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영광독서 감상문

영광도서 0 6942

<나에게 남겨진 생이 3일밖에 없다면>을 읽고 

부산진구 개금3동 윤혜경

 

 

 

꿈 많던 이팔청춘, 여고 2학년쯤 되었을 때다. 무슨 시간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많은 친구들과 강당에 모여 앉아있었고, 어느 사회자의 진행에 맞추어 이런 질문을 받고 친구들이 돌아가며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지구의 종말이 며칠 안 남았다면 무엇을 하겠는가?’라는. 그때는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도 주위에 그러한 일도 쉽게 경험하지 못한 때라 그 질문에 심각하게 생각하는 친구는 없는 듯했다. 단지 죽음이라면 백혈병에 걸려 얼굴이 창백해서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소설 속 비련의 여주인공을 너도나도 생각은 해봤었다. 그건 고통이 아니라 아름다움이라 생각했었다.

 

사회자의 질문에 어느 친구는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고, 어느 친구는 남자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또 누구는 달나라에 가고 싶다고 했다. 또 누구는 세계의 맛있는 음식을 모두 먹어 보고 싶다고, 또 누구는 멋진 사랑을 한번 해보고 싶다고 했다. 사랑이 뭔지 알고는 그랬는지, 그 대답에 깔깔 웃어대는 친구는 또 뭘 알기나 하는지, 하여튼 그 깜찍한 희망을 말했던 이가 바로 나이다. 지금 생각하면 남자친구 하나 없던 아니 남자얼굴도 제대로 볼 기회도 없던 내가 몇 편의 로맨스 영화의 영향으로 남녀간의 사랑을 아름답게만 보았나보다. 이 세상에 며칠이란 시간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 내게 가장 소중했던 이성간의 사랑! 세월이 흘러 그 막연했던 사랑을 한 남자를 알게 되어 정말 사랑도 하게 되었다. 소원을 성취한 것이다. 그럼 이제는 며칠 뒤 죽는다해도 여한이 없는 것일까?

 

이제와 또다시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다시는 사랑을 하게 해달라고 빌고 싶지 않다. 그 사랑으로 하여금 지금 난 이 질문에 심장박동이 불규칙해지고 이런저런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그 원했던 사랑으로 인해 더욱더 이에 대답을 쉽게 할 입장이 되지 못하게 되었다. 이젠 사랑하는 그 사람 곁을 떠나기도, 또 그 사람과의 사랑의 결정체인 두 아이도, 더 잡고 싶은 부분들이 여럿 생겼기에 이러한 가정의 질문은 세상에서 가장 잔혹하게 들려온다. 책장 속에 가지런히 꼽혀있는 법정스님의 <무소유>가 유독 눈에 띈다. 슬픈 현실이지만 이젠 정말 나와 내 주변을 책임져야하는 어른이 된 것 같아 기분이 한없이 무거워진다.

 

 

 

 

 

어떤 때는 살아가는 날들이 두려울 때가 있다. 언제 다가올지 모를 생의 끝. 인간이면 누구나 맞아야 할 필연이다. 참으로 공평하게도 모두가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따금씩 뭔가 중요한 것을 잃고 쳇바퀴 돌 듯 살아가는 나에게 스스로 반성하듯 이 질문을 던져보곤 한 적이 있다.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기에, 며칠의 생이 정해져 있다면 지금 아등바등 지키고 있는 많은 것들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고 싶었다. 겨우 한두 손가락에 꼽히는 그것들이야말로 정말 소중한 것이 아닐까? 잔인하지만 잊고 사는 소중한 것들을 쉽게 찾을 수 있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기도하다.

 

이 책 대부분의 저자들처럼 나 또한 죽음에 대해 어떠한 준비도 되어 있지 않으며 결코 태연할 수도 없다. 지나온 삶에 대한 후회도 가득하다. 작가 김지룡이나 내 남편처럼 죽음을 감성적이지 않고 이성적으로 바라보는 이는 아마 흔치 않을 듯하다. 그러나 죽음의 두려움도 어느 선을 조금 넘으면 자신보다 남는 가족의 슬픔을 더 아파하는 건 모두의 공통분모인 것 같다. 어머니를 생각하고 자식과 아내의 처지를 더 가슴아파하는, 비행기 추락사고 등 뜻하지 않은 불의의 사고를 바로 눈앞에 두고도 오히려 가족을 걱정하는 사랑의 메시지를 보낸 일화 등은 인간의 초능력적인 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죽음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생각하는 그 힘은 과연 어디에서 나올까?

