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3047

마흔, 꿈꾸기 좋은 나이 - <더 늦기 전에 더 잃기 전에 꼭 알아야 할 것들>을 읽고 -

 

김대식

 

마흔, 꿈같던 나이가 현실이 되었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를 어색하게 쓸어내리던 열 네 살의 너와 나는 이제 머리 위로 듬성듬성 흰눈마저 앉았구나. 마음 속에는 아직 열 네 살 소년이 살고 있는데 몸은 나이를 따라 바쁘게도 달려갔던 모양이다. 

 

소식은 들었다. 귀농을 했다고? 고민하던 너에게 확신을 준 책이 어떤 건가 나도 궁금한 마음에 퇴근길 서점에 들렀다. 감상적인 녀석답게 인생의 길도 책에서 찾는구나 싶었지만 한편으론 이미 내려진 결론에 적당한 핑계가 필요했던 건 아닐까 지레짐작 했던 것도 사실이다. 서른까지만 해도 마흔이면 몸도 정신도 완연한 어른이겠거니 했지만 마흔이 되어보니 몸과 정신의 성장은 비례하지 않더라. 나이에 맞게 행동하려고 무던히 노력하지만 정신은 열 네 살의 그때처럼 미성숙할 때도 더러 있고, 더욱이 마음은 마흔을 한참 밑돌아 어른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무릎을 칠 때가 많더구나. 너도 그럴거라 생각한다. 

 

꿈이 없다면 인생은 쓰다고 말했던 너의 고백이 이 책에서 비롯되었더구나. 매일 납품기일 맞춰 작업하고 퇴근시간만 기다리게 된다던 너의 한탄 아닌 한탄 앞에서 나는 아닌 척 했지만 이제야 비로소 나또한 그러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하루 일과를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가는 시간에 보람을 느낀다고 했지만 사실은 나도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쉬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런 순간마다 한 집안의 가장이, 그것도 자식 둔 아비라는 자가 나약한 소리를 하는 건 아니라고 강박처럼 내 진심을 억눌렀다. 내 아버지가 그러했고, 내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러했듯 가슴 속에 차오르는 뜨거운 불덩이를 짓누르는 것이 당연하다 여겼다. 

 

열 네 살을 우리는 솔직했었지? 하고 싶은대로 행동하고 말하고 그래서 부딪히고 싸우고 깨지고, 그러면서도 크게 웃어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아니 나는 하고 싶은 걸 참는 게 절제고, 말을 아끼는 것이 미덕이라 여기며 살고 있다. 그 덕분에 타인과 부딪히고 깨질 일은 없지만 내 안에서 수없이 부딪히고 깨지는 중이다. 직장 안에서는 너도 그러했을지 모르겠구나. 

 

기억나냐? 열 네 살의 너는 행복해 지는 게 꿈이라고 했었다. 나는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했었지. 너의 그 추상적인 꿈보다 뭔가 구체적이고 확실한 내 꿈이 더 멋있다고 자만하기도 했던 것 같다. 어렸고 삶의 굴곡을 몰랐다. 마흔이 된 우리의 꿈은 같아졌구나. 행복해 지는 것.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그 행복의 기준이 다르구나. 너는 네 안에서, 나는 타인의 시선에서 행복을 찾으려 했던 게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 

 

나에게 솔직해져 보세요 

도대체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세상이 일방적으로 정해놓은 성공의 기준이 아닌 

내 안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남들에게 행복하게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나 자신이 정말로 행복한 중요해요 

 

이 글귀에 멈춰 꽤 오래 내가 원하는 게 정말 무엇일까 고민했다. 지금보다 좀 더 많은 월급과 좀 더 넓은 아파트로 이사 가는 것이 과연 내 행복의 기준일까? 언제부터 내 행복은 물질적 풍요에서만 자라나는 못난 얼굴을 갖게 된 것일까? 내 안에서 정말 원하는 건 우리 가족이 모두 건강하고 행복해 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을 더 벌어야 하고 좁은 지금의 집에서 이사 가야 하고 대출금도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야 그 행복이라는 놈이 따라 올 것 같았어. 그런데 이 책을 보니 행복은 따라오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들어 가는 거더구나. 나도 현실에 안주하는 이 욕심들을 버리면 지치기만 하는 일상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너는 지금 행복하냐? 어쩌면 너는 더 늦기 전에, 더 잃기 전에 제자리를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올여름 유난히도 더웠는데 니가 한다던 토마토 농사는 잘됐는지 모르겠다. 회사 다닐 때보다 몸은 바쁘지만 마음만은 훨씬 행복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였다. 농사에 ‘농’자도 모르는 녀석이 적응도 못하고 뜨거운 햇볕 아래 폭삭 늙어 두 손 들고 다시 돌아오는 건 아닌가 했거든. 많이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저 생활할 정도만 벌면 족하다던 너의 욕심 없음이 네 행복의 근간이여서일까. 생각보다 잘 적응하고 있는 너의 모습에 내심 걱정스럽던 내 기우가 녹아내린다. 

 

이 책의 작가는 마흔에는 인생의 여정에 깊이가 더해진다는구나. 단순하고도 깊이 있는 사람으로 탈바꿈하는 시기인 마흔은 곧 자기 신뢰의 전환기이기도 하다는데 너는 확실히 마흔에 흥미로운 생의 전환을 맞았구나. 나도 좀 더 당당히 내 행복을 찾고 싶다. 마흔이면 어느 정도 인생의 달고 쓴 상처를 훈장처럼 새겼을 나이잖아. 앞으로 걸어온 길보다 더 긴 인생이 내 앞에 펼쳐져 있는데 물질의 감옥 안에 내 행복을 동여매는 건 미련한 짓이지? 니가 땅을 일구고 토마토 속을 채우는 동안 나도 내 인생과 내 가족의 행복을 일궈야겠다. 우리의 마흔이 더 빛날 수 있도록 서로의 자리에서 노력하자. 열 네 살의 새파랗던 그때처럼, 마흔도 충분히 빛날 수 있는 나이지? 

 

내년엔 니 땀으로 영글어 속이 찬 토마토 나도 맛볼 수 있기를 바라며 멀리서 너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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