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3050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를 읽고

 

이병호

 

어느날 나의 오래된 친구가 자기 회사의 교과서를 선물해준다고 했다. 나는 갑자기 무슨책이냐고 물었고, 그 친구는 내가 존경하는 사람에 관한 책이라고 했다. 

 

“혹시 이순신?” 

 

친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올해 우리 회사에서만 300권을 구입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아~ 이순신....”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다. 20대 시절 나는 일 년에 몇 차례씩 한산대첩이 벌어진 한산도를 방문했고, 제승당에서 충무공 영정을 몇시간 째 볼 만큼 이순신장군을 흠모했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후에도 나는 충무공 닮은 공직자가 되고 싶은 포부를 품었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가고 어느덧 내 나이 36살에 공무원 10년차가 되었다. 결혼하고 애 둘 키우고, 정신없이 세상에 찌들어 생활하다보니, 나에게 이순신이라는 단어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때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 라는 책을 만났다. 

 

저자는 김종대 헌법재판소 재판관인데, 그는 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은 아니었지만, 충무공의 참모습을 널리 알리려고 20여년 동안 정성들여 집필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누구나 쉽고 간명하게 읽을 수 있을뿐더러 다양한 문헌들을 활용하여 객관적으로 기술하였다. 무엇보다 충무공의 사람됨을 추단 할 수 있는 자료들이 많아서 기존의 이순신 관련 책과는 차별성이 있다. 이순신의 23전 23승 전승신화에만 몰두했던 나도 그의 인간됨을 찬찬히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다. 책을 읽는 동안 수많은 모함과 질시로 수없이 위기에 부딪치지만 결코 원망이나 격분으로 일을 그르치지 않는 초연한 충무공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나는 이 책에서 한 가지 강력하게 느낀 것은 이순신의 “일어나는 힘”이었다. 이순신은 왕이 삼고초려해 군사 혹은 승상으로 모시고 받드는 복된 환경에서 적과 싸운 것이 아니다. 개인적인 허물을 감싸주고 힘껏 싸우도록 온 나라가 응원하는 가운데 적과 싸운 사람도 아니다. 왕과 그를 모함하는 세력이 자신을 파면하고, 투옥하고, 심지어 죽이려고 까지 했으나 이순신은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조선 수군 최고사령관이 곤장을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옥살이를 하는 그 치욕적인 순간에도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주위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밤낮으로 나라의 안위를 걱정했다. 원균이 칠전량해전으로 조선수군을 전멸시킨 후 조정은 이제 더 이상 바다에서 싸울수 없다고 판단하여, 결국 수군을 폐지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이순신은 그 절망의 상황 속에서 다시 한번 해보겠다고 장계를 올린다. 세상의 일을 전부 초월한 그의 장계는 나를 경건하게까지 만든다. 

 

“아직도 신에게는 12척의 전선이 있습니다.

죽을힘을 다해 막아 싸우면 아직도 할 수 있습니다.

전선이야 비록 적지만 신이 죽지 않았으니

적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조선수군이 전멸되는 상황에서도 침착했고, 조선의 운명이 걸린 명랑해전에서 13척의 배로 400여척이나 되는 왜군을 물리쳤다. 그는 결국 일어섰다. 

 

