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영광독서 감상문

영광도서 0 6886

 

사랑 그 이상의 의미  - <연인 서태후>를 읽고

부산시 동래구 안락1동 박귀영

 

  

 

아이의 생각과 상관없이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 특목고는 기본이라고 거들먹거리며 엄마의 꿈을 키웠다. 엄마가 일방적으로 짜놓은 빡빡한 일과표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여 주지 않는다고 ‘그렇게 의지가 약해빠져 가지고 장차 뭐가 되려고 그러느냐? 고 모진 잔소리를 늘어놓았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금방 자상하고 따뜻한 척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음성으로 아이를 달래는 일에 익숙해지려 애를 썼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이를 위하는 길 인줄 알았다. 

 

다행히 아이는 엄마의 뜻을 잘 따라 주었고, 엄마인 나는 공부 잘하는 아이덕분에 어디를 가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아이가 선택하는 학원과 교재에 있어서 많은 엄마들의 관심 사가되었고, 아이문제로 상담을 해오는 엄마들이 있을 정도였다. 때때로 일관성 없는 말을 떠벌리고 다녀도 아이의 교육에 과한 한은 섣부른 부정을 하지 않았다. 나의 크고 작은 실수가 공부를 조금 하는 편인 아이로 인하여 현명한 엄마로 둔갑할 수 있음을 은근히 즐기고 있었다. 

 

‘서태후’ 그녀 또한 아들을 자신의 목숨보다 사랑했다. 자식에 대한 교육뿐 아이나 오직 태자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더 나아가 황제로 만들기 위해 어머니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아니 그 이상의 것도 마다하지 않고 애지중지 키웠다. 아들을 위해서 라는 일념으로....... 그러나 아들이 황제 자리를 원했던 건 아니다. 서태후의 끝없는 욕망이 아들을 황제로 만들고자 했다. 모정을 핑계 삼아 사사건건 간섭하며 황제다운 황제이야기를 내세워 섭정을 계속하려 했던 것이다. 황제의 자리를 길이길이 보전해 나가는 데 목적이 있다. 목적은 계획이 있고 순서가 따르게 마련이다. 철저한 자제력으로 인한 자기관리에 의해 서태후의 목적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자신의 자리를 굳히기 위해 주위를 잔인하게, 공포에 떨게끔 만들어 버림으로 여왕으로, 늙은 부처로 군림할 수 있었다. 

 

서태후의 칼날처럼 차고 빈틈없이 딱딱 맞아 떨어지는 성격은 자신이 낳은 아이라도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어머니상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똑똑하고 빈틈없는 엄마를 아이가 자랑스러워 할 것이라 의심 없이 믿고 있었다. 내 어머니가 세련된 어머니이기를 바랐던 것처럼...내가 현명하고 똑똑한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는 만큼 아이는 부담스러워 피하게 된다는 걸 어린 황제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이해심이 많아 넉넉한 어머니의 품을 내어주고, 체통에 어긋나는 잘못을 해도 닦달하지 않고, 황제 자리에 욕심을 내지 않는 동태후 같은 편안한 어머니상을 아이가 원하고 있다는 걸 몰랐다. 아이가 동태후 같은 엄마의 모습을 나에게서 찾고 있는 줄도 모르고, 이 급박한 시간에 잠자고, 먹고, 쉴 여유가 어디 있느냐고 무조건 공부만 하라고 채찍질 해대는 엄마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꼬? 

 

어느 날. 아이의 책상을 정리하다가 어지럽게 꽂혀 있는 공책을 한번 훑어보고 꽂으려다 이상한 글들이 눈에 들어와 다시 펼쳐보았다. 엄마의 이름이 수십 번 적혀있고 아이가 평소에 입에 담지 못할 욕들이 이름 뒤에 나열되어 있었다. 나도 내 아이한테서 실망, 분노, 배신감 등을 느낄 수 있는 못난 엄마였구나 싶은 생각에 한동안 삶의 의욕마저 잃고 멍하니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아이에게는 모르는 체 그냥 내 가슴 깊이 묻어 두기로 마음먹었다. 공부도 못하고 버릇없는 아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노파심이 너무 과했던 탓이라 여겼다.

 

서태후는 아들이 동태후를 좋아한다는 것에 질투하고 원망하면서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반역을 스스로 물리칠 황제의 생명력을 위해 오히려 더 강해져야 한다고 몰아세웠다. 이젠 어머니를 위해서.... 그것이 어린 아들의 가슴에 상처로 남아 속으로 곯아가고 있었다. 며느리인 황후로부터 느끼는 생명의 위협을 아들이 막아주지 못하는 약하고 못나빠진 아들이라면 서태후에게 아무런 존재가치가 없었다. 갑자기 차가 떨리는 상실감에 빠져 아들과 며느리를 죽게 했음에도 어머니로서 조금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모진 구석이 있음은 모든 백성의 어머니이기에 가능했던 것일까! 서태후가 처음부터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한번 맛을 보면 끊을 수 없는 권력에 대한 마약성이 아들의 죽음까지 불사하는 강한 독성이 발작을 일으킨 탓이리라. 

