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영광독서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5654

나의 가물치 -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를 읽고 

 

                                                                                                  김해시 상방동 문유경

 

‘이건 아니야.’ 

허허로운 가슴으로 껄끄러운 갈대숲을 헤집고 나오듯 온 몸을 산발하고 또 집을 뛰쳐나왔다. 간헐적으로 내 몸을 찔러대었던 삶의 까그러기들이 서로 뭉쳐지고 뭉쳐져서 뾰족한 날 하나를 세우는 날에는 가만히 넋 놓고 앉아 그것들을 버텨낼 수가 없었다.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궁핍과 가난과 초라함과..... 내 문학과 詩와 자존심을 다 뭉개어버리는 듣기 싫은 언어들이 버젓한 내 현실이 되어버렸다. 

남편의 무능력..... 

돋보기처럼 확대된 삶의 활자들이 때론 나를 위안하고 그래, 나를 미소 짓게도 하지만 그것이 대수랴? 아무런 능력이 없는 내 남편을 가진 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아. 닐. 까? 

칠암 도서관, 그 문을 열어젖히며 묻고 또 물어보았다. 그 형형색색의 물음 끝에 나를 동병상련하게 하는 것과 또 한번 마주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겨자 빛이 고운 신달자 시인의 에세이였다. 그런데 “그건 아니야.” 아니라고 했다. 이 세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낼만 하며 가족은 가족이기에 남편이기에 사랑하고 화해하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그녀의 30대가 온통 우울과 절망의 시기였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수록 삶을 관조하게 되며 모든 것이 불행하고 모든 것이 상처인 것 또한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대목을 읽으며 공지영님의 ‘패랭이 꽃’에 대한 글을 떠올렸는데 그 때의 감흥이 되살아나면서 내 삶이 오버랩되었다. 어느 까페 계단에서 발견한 보랏빛 패랭이 꽃이 너무나 완벽하게 아름다웠지만 ‘너무 아름다우 모조품은 아닐까?’ 꽃잎을 만져보니 아뿔사! 떨어지지 않더라고 - 흠집이 나고 꽃잎이 몇 개쯤 떨어져 나가고 생채기가 나 있는 꽃이 라야 살아있는 것이라고 -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곱게만 자라 곳곳하게 詩를 쓰며 살 것만 같았던 한 시인의 에세이에는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남편에 대한 고마움과 가족에 대한 사랑이 담뿍 담겨 있었는데 이 또한 좌충우돌한 삶을 겪어낸 결과였다. 나보다 수십 년을 먼저 살아온 인생의 뒤안길에서 쓴 따뜻한 이야기들이 내 가슴을 파문지며 나를 공감하게 하였는데 특히 ‘청어장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삶을 까그러기를 빼낼 수 있었다. 

세 사람의 청어장수 중 두 사람은 항아리에 넣고 파는 청어를 다 팔지 못하지만 한 사람은 언제나 제일 많은 돈을 벌고 청어를 다 팔았다는 것인데 왜냐하면 그 청어장수의 항아리 속에는 큰 가물치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물치는 청어를 위협하는 대상인 동시에 생명력을 증폭시키는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럴까? 

남편이 아니었다면 온실 속의 화초처럼 약하디 약한 내가 이 세상 속에 부딪히며 강해질 수 있었을까? 

때때로 내면을 성숙한 방어기제로 승화시켜 詩를 쓰는 열정을 불태울 수 있었을까? 

또한 내 아이에게 아낌없이 주는 초월적인 엄마나무가 될 수 있었을까? 

과연..... 

칠암 도서관 그 문을 나서며 또 다시 내 삶을 보듬는다.

‘이건 아니야.’

하면서 뛰쳐나온 내 집이 네모거울처럼 내 자아 속에 박혀버리는 순간 이었다. 버릇처럼 올려다 본 하늘은 푸르고 또 푸르렀다. 뒤죽박죽 요동치는 내 삶에 아랑곳없이 가을은 그렇게 깊어있었다. 혹, 내 삶이 무던하다 한들 낙엽 뒹구는 가을 길을 걸으며 허전한 마음 한 구석 없을까? 비록 내 삶이 ‘이런 아니야.’ 한들 저 손바닥 같은 삶 중에 가장 붉은 것 하나 립스틱을 바르듯 곱게 물들일 날 없을까? 반사된 세상 속에 내 남편과 내 아이가 또롯이 두 팔을 벌려 햇살처럼 나에게 안겨온다. 

나의 가물치 두 마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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