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7287

성숙한 선인장 - '가시고백' 을 읽고 

 

                                                                                                                           서울영락고등학교 2학년 5반 김주희

 

사람들은 제각각 어떤 곳이 결핍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매일 밤 감성적인 시간에 이성적으로 내 머릿속을 헤집던 다소 서글픈 생각이었다. 뭐랄까, ‘결여’라고 칭하기에는 어딘가 약한 면이 있는 것이다. 마땅히 필요한 것인지 까지는 확신할 수 없이 그저 허한 기분에 몸 둘 바를 모르는 거다. 이 책은 이런 내 머릿속을 빤히 들여다 본 듯, 읽는 내내 내게 차분한 해답을 들려주는 것 같았다.

 

도둑, 병아리 부화, 감정 설계 그리고 왕비의 거울. 수많은 소재들 중에서도 단연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제목에도 언급되어있는 ‘가시’였다. 가시, 내가 결핍이라 운운하던 그것이 형상화 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제각각 다른 모양의 가시를 가슴 깊은 곳에 쿡 박은 채로 산다. 원인이라든가 출처조차 불분명한 그것에 비교적 무뎌지기도 하고, 어느 순간 꿈틀할 때에도 그저 순리처럼 가만히 견뎌내는 것이다. 나는 그게 싫었다. 분명 나에게도 가시라는 것은 존재했고, 그걸 그대로 꼭 그러안고 있기에는 난 너무 어렸던 거다. 남들은 잘만 사는데, 남들은 당연한 일인데, 남들은 저렇게나 행복한데…. 지치지 않는 비교 끝에 지치는 건 나였다. 더욱 상처입고, 그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앙금이 생겨 독해져만 갔었다. 도리어 비뚤어진 것이다. 그렇게 가시는 또 다른 가시를 낳았다. 그 때의 나는 거의 선인장이었다. 그리고 내가 보는 사람들도 모두 선인장 같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아이들 역시 그랬다. 나만큼이나 가시투성이였던 것이다. 이젠 습관처럼 굳어진 절도, 아버지 원망하기, 욕, 직업병…. 온기에 메마른 아이들은 그래서 더 병아리를 좋아한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따뜻한 생명의 순수한 탄생에 경건한 마음까지 들었으리라. 실은 아리 쓰리의 부화 과정을 읽어나가던 내가 그랬다. 이 책을 읽던 동안만은 이 아이들이 나였고, 내가 이 아이들이었던 것 같다. 함께 웃고 울며 나 또한 성장하고 있음을 느꼈으니까.

 

작은 용기로 맺어진 단단한 결심으로 아이들이 제 몸에 박힌 가시를 하나 둘 뽑아낼 때 나 역시 나의 가시를 뽑아내고 있지는 않았나 싶다. 해철이 꿋꿋이 연구하던 감정 설계란 것은 정말 가능했던 것이다. 작중 인물이라는 것을 넘어선 이들로 인해 나의 감정이 재설계되었기 때문이다. 환경을 탓하고, 상황을 탓하고, 끝에는 내 자신의 비하까지 이르던 비겁한 감정은 줄이고 이 고난을 내가 얼마나 멋지게 견뎌낼 것이며 나는 어디까지 성숙할 것인지 그 반짝이는 희망과 다짐을 늘리게 되었다.

 

일전의 나는 왕비의 거울에게 무엇을 묻고 있었을까? 아마 용창느님이 지적한 것과는 조금 다른 양심을 비추고 있었던 것 같다. 내 가시는 왜 유독 아프게 자리하고 있을까, 사실 남들의 가시는 내 것과 비교도 되지 않는 작고 얇은 실이 아닐까? 나 혼자만 이렇게 힘든 건 아닐까? 그렇다면 왜 나만?…,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원망 섞인 잡념 속에 콩 한 쪽이라도 쪼개먹자는 정신을 독사과 나눠먹기에 악용하고 있지는 않았나? 내 가시가 아픈 만큼 타인의 가시도 아프다는 걸 왜 이해하지 못했을까, 실은 그들 역시 묵묵한 감내 속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음을 왜 외면했을까…….

 

가시를 뽑아내는 일은 어려운 것 같기도 쉬운 것 같기도, 시원할 것 같기도 섭섭할 것 같기도 한 매력적인 같기도 정신에 합류하게 되는 일인 것 같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꼭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 가시라는 놈은 살을 뚫고 박혀있는 것이 아닌 그저 짓누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새 살이 돋을 필요 없이 그 지독한 자국만 사라지면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정말 행복했다. 감히 이렇게 자신할 수 있는 것도 감정 설계 탓일까? 앗, 그렇다면 왕비의 거울에 나를 비춰보아야겠다. 삐쭉삐쭉 선인장 대신 뽀송뽀송 병아리 한 마리가 삐약삐약 노래하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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