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7293

삶 그것은 책, 책 그것은 삶 -'삶을 바꾸는 책 읽기'를 읽고 -

 

최세경

 

[삶을 바꾸는 책 일기]의 표지를 찬찬히 보아본다. 보아본다라는 말이 어법상 이상할지는 모르겠는데 내게는 딱 맞는 표현이다. 표지를 “보아본다.” 그렇게 한참을 본다. 표지에는 한 여성이 앉아있다. 그녀가 걸터 앉은 긴 의자에는 조금 읽었는지, 아직 읽지 않았는지, 다 읽었는지 모를 책 두권이 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책을 보지 않고있다. 뭘 보고 있는 걸까? 뭘 기다리고 있는 걸까? 그녀의 머리 위 벽에는 무지개 빛이 슬쩍 지나고 있다. 그녀가 있는 곳은 갤러리 같기도 하고 박물관일수도 있으나 왠지 그녀의 모습은 여행을 하기 위해 역의 공간속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공간이 어딘들 그녀의 모습은 역사(驛舍)의 한 풍경같다. 꼭 삶이 기나긴 여정과도 같음을 말하고 있는 듯 하다. 그녀는 그 머리위에 무지개도 보지 않고 바로 옆 책에 눈길도 주지 않고 하염없이 뭔가를 기다린다.우리가 그렇듯...

 

정혜윤은 라디오 프로듀서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을 읽고 있으니 서정적인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고 있는 기분이다. 모두 잠든 후에 조그만 라디오 스위치를 켜고 작은 스탠드 조명등에 의지한 책상 머리 밑에서 DJ가 들려주는 세상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듯하다. DJ는 말한다. “영혼을 단단한 핵처럼 품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 하나 고유한 행성이 되고 또 그만한 무게와 자신만의 중력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만의 중력, 우리는 그 중력의 힘을 태양 만큼 크게 지닐수도 있고 소박한 달과 같이 지구의 위성처럼 살 수도 있다. 이제 정혜윤은 말한다. 계속 위성으로 살까? 아니면 자신만의 우주를 태양만큼 크게 가질 것인가? 그래서 은하계의 한 장을 열어보지 않겠느냐고... 나는 그렇게 해석하며 책 장을 넘겼다.

 

2012년은 내게 있어 변화의 전환점이 된 해로 기록될 것이다. 누구라도 그 개인에게 기억될 만한 연도가 있다. 역사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생애 속에 존재하는 숫자. 태어난 해, 졸업한 해, 결혼한 해, 첫 아이를 낳던 해. 수많은 연도 속에 존재해온 나라는 존재자. 2012년은 내게 시간이라는 선물이 생긴 해이다. 바로 기회와 자유시간에 대한 문제 해결을 한 해인 것이다. 작가는 존 버거의 [랑데부]라는 책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나는 이 2012년이라는 연도가 내게 주는 가치를 깨닫게 된 것이다. 둘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하면서 생긴 시간의 선물. 그 시간으로 말미암은 기회들. 그 속에서 나는 책을 붙잡았고 서른 여덟해 동안 바라본 삶을 통해 책을 읽어 내려간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메모지 하나와 펜 하나를 옆에 두고 읽었다. 작가의 삶을 통찰하는 글 속에는 항상 책이 있었다. 나는 그 책들 중 몇 권을 메모지에 옮겨 적곤 하면서 책을 읽어 내려갔다. 작가는 글을 통해 삶을 표현한다. 고단하고 힘든 삶일 경우가 많았으리라. 그 글을 통해 자신이 치유되듯 읽는 독자도 치유 받으리라는 것을 알았을까? 그 글은 분명 우리를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정혜윤도 아마 그것을 말해주고 싶은 것 같다. 그렇다면 책은 우리 삶에 진정으로 쓸모 있는 것 일게다. 상처를 회복하게 하는 것만큼 쓸모 있는게 또 어디 있겠는가? 또한 나 개인이 아니라 타인을 생각하게 하는 힘, 내 기억속에 타인이 존재하듯 타인의 기억속에 내가 한 조각 존재하듯 우리는 개인의 삶이 아닌 우리의 삶이라는 덩어리로 묶이게 된다. 서로가 엉킨 기억들로 우리의 삶은 이어가는 것이다. 독서는 이런 기억의 엉킴같은 역할을 하는것 같다. 감정은 이입하되 들여다 볼수 있는 것, 관망할수 있는 것, 그런 과정은 나의 본성을 깨닫게 하는 디딤대가 될 수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조바심이 나다가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이런 좋은 책들을 빨리 읽어야 할텐데...언제 다 읽을 수 있을까? 당장 코앞에 시험이 있을 수 있고 바쁘게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조급해 진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본다. 정혜윤도 말한다. 텍스트를 멈출 수 있어야 한다고 그리고 그 연결고리를 내 삶과 묶어보아야 한다고. 그렇다면 조급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당장 칠 시험을 준비하는 것도 업무를 처리하는 것도 내 삶의 일부이니 언젠가 나의 소중한 텍스트를 읽을 때 그것들을 나의 연결고리에 포함될 수도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다독을 한 작가가 책에 대해 쓴 또 다른 책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는 그 깊이를 가늠하기에 감동을 주는 책도 있고 다독을 한 그 현상만을 나열한 책도 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읽고 있는 이 책은 참으로 깊이가 느껴지는 공감과 감동을 준다. 내가 그 많은 책을 읽지 않았어도 정혜윤 작가의 일상과 업무, 취재와 책이 연결고리를 이루며 내 앞에 펼쳐질때 나는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삶을 보는 것이다. 그녀가 만났던 택시 기사 할아버지, 희망버스를 타고 한진 중공업의 85번 크레인을 나도 함께 만나는 것이다. 그녀는 삶과 책이 만나는 순간을 얘기하고 있다. 그렇기에 더 생생하게 나는 삶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책 소개하는 그런 책이라 생각지 않는다. 이 책을 어렵지 않게 잘 쓰여진 철학책 같다. 삶의 근본을 만나는 철학책. 난해한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또 다른 개념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어렵지 않지만 깊이가 있는 철학책처럼 나는 삶의 깊이를 가늠해 본다. 나는 이제 알았다. 책을 읽는다라고도 하지만 책을 본다라는 표현을 우리는 더 많이 쓴다는 것을, 그것은 아마 삶을 보듯이 그렇게 책을 보는 것이라고, 책을 볼때는 쭉 읽어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과 함께 보는 것이라고... 내가 보는 책 그것은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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