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영광독서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5638

<아버지의 눈물>을 읽고

 

                                                                                           동래여고 1학년 김희수

 

문득, 아버지의 상처투성이로 얼룩진 굵은 손 마디마디가 떠올랐다. 녹초가 된 당신 몸을 채기는 것 보다 자식 놈들 호강시켜주겠다고 잠깐의 선잠도 마다한 채 세상의 어둠 속으로 홀로 걸어가신 아버지. 이 책은 자신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아버지라는 세 글로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의 마음을 먹먹하면서도 따뜻하게 그려내었다. 무능력한 가장으로서의 고독한 삶을 살아가더라고, 자식들을 위해 용기 내어 부끄러운 삶을 살지 않겠노라는 굳은 다짐으로 마지막을 장식한 글은, 모든 아버지들이 무슨 일을 하는 어떤 상황에 놓여있든, 자신보다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고 더 사랑하려 노력한다는 그 진심을 선명하게 비추어주었다. 아버지가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것을 당연시 여기고, 당신 몸이 다치는 것도 감수하고 이겨내야 하는 것이라는 철없이 어리기만 했던 내 생각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단 한 번도 아버지의 외로움과 쓸쓸함의 빈자리를 채워주기 위해 손을 내밀어 주니 못한 채 그저 술을 끊으라는 윽박지름과 짜증으로 일관했던 나의 모습은 저자의 글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아버지에 대한 핑계거리에 불과해져 버리고 말았다. 

 

언젠가 선 채로 막걸리를 들이키던 아버지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인생이 너무 허무하다. 너희들이 성장하고 나니까 뭔가 허해진 느낌이야.” 사실 그때 나는 아버지의 그 말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가정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버지의 자리라 믿고 살아왔던 내게, 그런 아버지의 하소연은 그저 생소하고 우스갯소리로 넘겨버릴 수 있을 만한 쉬운 소리였다. 그러나, 그 말속에는 아버지 당신을 위해 살아온 시간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아쉬움과 동시에, 혼자서 자립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해버린 우리에게 받고자 했던 관심과 동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당신 마음 속 깊숙이 묻어 둔 외로움과 고독함에 대해서 이해하려 하지 않은 채, 아버지라는 좋은 마차에 올라 타 내가 가야 할 길에만 급급해 채찍질로만 일관했던 나의 이기심이, 어쩌면 아버지를 더 외롭게 만들었을 것이다. 한동안 자취생활로 인해 아버지와 떨어져 사는 동안 가지게 된 동정과 애틋함을 ‘아버지의 눈물’ 이라는 책을 통해 새삼스럽게 깨달아 버리고 말았다. 아버지가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무거운 짐이 내가 아닐 것이라는 억지 담긴 부정이, 저자의 책을 통해 모두 들켜버리고 만 것이다. 

 

무엇이든지 아버지 당신에게만 의존하려 했던 나약한 내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 분명히 아버지라는 커다란 그림자가 있었음을 알기에, 왠지 모를 책임감이 내 어깨를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의 눈물’을 통해 내 마음 속 한 켠에는 아버지의 남은 인생을 당신 하나만을 위해 가득 채워질 수 있도록 만들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적인 희생과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는 그런 이 시대의 모든 아버지들의 삶이 아닌, 당신 하나만을 위해 살아갈 수 있다는 행복감을 그 허해진 품속에 가득 안겨드리고 싶어진 것이다. 나는 어쩌면 책 속에서 등장하는 아버지의 차인 소나타가 되고 싶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언제난 그의 곁에서 변함없이 함께하며, 짧은 삶이라는 공간속에서 단 한명밖에 없는 아버지의 소중한 친구가 되는 것 말이다. 아마, 책 속의 아버지가 소나타를 버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타고 다니는 것도,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서 여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을 위해 삶을 살아가고, 자신만을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우리들의 앞에는 자로 잴 수도 없는 한 개인의 삶을 버리고, 가족을 위해 또한 그 가족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아버지라는 넓고도 깊은 존재가 있다. 배가 있되 돛대가 없으면 바다 위를 누빌 수 없는 것처럼, 아버지 또한 가족이라는 버팀목이 없으면 그 누구보다 나약하고 힘없는 존재가 되어 버릴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던 아버지의 모습과, 가족이라는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언제나 당신 한 몸 보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사랑하셨던 내 아버지. 그것은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끝날 것이 아니라, 어려운 현실 속을 살아가는 모든 아버지들을 향해 지르는 가족들의 뜨거운 함성과도 같은 아름다운 고해성사였다. 

 

이 책은 아버지라는 그 짧은 단어를 독자들에게 일깨워주며, 사라져가는 부성애를 무지했던 내 마음 속 깊숙이에 장렬한 경종을 울려주었다. 언젠가 내 앞에서 삶의 끝자락의 눈물을 훔쳐내었던 아버지. 세월의 흔적으로 주름진 입가에 침묵으로 흘러내리던 그 여린 눈물이, 내 내부 끝에서 먹먹함으로 천천히 번져가고 있음을 나는 지금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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