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준비되지 않은 '상실'에 대하여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를 읽고
전현옥
준비되지 않은 이별 앞에 망연자실 했던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른다. 어느 날, 마치 그 곳에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홀연히 사라진 그 친구는 그때의 그 기억을 어떻게 안고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하다. 쓰쿠루처럼 나에게도 그 시절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뜨거운 태양의 나라로 떠난 그 친구에게 묻고 싶다. “너에게 난 어떤 색이었니?”
어릴 적 나는 유난히 말수가 적고, 행동이 조심스러웠으며 남의 눈치를 많이 봤었다. 초등학교 졸업 무렵 기념 삼아 만든 문집에서도 나를 소개하는 수식어는 ‘온순한’이었다. 말괄량이, 개구쟁이, 더펄이 등 재미있는 수식어들이 지천에 널렸지만 친구들이 정해준 나의 수식어는 내 모습만큼이나 별 볼일 없는 ‘온순한’ 이었다. 딸부자 집 셋째 딸인 난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언제나 많은 사람들 속에 부대끼며 살았다. 그래서인지 늘 조용한 분위기를 갈구했고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남모르게 많은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그런 소심한 성격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이 완강해져 갔고 중학교에 올라가면서는 아예 친구들을 멀리하기도 했었다. 사춘기였으리라. 시끄러운 세상에 대한 나의 소심한 복수쯤으로 여길 법도 하지만 그런 나의 고립은 나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의 걱정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런 나의 곁에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난 친구가 있었다. 새카만 단발머리에 까무잡잡한 얼굴, 말을 하거나 웃음을 지어보일 때 선명하게 드러나는 보조개 자국. 무엇보다 그 친구의 인상이 인상적인 건 오른쪽 입술 옆에 커다랗게 찍혀있는 까맣고 둥근 점이었다. 언뜻 보면 촌스럽기도 하고, 또 귀엽기도 한 둥근 점을 가진 그 친구가 내 짝꿍이 되면서부터 우리들은 ‘친구’가 되었다. 좀처럼 마음을 열지 못하던 난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피아노까지 잘 치는 정말이지 멋진 그 친구에게 시나브로 마음을 열었다. 그렇게 나의 학창시절은 아무런 걱정 없이, 별 다른 풍파 없이 조용히 흘러갔다. 겨울 방학을 앞둔 어느 날, 그 친구가 결석을 했다. 갑작스런 부재가 혼란스러웠고 그 혼란스러움은 어느덧 걱정을 앞질러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수업이 끝난 후 친구의 집 앞을 서성이며 초인종을 눌러보았지만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그저 멍하니 서 있기를 몇 시간. 날이 어둑해져 집으로 돌아가는 그 길에 나도 모르게 약간의 눈물을 흘렸었나보다. 두려움이 배신감으로 바뀌는 순간, 흐르는 눈물을 거두고 내일 아침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했다. 다음 날,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왔고 조례 시간 담임선생님은 그 친구가 마치 옆 반에 잠시 잠깐 가 있는 것처럼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은희가 전학을 갔다. 아버지가 갑자기 스리랑카로 전근하게 되면서 은희도 같이 가게 된 모양이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가게 되어 많이 아쉽다더구나.” 스.리.랑.카?
이 책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어릴 적 나의 곁을 홀연히 떠난 그 친구 은희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어느 날 동시에 사라진 친구들에 대해 한마디 일언반구도 하지 못한 쓰쿠루의 모습에서 그 시절 준비 없이 맞이한 이별 앞에 자책하고 괴로워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런 준비 없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웠던 친구와 이별을 해야 했던 그때의 내 모습이 불현 듯 떠오른 것이다.
세상의 전부였던 친구들이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증발해버린다. 어디로 증발 했는지, 또 어떻게 증발 되었는지도 모른 채 그들을 기다려 보지만 그 기다림의 끝은 ‘그만 보자’라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말로 그들의 관계가 정리 된다. 친구들의 갑작스런 전언을 들은 후 쓰쿠루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금 현실로 돌아가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간다. 하지만 가슴 속 고이 간직한 그때의 그 상실감들이 사실은 지워지지도, 덮어지지도, 잊혀 지지도 않고 자신 안에 똬리를 틀고 앉아 쉼 없이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에 앞서 다시금 그때의 일들이 회자되며 돌이킬 수 있다면 돌려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적어도 ‘왜’인지에 대한 의문은 풀 수 있지 않을까? 불혹을 앞둔 나이에도 그때 그 과거에 머물러 있는 쓰쿠루에게 과거를 돌아보는 여행이 시작된다. 십 수 년이 지난 후 찾아간 친구들에게서 자신만이 튕겨져 나왔던 그때의 그 일들에 관해 차츰 전해 듣게 된다. ‘왜’인지에 대한 의문을 풀려고 떠난 그 시간들 속에서 쓰쿠루는 자신이 아닌 그들의 상처와 아픔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만이 피해자인줄 알았지만 사실, 그들 모두가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던 것이다. 그들도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올바르게 판단 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못했었고, 원치 않는 상황들로 이어졌지만 홀로 내 던져진 쓰쿠루 만큼의 상실감은 아녔었나보다. 이내 곧 자신들의 인생 속으로 돌아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하릴 없이 흐른 시간은 아무런 힘이 없었다. 이제야 오해였던 사실들을 받아들이는 것 뿐 이제와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에게도 사정이 있었듯 그 친구 은희에게도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준비 없이 떠난 그 친구도 나처럼 슬퍼했을까? 떠난 그 곳, 이름도 낯선 그 땅에서 나 없는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배신감과 혼란스러움에 휩싸여 그 친구의 사정까지 헤아려 보지 못했던 그때를 회상하며 새삼 그 친구의 혼돈 또한 걱정이 되었다.
2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 한 권의 책을 통해 그 친구의 케케묵은 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정작 가장 힘들었던 사람은 그 친구가 아녔을까 하는 안타까움과 함께 20여 년 동안 내 안에 고이 묻어 두었던 그 ‘상실’에 관한 나의 비탄한 감정이 조금은 치유 된 듯하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 앞에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흐르는 세월 속 나이가 들어감에 더욱 더 성숙되는 마음가짐으로 그 아픔을 보듬어 줄 수 있지 않나 싶다. 회자정리. 만난 자는 반드시 헤어진다는 멋들어진 그 말도 있지 않은가. 다만,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없었음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버려지지 않는 미련일 것이다. 우연이라도 그 친구를 다시 만난다면 두 손을 꼭 잡고 이야기 하고 싶다. “그때의 넌 나에게 태양과도 같은 사람이었어. 이제 막 수평선 너머 새빨갛게 떠오르는 커다란 태양. 잠시라도 나의 곁에 머물러 주어서 너무나도 고마워.”
Chap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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