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영광독서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5633

 


지금, 여기, 우리 사회의 정의란 무엇인가 -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울산시 동구 전하동 이현성


으레 소설 문학 분야가 아닌 이런 비문학 계열 분야의 책은 지루하기 십상이다. 기본적으로 그 분야가 전공적 지식이 있거나 특별한 관심이 없는 한 일반 사람들이 쉽게 손이 가서 사게 되는 책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작년에 EBS에서 방영하는 명강사 시리즈를 영상으로 보고 나서 가르친다는 것의 기술, 멋들어지게 진행되는 그리하여 듣는 사람의 모든 신경 하나하나를 집중시키는 날카로운 질문에 매료되었다. 학창 시절 그런 선생님 하나쯤 만나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을 남기며 참 재미있게 보았던 프로라, 그 프로에 소개되었었던 마이클 샌델의 강의 내용을 담은 책이 출판된다고하여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이 책은 나의 그러한 기대를 백 퍼센트, 아니 이백 퍼센트 만족시키고 있었다. 초반부터 사고를 두드리는 기발하고도 현실적인 사례를 제시하여 책을 읽는 내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 허리케인이 지나간 플로리다 지역의 바가지 요금이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 사회에 정당한가, 정당하지 않은가의 문제는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이상 기온으로 인한 배추값 폭락과 전쟁 불안으로 인한 경제 요금 인상 등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사람이 공동체를 이루어 이 사회를 엮어 살아가는 동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정의. 그 정의를 이룩하기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것들과, 그 정의의 실현으로 이룩될 수 있는 행복, 그리고 어디까지 인정되어야 하는지 고민해봐야 할 평등의 문제 등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이제껏 심드렁하게 생각해왔던 것들이 그냥 스쳐지나왔던 것들이 전혀 새로운 문제로 직면하게 된 것이다. 


특히나 샌델 교수는 ‘정의’를 말하는 데 있어서 기존의 철학자들이 일반인들에게 자신의 견해를 전할 때 범한 우를 답습하지 않고 있다. 즉 뜬구름 잡는 식의 발언을 하지 않는다. 손에 잡히지 않는 정의보다는 손에 잡히는 정의, 즉 내가 머물고 있는 현실과 나와 함께 살아가는 우리 이웃의 당면한 문제를 정당한 정의의 문제로 풀어내고 있다. 이는 이 강의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이제껏 중고등학교 과정, 대학교 교양 과정에서 철학, 윤리, 도덕은 왜 그렇게도 재미가 없었는가. 철학, 윤리, 도덕이 모두 하늘에 떠 있었기 때 문이다. 아리스토텔리스, 칸트, 롤스 등이 말하는 정언명령이나 도덕률, 텔레스 따위 등은 인물별로 연결해 외워야 하는 대상이었지 그 도덕관념이 그래서 어떤 형식과 내용으로 우리 세계에 실현되어 왔는가를 생각해보지 못하게 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정의론’ 수업이 어떻게 하버드대에서 몇 년씩이나 인기강의로 구가되어 왔는지 충분히 이해할 만한 대목인 것이다. 


샌델 교수는 자유주의자들의 입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유주의자들이 범하고 있는 오류, 즉 종교, 도덕, 인간애 등의 가장 밑바탕을 간과하고 매달려 온 개인의 자유 선택 의지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내가 특정 대학에 들어가 특정 전공을 하여, 그 전공을 살려 직업을 택해 사회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것은 그 사회에 그러한 여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라는 말을 전한다. 즉 누군가는 ‘나의 능력이 이정도이며, 그래서 나는 가치로운 사람이고, 이것을 선택할 자격을 충분히 가졌다’ 고 이야기할 수 있는 오만과 자만을 한순간에 납작 어그러뜨리고 있다. 그 사회가 갖춘 여건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건이 맞물려 좋은 환경을 조성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감사히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거기서부터 정의가 싹튼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한 어떤 대상의 텔로스, 즉 본질을 파악하여 스스로를 돌아보고 사회에 기여할 줄 알아야 한다. 


때때로 나를 비롯하여 의대에 들어와 전공의 과정을 밟고 있는 많은 동료들의 신민의식을 엿볼 수 있다. 신의 아들인 거처럼 거들먹거리는 모습을 특별히 보이지는 않지만 그들의 의식이 거기에 뿌리박혀 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는 때가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정의를 말해주고 싶다. 내가 느낀 부끄러움을 이들도 함께 느껴야 진정한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서로에게 의무를 지니고 있으며, 그것은 우리가 권리를 이야기하기 전에 함께 사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먼저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일 것이다. 


재미있는 사례들이 매우 많아, 책을 읽는 자체의 시간은 얼마 들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놓고 나서도 샌델 교수가 언급한 이야기들이 공공연히 내 주위에서 다른 형태와 내용으로 고집스럽게 반복되는 것들을 떠올리게 하면서 내게 계속 의문을 남긴다. 질문을 받은 사람이 그 순간에 답을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 질문이 끝난 뒤에도 계속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하고 답을 구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하는 것, 바로 거기에 명교수 마이클 샌델의 매력이 있는 것같다. 하버드까지 가지 않아도 작은 한 뼘짜리 당직실에서 나는 그의 명강의에 매료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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