항에서 자신의 운명에 대해 그렇게 당연성과 설움을 토로했다.

뛰어난 시화 능력이 갸륵해 무엇으로 포상할까 묻는 고종의 말에 업어 달라 조르던 해맑은 소녀 덕혜. 하나 뿐인 고명딸로 고종의 총애를 받으며 황실의 꽃으로 불리던 조선의 마지막 황녀. 조선과의 병합을 이룬 일본이 그렇게 상징성 강하고 백성들에게 따뜻한 호감을 주는 그녀는 그냥 놔 둘리없었다. 13살 아이에 고종의 죽음을 목격하고 일본으로 끌려간 덕혜옹주는 그 충격으로 인해 조발성치매 증상까지 보이게 되지만 끝까지 조선의 옹주로서의 위엄을 잃지 않으려 저항한다. 그녀의 곁에 충성스런 하녀 복순이 늘 함께 있어 든든하다. 덕혜옹주의 남편 타카유키의 등장과 정략적 결혼은 치밀하게 계산된 일본 정부의 예정된 수순이었지만 풍부한 지식과 너그러운 마음을 겸비한 그의 존재는 극우 일색의 표현일 거라는 나의 선입관을 무너트리기에 충분했다. 물론 혼마 야스코가 쓴 덕혜옹주를 참조한 영향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그런 타카유키의 자상함과 헌신적인 노력은 결국 일시적이나마 덕혜옹주의 마음마저 열게 한다. 그 결실로 정혜, 일본명 마사에라는 딸을 얻게 된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결과가 그녀를 극도의 혼란으로 몰아넣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일본인과 결혼했고 그의 딸마저 출산했다는 사실에서 조선인들은 그녀를 외면하게 되었고 그렇다고 일본인이 될 수도 없었다. 또한 조선인이라 따돌림 당하는 딸 정혜의 괴로움은 덕혜옹주의 아픔을 두 개로 만들어 버렸을 것이다. 헌신적으로 자신을 지켜 주던 복순마저 행방불명되자 덕혜옹주는 그것이 일본의 공작임을 예감하며 마음의 문을 닫고 만다. 다시 조선의 옹주로 돌아온 것이었지만 그것은 남편과의 갈등을 고조시키며 딸 정혜의 고립을 배가 시켜갈 뿐 모두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그럴수록 딸 정혜를 데리고 조국으로 돌아갈 거라는 신념은 더욱 확고해지지만 길은 막연하다. 그러던 어느 날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 돌아 온 딸 정혜가 자신은 일본인이 될 거라고 선언하는 청천벽력 같은 절규는 결국 그녀로 하여금 정신줄을 놓게 만든다. 우리는 강제라는 표현을 쓰지만 사실 남편인 타카유키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녀를 정신병원에 수용하게 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해본다. 딸과 함께 죽을 거라 수면제를 잔뜩 쌓아두고 딸과 함께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려는 조짐을 보이는 등 극도로 불안하고 경황없는 덕혜옹주의 행동을 그대로 방치했었다면 소설은 거기서 단절되고 말았을지 모를 일 아니던가. 

소설의 극적인 면을 다루려 했었던 것 같지만 박무영 일행의 덕혜옹주 구출작전이나 수미상관으로 이어지는 복순의 죽음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였다. 해방이 된 1962년 당시 그렇게 총격까지 받아 복순을 죽여 가면서까지 극적인 탈출이 필요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으며 차라리 왜 귀국이 이뤄지지 않았는가하는 정치적, 외교적 문제가 언급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조선인도 일본인도 될 수 없었던 국제 사생아 덕혜옹주, 조국에 있으면서도 조국이 그리웠다는 그녀의 유언은 우리가 버리고 싶어 하는 치욕의 역사와 단절시키지 못한 일제잔재 청산의 생채기가 아닐까? 지금 우리, 남북이산가족 문제를 그렇게 방치하고 있는 건 아닐지 뒤돌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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