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영광독서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5650

나를 찾지 않는 세상을 향해 전화기를 들고 -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를 읽고

 

                                                                                                  부산진구 초읍동 류지민

 

계약 기간이 만료된 학교를 그만두고 알량한 자존심에 자기계발이라고 이름 붙였던 생활이 조금씩 리듬을 잃어가고 있었다. 집 밖으로 나가는 시간이 줄어들고 잔뜩 웅크려 지인들의 전화도 슬슬 피하고 싶어질 무렵, 한 학생이 선물해준 책을 꺼내들었다. 문학을 좋아하고 시를 잘 쓰던 그 아이가 나를 위해 작가에게 친필 사인을 받아주었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라는 신경숙의 신작이었다. 책의 앞장을 펼치자 내 이름과 함께 ‘거기엔 별이 있어’라는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거.기.엔.별.이.있.다,고? 

 

일상을 살아나가던 사람이 한 계기를 통해 잊고 살았던 시간을 떠올리게 되고, 기억의 조각들을 맞추어 가면서 진정 잊지 말아야만 했던 과거의 그 무엇과 만나게 되는 것. 그 과정은 비록 상처와 갈등의 연속이지만, 마지막에는 다시 일어서게 되는 것. 나에게 신경숙 소설은 이렇게 정의된다. 그 때마다 늘 드는 생각이 있었다. 왜 우리는 그토록 사랑하고 소중하게 지켜왔던 시간들을 외면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는 것일까. 그렇게 비겁하게 눈 감아버리면 상처는 아물고 평범하게 살 수 있을까. 

소설은 그런 기억을 8년째 봉인해두었던 주인공 정윤이 명서의 전화를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정윤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며 하루 두 시간씩 걸어 다닐 때,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던 열혈 청년 명서와 만나게 된다. 그들은 운명적으로 사랑하게 되고 거기에 명서의 친구인 미루, 정윤의 친구인 단이,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얼핏 보면 각자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소설 속의 인물들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1980년대 진정한 소통을 위해 기성세대에 반기를 들었던 많은 청년 중에 미루의 언니인 미래의 남자친구가 있었고, 그의 실종은 미래언니의 자살로 이어진다. 미루는 하루에 먹은 것을 모두 기록하면서 세상에 흔적을 남기며 살고자하지만 거식증으로 죽게 된다. 단이는 자아를 찾기 위해 지원한 군 복무 중 미심쩍은 죽음을 당한다. 그들을 이끌어갔던 윤교수도 시대에 항거하며 학교를 떠난다. 

결국, 연결되어 있던 모든 사람들은 하나씩 상처를 안고 있었고 서로의 고통을 공유하며 의지하게 된다. 이것은 윤교수가 수업 중 언급했던 ‘크리스토프’ 이야기와 연결된다. 즉, 고난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서로 협력해야 하며 어느 누구도 시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어느 정도의 책임을 안고 살기에 각자가 시대적 사명에 대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방법은 다양하며, 때로는 너무 힘들기에 도망치고 싶기도 하다. 마지막까지 아슬아슬하게 이어가던 이 젊은이들은 결국 감당하지 못하는 자신과 서로의 삶을 위해 잡았던 손을 놓아준다. 

그리고 흘러가는 8년의 시간. 그들은 비겁했고, 그러기에 과거의 모든 일은 허무한 것일까? 자칫 그런 방향으로 전개되는 듯하지만, 작가는 분명 아니라고 말한다. 정윤은 미루의 귀먹은 고양이를 기르고 있었고, 단이의 의문사를 추적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을 안아주자고 제안했던 명서는 자신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충동을 이겨내며 ‘포옹하는 젊은이들’이라는 사진전을 열게 된다. 낙수장 역시 펜실베니아의 대학에서 건축공부를 한 뒤 돌아와 건축설계사무실에서 일한다. 결국, 이들은 그 시간 속에서 힘들고 아파했지만, 그 시간들을 부정하지 않았고 현실과 연결시키며 꿈을 이루고 살아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한번씩 세상을 살아가는 데 ‘정석’과 ‘정답’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다. 지금처럼 모두가 ‘정규직’일 때 혼자만 ‘계약직’이라 세상의 한 부분으로 떨어져 나가, 꿈을 향한 내 노력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 말이다. 누군가 가장 바람직하고 성공적인 삶을 목표로 정해주고 방법을 알려준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청춘이 조금 덜 아프고 덜 힘들면서 편안한 중년으로 넘어가기를 말이다. 하지만 인생 곳곳에 절망은 있었고 그 때마다 나는 안정되지 못하는 내 인생을 탓하며 숨어버렸다. 모든 것이 이제 끝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거짓말처럼 절벽이라고 생각했던 그 곳에 또 다른 길이 이어져 있었다. 정말이지 인생은 각기 독자적이고 결국 그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자신만의 방식이며 하루가 똑같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애쓰는 것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인생에게 지우고 싶은 순간이 있을까? 실패하고 좌절하는 그 순간에도 현재와 연결되는 삶은 계속 되고 있는 것이다. 잊은 듯 살아가지만 항상 건드리면 터져 나올 곳에 나를 만든 모든 과거가 있다. 그러기에 정윤이 간직한 명서의 갈색노트 또한 영원히 봉인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누구도 혼자가 아니었다. 각기 다른 이름으로, 다른 양만큼의 책임감을 지고서 서로를 지켜봐주고, 격려하며 함께 나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이 청춘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나도 별이다. 이 세상의 단 하나의 별빛이다. 기억의 저 편으로 숨기고 싶은 시간들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 존재를 증명하며 서서히 성장해간다. ‘언젠가는’이라는 막연한 어느 시점을 꿈꾸며 현실을 외면하고 원망하기보다는 그 ‘언젠가는’이 지금이 될 수 있도록 부딪히고 만들어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부러지지 않도록 나를 누르는 고난과 시련을 덜어줄 수 있도록 손 내밀어주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끌어안으며 잊지 못할 뜨거운 순간으로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삶이 아닐까 싶다. 비록 그것이 세상이 말하는 성공에 닿지 못한다하더라도, 세월이 지나 어느 날 우연히 걸려온 전화처럼 내 기억을 한편을 두드려도, 웃으면서 당당해질 수 있도록 말이다. 

팽개쳐 두었던 전화기를 찾아서 든다. 그리고 나를 찾지 않는 세상을 향해 버튼을 누른다. 나에게 오는 전화를 막연히 기다리지 않고, 나 스스로 세상 밖으로, 그 곳으로, 지금, 가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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