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6007

텅 빈 충만 - '소설 무소유'를 읽고 - 

 

                                                                                             김원준

 

‘소설 무소유’를 읽고 싶었다. 아니, 그 책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부탁했다. 책 좀 주문해달라고. 왜? 나는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으니까. 돈도, 신용카드도, 은행통장도, 아이디도, 패스워드도..... “무소유? 뭘 더 잃고 싶은 건데? 아직도 당신한테 남아있는 게 있어? 허구헌날 그놈의 책은.....” 

 

출근 준비로 분주하던 아내가 톡 쏘아붙였지만, 그 다음 날 책이 배달되었다. 내 자존심과 ‘소설 무소유’를 맞바꾼 셈이다. 이젠 그 알량한 자존심마저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 책(소설 무소유/정찬주/열림원)에는 법정 스님의 인간적 면모가 가득 담겨 있다. 스님의 출생과 성장기로부터, 어떻게 출가해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어떤 생각을 갖고 계셨는지를 마치 장편서사시를 읊듯이 섬세하고 솔직하게 풀어 쓴 책이다. 특히 법정 스님의 재가제자인 ‘무염’ 정찬주 작가가 소설 형태로 전개하고 있어, 훨씬 흥비롭고 진지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소설처럼 반전의 재미를 위해 드라마틱하게 꾸미지도 않았고, 전기문처럼 칭찬일색으로 영웅시 하지도 않았다. 그저 법정이란 한 인물의 생애를 물 흐르듯 담담히 조명하고, 아직까지 세상에 밝혀지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풀어놓음으로써 ‘스님 법정’ 외에 ‘인간 법정’ 까지 알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다. 법정 스님께선 왔다 가신 ‘흔적’ 없이 제자리로 돌아가시길 원했지만, 그 인간적 면모가 제자(자가)의 기억을 통해서 향기로운 한 권의 책으로 재탄생 되었다고나 할까. 

 

꽃과 나무를 사랑했고 달을 사랑했으며, 자연을 사랑했던 친환경적 성품. 어렵게 공부하는 대학생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 학비를 보태주셨던 따뜻한 마음. 30년 된 걸레를 사용하신 철저한 검약 정신. 연필 한 다스와 장날 마실에서 얻은 천 원에 마냥 행복해 하신 소탈함. 장애인 엿장수를 기만하고 엿을 훔쳤던 장난을 평생 후회하고 뉘우치는 정직함. 이복누이에 대한 애증과 미안함. 어머니에 대한 회한 등을 진솔하게 그려냄으로써, 법정 스님의 깨끗하고도 향기 나는 성정과 진면목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법정 스님께서 손수 만드셨다는 빠삐용 의자를 보면서, 나도 내 인생을 낭비하며 살아온 건 아닌지 자문(自問)해보았다. 참으로 부끄러웠다. 15년 전에 사업이 도산하여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그 후 10여 년 동안 그것들을 다시 되찾으려 아등바등 살아온 인생. 게다가 5년 전에 간암 판정을 받아 이젠 목숨까지 잃게 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참으로 허망하기 짝이 없었다. 지천명을 넘길 때까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던가. 이제 간암말기에 접어들어 저승길을 코앞에 두고서야 이러한 회한(悔恨)을 갖게 되다니..... 법정 스님은 임종을 앞두고서도 이미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결코 당황하지 않으셨다 한다. 입원 날짜가 길어지자 의사들이 연명을 위한 치료를 권유했지만, 법정 스님은 단호히 거부하셨다 한다. 그럼 난 어떤가. 지난 5년 동안 오로지 죽음에서 벗어날 궁리만 해왔다. 여러 책을 읽으면서 ‘인생은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란 말에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언제 갑자기 죽음이 찾아올까 매일매일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론 의연해지려 애를 썼지만, 밤마다 악몽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런 바로, 내 자신이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모님께서는 불효자식이요, 아내와 자식한테는 무능력한 남편과 아버지였으므로. 

 