 

불행은 항상 내 주위를 빗나가 주길 바라지만 만약 나에게도 단 3일만의 생이 주어진다면 어찌할까? 여기의 많은 작가들처럼 여행을 떠날까, 아니면 그동안 읽지 못한 책과 벗하며 지낼까? 아마 지금까지 그랬듯 가족을 떠난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낼 용기는 없을 듯하다.

 

마음 같아서는 구효서 작가처럼 초침까지도 쪼개고 쪼개어 아껴 써보고도 싶으나 가는 마지막까지 너무 여유가 없는 듯 하여 ‘3일’이라는 하루하루들로 호사를 누려보고 싶다. 누가 시비를 걸 리도 없겠지만 그 대상은 ‘나’혼자로, ‘함께’가 아닌 ‘나’하나의 선택으로 먼저 못박고 싶다. 그 ‘함께’엔 혹시 사랑하는 남편과 특히 두 아들이 포함될 수도 있기에 먼저 필수조건을 내세우고 싶다. 인간에게 이기적인 면이 있음을 누가 탓하랴.

 

 

 

 

 

D-3일

 

이제 남편에게 사실을 얘기해야겠다. 최대한 밝은 표정을 해서, 큰일에도 좀처럼 밖으론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 강한 심장이 있으니 내 부담은 한층 가벼울 것이다. 그 다음의 말들은 아껴도 되리라 믿는다. 그는 가장으로서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잘 해나가리라 믿기에 그다지 많은 말은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나와 관련된 주변인물과 화해와 사랑을 전달하고 싶다. 사람은 죽음 앞에서 약해진다고 하지 않는가. 평생 절대 용서 못할 것도 눈물 뚝뚝 흘리며 서로 잘못했다고 뒤늦은 참회를 한다. 이것을 이용해서 친정엄마와 셋째언니와의 갈등을 풀어주어 이젠 힘없으신 엄마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싶다. 그리고 먼저 가는 딸년 용서해달라고 빌어야겠다. 고향 같은 친정식구가 그리워진다.

 

시댁의 아주버님과 형님께는 보증을 서주지 못해서 죄인 같았던 심정을 뒤늦게나마 전하여 이해도 구하고 싶다. 아주버님께 마지막 소원이니 술을 끊어 가족들에게 이젠 그만 상처 주라고 은근히 협박도 해보고, 또 어머니께는 맞벌이로 힘들었던 때 왜 그리도 도움을 못 주셨는지 뒤늦은 넋두리도 하며, 그래도 이렇게 가족으로 지냈던 것이 좋았다고 전하면서 근사한 저녁을 사드리고 싶다. 서먹한 분위기도 없앨 겸 술도 한잔씩 권해야겠다. 그리고 남편에겐 마음에도 없던 심한 말 했던 것에 대해 이때에 사과해야겠지만 시댁 식구 알면 뒤에라도 좋을 게 없으니 소중한 우리 가족과의 만남은 셋째 날로 미루어야겠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가 남한테 상처를 준 이는 없을까? 곰곰이 생각해도 딱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는 걸 보니 참 다행이다 싶지만 살면서 나도 모르게 남한테 싫은 소리 한번이라도 했을진데 누군지 모를 그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다.

 

그동안 만나온 친구와 지인들은 만나지 않으련다. 평소 잘해준 것도 없이 상처만 줄 것 같아 뒤에 소식을 듣고 찾아왔을 때 그때나 만나봐야겠다.

 

 

 

 

 

D-2일

 

조금 후면 둘째 날이 밝는다. 영원히 잘 것이니 이 생에서 자는 시간을 최대한 아껴야함이 옳을 것이다. 옆에서 가족이 사랑스럽게 자고 있다. 아이들은 아무 것도 모른 체 맛있게 꿈나라를 여행하고 있으리라. 내외적으로 강한 남편을 두었음이 참으로 다행스럽다. 책상에 앉는다. 그 동안 같이 했었던 가계부를 꺼낸다. 이제는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 바쁜 와중에도 그이가 내 뒤를 이어줄지.