요즘 사람들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인내하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다.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불리하고, 억울한 일이 생기면, 곧장 화를 내고, 상대방의 멱살을 잡는다. 심지어는 법적소송도 불사한다. 그리고 자신의 억울함이 해결되지 않을 때에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단 한건의 억울한 일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기도 한다. 우리 사회 전반에 이 “일어서는 힘”이 현저히 떨어진다. 이순신은 이중 삼중의 억울한 일을 연거푸 당했지만, 결국 일어섰다. 우리는 400여 년 전 그의 인내를 닮고, 내적 수련을 배워야 한다. 세상은 일어설 힘이 없는 자에게 아직 ‘세상은 살아갈만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일어서는 근육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사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의 공직생활이 생각났다. 무릎에 힘이 없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는 얼마 전 인사상 불합리한 처분을 받았고, 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하루하루 분함으로 잠을 자지 못했다. 한 가정의 가장이어서 직장을 그만 둘 수 는 없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소심한 복수는 업무를 대충하는 것이었다. 나는 나의 열정을 바다속으로 침몰시켰고, 국민을 위해서 봉사하는 공무원의 선서 또한 스스로 폐기 시켜버렸다. 나의 나태는 하늘을 찌르고, 무기력한 공직생활이 계속되었다. 나는 그때부터 남이 하는 것을 따라만 가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이 책을 읽고나서 내 마음에 조그마한 바람이 일었다. 내 무릎에 힘이 생긴 건 정의로운 소수의 힘을 알고부터다. 임진왜란 승리에는 많은 요인들이 있겠지만, 이순신이 없었더라면, 결코 이 전쟁을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최악의 여건 속에서도 구국이란 목표달성에 성공했고, 열세의 조선 수군을 강군으로 이끈 지도자다. 그의 리더십이 없었다면, 조선의 운명이 역사속으로 사라질뻔 하였다. 단 한 사람의 정의의 외길이 나라를 구하고 더 나아가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금수강산과 소중한 문화유산을 물려 줄 수 있었다. 구약성서에서 고돔과 소모라가 멸망한 이유가 단 한사람의 의인이 없어서 그랬듯, 인류는 정의를 가진 소수를 통해 발전해왔다. 나는 이 책을 보고 무기력한 다수가 아니라 소수의 의인이 되고 싶은 생각이 물밀 듯 일어났다. 이순신장군이 목숨 바쳐 지킨 우리 조국 앞에 공직자인 나의 나태함은 깊은 죄책감으로 돌아왔다. 나의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무릎에 힘을 주었다. 그 유명한 『살고자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는 말처럼 내가 죽을정도로 열심을 다하면, 주민들은 편안해지고, 내가 나태하면, 주민은 힘들어진다. 충무공이 생애 개인적 이익보다 나라와 백성의 이익을 먼저 생각했듯이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기본적 가치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1975년에 읽은 노산 이은상 선생님의 [충무공의 생애와 사상]이라는 책을 읽고 이순신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우리세대도 이제 우리의 참 스승이신 충무공을 후손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전해야지 대한민국 땅에 김종대 저자와 같은 이순신을 닮은 의인들이 많이 나타날 것이다. 10대 청소년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결과를 보면 그들은 역사의식은 물론 지식적인 측면에서도 상당히 무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청소년들의 우상인 한 아이돌스타가 한국전쟁이 63년 이후에 일어났다고 말 할 만큼 역사의식에 빨간불이 켜져 있다. 생각해보니, 아이들만을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 세대가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았던 것 같다. 국사 과목은 10년 동안 국영수 과목에 밀려 이제 겨우 수능 필수과목이 되지 않았는가? 역사교육의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영어는 유창하게 잘하지만 우리나라 역사에 관해서는 무지한 코리언 박사들이 줄줄이 배출 될 것이다. 그런 박사들이 나라가 힘들 때 무슨 애국심을 발휘하겠는가? 사랑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없듯이 국민들의 애국심이 없는 나라 또한 오래가지 못한다. 

 

이 책은 이순신이 온갖고초와 힘든 시기를 일어날 수 있는 힘의 원천 중 하나를 어릴 적 환경이라고 말한다. 이순신은 청소년 시절부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정신수양을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 우리 우리아이들은 어떤가? 400여년에 비해 상상도 할 수 없는 좋은 환경에서 자라면서도 그들에게는 감사가 없다. 정신 수양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물질에만 집착하며, 다 큰 것 같아도 툭치면 단번에 넘어지는 막대기 인간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 자라난 아이들은 힘든시기와 고난에 대해 대처할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물려주지 말고, 살고자 하는 근육들을 만들어 주어야 되지 않겠는가? 아이들에게 부모의 사랑과 훈계도 중요하지만, 나는 ‘일어서는 힘’이 있는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이순신과 같은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개인이 모일 때 비로소 멋진 사회가 되고 멋진 국가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이순신 키즈(kids)들이 여기 저기서 나타났으면 좋겠다. 그들이 그야말로 분열되고 어지러운 요즘세상의 희망이 되고 더 나아가서 이 사회를 치유할 것이다. 나는 이 책이 모든 대한민국의 교과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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