한 번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맞게 된다.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만고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어날 때엔 모두 빈손으로 오지만, 죽음에 이르는 마음가짐과 방법은 각기 다르다. 모두가 법정스님처럼 청빈하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순 없으며 스님의 삶을 따라 살기는 더더욱 어렵다. 법정스님께선 삶과 죽음을 보완관계이자 연장선상으로 보았기에, 이 책의 화두이자 그의 평생 가치관인 ‘무소유’가 가능했다고 본다. 결국 자연에서 자연으로 회귀함에 있어, 이승에서의 필요이상의 소유는 필연적 번뇌를 불러옴을 언행일치를 통한 무소유로써 몸소 보여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무소유가 아닌 ‘무능력’도 구제 받을 수 있는 것일까. 무소유는 가질 수 있는 자가 스스로 갖기를 포기하는 것이고 무능력은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가질 수 없는 것인데, 지천명을 넘겼음에도 집 한 채 갖지 못한 자신을 ‘텅 빈 충만’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그래도 아내와 자식 하나씩을 챙겼으니 안분지족을 느끼며 죽음을 맞이해야 할까. 아니다. 내 경우는 무소유가 아니라 무능력이다. 무소유를 실천한 것이 아니라, 게으르고 무능력해서 얻지 못했을 뿐이다. 돈도 명예도 건강까지도..... 그래서 더 두렵다. 내가 죽은 뒤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그토록 무능력한 나의 소유욕을 끝없이 자극했던 한 가지 물건이 있다. 그건 바로 책이다. 법정 스님께서 갖고 싶어 하셨던 연필과 다기,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무소유 책 한 권을 갖고 싶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비교할 순 없지만, 나 또한 책 욕심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15년 간 셋방살이를 전전하면서도 자꾸만 불어나는 책(현재 2천여 권)을 질질 끌고 다녔으니까. 지나친 소유욕이요, 집착이었다. 그런데 법정 스님께서도 책을 무척이나 좋아하셨던 것 같다. 처음 출가하실 때 ‘주홍 글씨’와 ‘어린 왕자’등을 지니고 계셨고, 출가 후에도 독서하시다가 효봉스님께 들켜서 책을 아궁이에 넣기도 하셨다니 말이다. 하지만 법정스님께선 나와는 다른 독서법을 체득하신 것 같았다. 책을 읽는 데 있어서 무언가를 얻으려고 집착하기보다는, 책 읽는 그 자체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는 것이 바른 책 읽기라고 말씀하셨으니까. 또한 법정 스님께선 책의 지식에 중독되지 말라고 하셨다. 스스로의 묵상과 체험에서 얻는 지혜를 강조하셨다. 어떤 학생이 ‘좋은 말씀’을 부탁하자 “좋은 말씀에서 먼저 해방하라. 자기의 소신과 판단대로 살아갈 것이지 어째서 남의 말에 팔려 남의 인생을 대신 살려고 하는가?“ 라고 일갈하셨다는 법정 스님. 솔직히 나는 이 말씀에 크나큰 감명을 받았다. 전기문이든 소설이든 그 어떤 책이라 할지라도, 사실 남의 인생과 남의 생각을 집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간접경험이든 뭐든 아무리 좋은 말로 씌어 있다 해도, 그 진실은 남의 경험을 읽고 있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바로 지금의 나와 내가 살고 있는 방식, 그리고 내가 지닌 생각을 소신껏 펼치며 살아가는 것이다. 법정 스님은 그 이유로 책의 절판을 유언하지 않으셨나 싶다. 그러나 이 세상에 말빚조차 남기고 싶지 않으신 법정 스님의 뜻에 반(反)하여, 오히려 수십 배로 치솟아버린 스님의 책값이 작금의 병폐를 말해주고 있다.

 

현대사회는 소유에 대한 기본적 집착을 넘어선 지 이미 오래이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부의 편재(偏在)’ 로 인해 사람들은 어떻게든 많이 가지려고 악다구니를 쓴다. 인생을 반전할 기회가 온다 해도 빈자는 잡기 어렵고, 부자는 아파트 한 채만 차고 앉아 있어도 수억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마음에 여유가 있을 수 없고, 친구도 동료도 이웃도 경쟁의 대상으로밖에 볼 수 없게 된다. 게다가 그렇게 온갖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어하고 자책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 며 또 다시 소유욕에 집착하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식으로 살아왔다. 무소유의 참뜻을 깨닫지 못한 데다, 무능력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절대다수의 한국인은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고, 수치스럽게 여긴다. 재산과 지위와 명성 등으로 사람을 저울질하고, 지갑이나 은행잔고가 얼마나 두둑한 가에 따라 그 사람의 인격까지 평가한다. 한국사회가 보는 부의 정의는, 타고 온 자동차와 입고 온 양복을 보고 손님을 평가하곤 하는 호텔의 도어맨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법정 스님께서는 많은 돈과 큰 집을 갖고 있는 사람이 부자가 아니라, 불필요한 물건들에 얽매이지 않고 그것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사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요,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신다. 법정 스님의 말씀대로라면 난 행복해야만 한다. 돈도 없고 지위와 명예도 없고, 가진 것이라곤 간신히 붙어있는 가느다란 생명줄 하나뿐이니까. 그래, 한 개다. 법정스님의 스승인 효봉스님께서도 두 개는 욕심이라 말씀하셨지! 이젠 책에 대한 내 집착과 욕심을 버리려 한다. 집 가까이에 있는 ‘청소년 공부방’에, 그동안 모아두었던 책들을 전부 기증할 것이다. 법정 스님께서 지독한 집착과 얽매임에 시달렸던 난초를 친구에게 주고 나서 무한한 홀가분함을 느끼셨던 것처럼, 나도 나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집착인 책을 버리려 한다. 무소유를 통해 ‘텅 빈 충만’을 실천하신 법정 스님을 가슴속에 새기며, 나의 집착으로부터 기인(起因)하는 두려움을 덜어낸 뒤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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