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영광독서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5658

경제사에 비추어 본 정의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충남 천안시 용곡동 이승빈

 

‘인간이 돈을 만들었는가!, 돈이 인간을 만들었는가!’ 현대 경제 흐름에 거대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서구의 경제사를 면밀히 학습하다 보면 이와 같은 의문을 떨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인류는 화폐를 이용한 간접거래를 통하여 거래에 드는 비용을 절감시키고, 경제규모를 확대시키며 궁극적으로 효용수준을 향상시키는 결과를 얻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화폐는 인간에게 물질에 대한 열정과 집착, 광기를 매개로 하여 작게는 민족, 국가 차원의 문제를 야기했고, 넓게는 우리들이 흔히 알고 있던 역사의 이면에 감춰진 어두운 면을 잔존시켰다. 역사의 무수히 많은 사건들이 궁극적으로 인간의 부(wealth)를 향한 욕망의 결과로써 존재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결국, 정의는 승리한다.’ 라는 명언에 대한 나의 믿음은 퇴색되었고, 이것은 내가 지금까지 정의의 존재,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근원적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내가 책을 읽으면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부분도 정의를 이해하는 방식을 경제사에 접목해 그 의미를 찾는 일이었다. 가치판단의 기준을 효용과 행복의 증진에 두어 경제사를 평가 하자면 지금까지 전개된 경제사는 확실히 정당하다. 의도 및 동기, 과정이 불순하였는지의 여부를 떠나서, 결과적으로 많은 부분에서 경제적 번영을 이끌었고 이것들이 모여 현재의 발전된 인류문명을 이룩하는데 공헌해 많은 사람들이 편익을 누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개인에게는 자유라는 기본권이 있고 내가 나를 소유한다면 나와 관련된 것들을 소유하고, 다시 그 관련된 것들을 이용할 자격 역시 나에게 귀속된다는 논리를 덧붙이면, 공리주의의 주장이 더욱 견고해진다. 언 뜻, 논리적으로 합당해 보이는 이 관점은 다소 불편하다. 그릇된 방식을 통한 부의 축적이라도 결론적으로 다수가 혜택을 받으면 정당하다고 주장되는 것이 곱게 비추어질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경쟁이 인생의 법칙이라지만, 문제는 그 방법이지 않을까? 

 

칸트와 존 롤스의 견해는 이에 대해 비교적 만족할 만한 답안을 제시한다. 아무리 바람직한 목적이라도 그것이 개인의 권리보다 우위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롤스의 사고실험에서처럼 모든 사람들이 ‘무지의 장막’뒤에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 놓인다면, 다시 말해 어느 누구도 우월한 위치에 놓이지 않는다면, 그들은 어떤 정의의 원칙을 내놓았을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공리주의가 주는 행복의 원칙을 선택하지는 않았으리라는 점이다. 무지의 장막이 걷혔을 때, 부를 쫒는 탐욕의 희생자가 되기는 모두가 원치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노력의 결과로 얻은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 경제사 속에서 인류문명 발전을 실현하는 데에 일조할 수 있었을까하는 점이 의문으로 남는다. 차등원칙의 효과에 대한 논의는 접어두더라도, 소득과 기회의 억압적 분배는 인류발전과 진보의 유인을 제거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게 나의 주된 견해다. 경제적 유인이 사람의 잠재적 능력을 끌어내는 데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에서도 이미 드러난 바 있듯이 그 결과가 자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정의의 잣대로 부를 쫓은 선구자들의 노력과 열정을 비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칸트와 롤스의 철학이 정의에 관한 서로 다른 시각들 사이에서 부동의 중립을 지킬 수 있는 확고한 정의의 개념을 세우려했다는 점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우리가 막연히 부정의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어떤 사실에 대하여, 이론적으로도 그렇다는 것이 쉽게 합의된다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정의에 관한 견해가 이렇게 다양하게 제시되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결론에 접근하는 다양한 방법 때문에, 비록 결론이 이미 합의된 사실일지라도 사회적으로 많은 논쟁을 부르고 이로 인해 많은 논의를 거치게 된다. 이 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정의를 정의할 때에 입체적인 관점을 가지고 그 안에서 지속적이며 상호유기적인 시각을 견지(堅持)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 도서에서,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을 배웠다. 정의란 공리나 행복극대화,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정의란 크게 이 세 가지 관점이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서 어느 한 사건이나 흐름을 보고 정의를 따지는 것은 정의의 입체적인 특질을 간과시켜, 독선에 빠지기 쉽게 만든다. 이는 저자가 ‘정의에 하나의 원칙이나 절차를 두어 정당한 분배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어렵다’라고 저술한 부분과 상통한다. 정의 문제에는 불가피하게 판단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판단의 문제에 대한 고민은 건강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초석이다. 하지만 혹 자는, 정의와 권리에 관한 논의가 건전한 사회에 대한 논의와 거리가 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본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서 거시적인 문제를 판단할 수 없고, 가령 문제의 해결책을 찾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좋은 사회에 대해 고민하자면 사회의 다양한 이념, 가치들을 포괄한 공동선을 추구하고 그 구성원들은 이 공동선에 헌신하는 태도를 키우는 것이 장기적으로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하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정치적 색깔을 떠나 현 정부의 갈등을 완화시키려는 노력에 힘을 보태고, 사회통합을 외치는 목소리에 우리가 합심해야 하는 이유다. 덧붙여, 시장의 효율성은 인정하되, 도덕적 한계 또한 감안하여 사회규범에 대해 고민한다면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좀 더 강건한 토대를 세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본 도서는 경제사 속에서 정의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찾고, 나아가 그것을 바탕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삶의 비전을 그리는데 많은 보탬이 된 도서였다. 특히, 하나에 주제에 관련된 다양한 견해들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성급한 판단을 내리는데 인색하게 만들고 많은 생각을 유도하게 만들어, 경제사를 공부하며 가지고 있었던 정의에 대한 편견들을 바로잡아주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산에 한 가지 나무만 나지 않고 들에 한 가지 꽃만 피지 않는다. 여러 가지 나무가 어우러져 위대한 산림의 아름다움을 이루고, 백가지 꽃이 피어서 봄들의 풍성한 경치를 이루듯 정의에 관한 다양한 고민이 작게는 개인의 미래, 크게는 풍성한 사회의 청사진을 그리는데 위대한 보탬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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