 

노트를 꺼내어 작은 우리 집의 살림살이 돌아가는 것을 메모한다. 회사일밖에 모르는 그가 이것만 봐도 내 뒤를 잘 이어갈 수 있도록 해야한다. 아마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과정일 것 같다. 그들에게는 중요한 현실이 있으니까. 가족들의 생일과 기일, 매달 내야 할 공과금과 보험금을 적고, 다달이 드려야 할 부모님 용돈 계좌번호, 아이들의 학원 목록과 선생님 전화번호 등등을 써 내려간다. 가지고 있는 통장 몇 개와 보험증서도 챙긴다. 써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하루를 다 소비할지 모르겠다.

 

자신의 월급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그에게 수입과 지출에 대한 꼼꼼한 강의를 위해 이해하기 쉬운 도표도 만들어본다. 보고 또 보고 다 작성한 후에야 한숨을 돌린다. 남겨줄 빛이 없음이 퍽 다행스럽다. 나야 이렇듯 죽음을 알고 준비하건만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 아내가 있는 집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사치스런 걱정마저 든다. 주어진 시간을 알고 미리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 꼭 특혜를 받는 것 같아 죽음의 예고도 받지 못하고 가신 분들께 송구스럽다.

 

이제 화선지와 붓과 먹을 꺼낸다. 마음 같아선 편지를 써서 엄마의 사랑과 당부를 전하고 싶지만 슬픈 엄마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오히려 아이들의 정서에 누를 끼칠 것 같아 애써 방법을 바꾸어 본다.

 

그냥 가훈 같으면서 그 안에 엄마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싶다. 못쓰는 글씨로 몇 자 힘겹게 써 내려간다. <강한 사람이 되자!> 이 몇 자에 우리 애들이 험한 세상을 잘 살아가 주었으면 좋겠다. 다 써놓은 화선지에 먹물 자국이 번진다. 주먹으로 눈물을 꾹꾹 눌러 닦고 다시 붓을 든다. 역시 엄마에게 자식은 가슴 아린 존재인가보다. 몇 번 더 쓴 덕에 조금전보다 모양새가 나은 것 같아 다행스럽다.

 

 

 

 

 

D-1일

 

오지 말았으면 한 셋째 날, 아니 마지막 날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온통 하루를 우리 가족과 보내는 날이었으면 한다. 거기에 내 욕심을 보태어 평소 좋아하던 조용하고 모래사장이 아름다운 바닷가를 찾고 싶다. 10여 년을 살면서 행복했던 추억들, 재미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함께 재잘거리고 싶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양념으로 삼아.

 

모래사장에 가족들의 이름을 하나씩 또박또박 적어간다. 내 이름도 함께. 그리고 남편과 단둘이 해변을 거닐며 오래 전 마음에도 없었던 모진 말 했던 것에 대해 사과도 하고 싶다. 짧지만 행복했었다는 말도 꼭 전하고 싶다. 우리 가족이 함께 하는 마지막 잠자리. 낮에 열심히 뛰어 놀은 탓에 아이들은 다른 날보다 더 빨리 꿈나라로 간다. 그러나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세계. 나도 될 수 있다면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다시 올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아니 내가 가야 할 곳이 꿈나라와 조금이라도 가까웠으면 좋겠다. 아이들을 먼 곳에서나마 지켜보고 싶다. 마지막 기도를 드린다. 나를 비롯하여 삶에 애착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런 힘겨운 숙제를 주지 말아달라고. 만물을 지배하는 그 누가, 아니 정말 신이 존재한다면 너무 가혹한 시련은 자신의 무존재를 알리는 꼴이 되어버림을 은근슬쩍 감히 경고하고 싶다. 세상에서 제일 편안한 그이의 팔베개가 마지막까지 혹사를 당한다.

 

이 책을 펼친 후 며칠간의 고민 끝에 이제야 정상적인 심장 박동수와 편안한 마음을 느낀다. 이젠 죽음 앞에서 그다지 당황하지도 않을 것 같다. 어려운 수학문제를 나 먼저 풀고 다른 사람들을 여유 있게 기다리는 느낌이다. 너무 짧다고 여겼던 3일이 인생을 정리하기에 그리 모자람도 없음이 의아스럽다. 그 귀한 생이 며칠 남지 않은 그런 마음으로 항상 그날그날처럼 서로를 사랑하며 후회없이 열심히 살아가야 함이 이 가정의 질문에 대한 올바른 대답이 되지 않을까 조용히 결론지어본다. 오늘 저녁엔 안방 침대에서 가족 모두가 함께 자자고 해봐야겠다. 네 명이 자기엔 너무 좁지만 우리는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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