 

난아는 숙부 집에 얹혀사는 부담감을 자신의 충실한 삶으로 떠안을 줄 아는 속 깊은 생각을 가진 소녀였다. 난아에서 예흐나라, 자희황후, 서태후, 여왕, 늙은 부처 라는 칭호를 얻기까지 자라온 환경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집안의 온갖 궂은일을 혼자 도맡아 해야 하는 처지를 불만하거나 비관하지 않고 스스로 사촌여동생 사코타와 친동생들의 손과 발이 되는 어찌 보면 속이 없는 듯한 성실함이야말로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란 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모두를 사랑하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며, 나를 버리는 것이 모두의 사랑을 받는 일이라는 것을... 

 

선택은 삶에 있어 흔하고 사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때도 있다. 17살 난아의 선택이 그의 운명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듯이...사랑하는 영록과 결혼해서 경비병의 아내로 아이 낳고 평범하게 살 것인지. 황제의 후궁으로 뽑힌다 하더라도 늙어 죽을 때까지 황제의 얼굴 한번 못보고 처녀로 살게 될지도 모르는 불행을 감수하고라도 궁으로 갈 것인가 하는 갈등은 신분상승이란 명제 앞에 쉽게 결론이 났다. 사랑하는 영록의 이름과 난아 라는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예흐나라 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희망과 꿈을 안고 집을 떠나는 가마 안에서 자신의 운명을 의지를 더 높게 다지고 또 다졌으리라. 

 

상대가 황제일지라도 사랑과는 무관하게 여자의 모든 것을 바쳐야 할 피할 수 없는 치욕스러움에 아무런 대가도 주어지지 않는다면 황제를 둘러 싼 질투의 칼날들은 무디어 졌을 것이다. 그러나 잠시 딛고 올라서기 위한 발판으로 황제의 권우를 이용하고자 궁에 들어간 수많은 여인네들은 참고 또 참는 인내의 세월을 보내며 때를 기다렸을 것이다. 날마다 제 살을 쥐어뜯는 애달픈 그리움에 영록에 대한 사랑을 겁 없이 키우는 서태후는 천상 마음 약한 여자였다. 

 

두 사람의 비윤리적인 사랑이 모두에게 지탄을 받아야 한단손 치더라도 힘든 현실을 곧게 지탱해 나아갈 수 있는 버팀목이 되고, 그 사람의 능력과 판단에 지대한 힘이 되는 사랑,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소유할 수 없는 물건일수록 더 갖고 싶어 하는 애착이 여러 겹 겹치면 못 다한 사랑의 두께만큼 되는 것일까!

 

사랑을 사랑함에 있어 사랑, 그 이상의 의미는 무엇일까! 영록은 서태후에게 늘 그리운 사람이었기에 살아가는 의미가 되고 더 큰 꿈과 희망을 실현하기위한 수단이 되었지만, 아들에게 끝임 없는 사랑을 쏟아 부은 만큼 아들은 어머니의 욕망을 필히 채워주어야 할 목적이 되었기 때문에 불행했다. 사랑으로서의 수단은 더러 나 자신이거나 나를 알지 못하는 혼자만의 짝사랑일 때도 가능한 것이다. 목적은 상대가 있어야 성립되는 것처럼 반드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게 만들고자 하는 일임에 만족 아니면 실망이라는 결과가 따를 수밖에 없다. 궁에서 무료함과 이루지 못한 절절한 사랑의 갈피들을 자신의 머릿속에 지식을 채워 넣는 자기관리와 자기만족의 여유로 대체할 줄 아는 서태후의 현명함이 부러웠다. 

 

아이의 비밀일기장을 본 이후로 아이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되도록이면 안 하려고 했다. 아이의 성적은 점점 아래도 떨어졌다. 숨을 쉬고 있다고 사는 게 아니었다. 아이에 대한 기대와 욕심이 한꺼번에 빠져나간 허무는 무엇으로 달래어지지 않았다. 아이를 부담스럽게 하는 욕심을 걷어내는 연습이 필요했다. 

 

아예 책에서 손을 놓고 마음껏 여유를 즐기는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숨통이 막혀오는 듯한 느낌을 감출 수 없어 시선을 책에 두었다. 엄마의 굴레에 갇혀있는 아이의 꿈을 이젠 놓아주고 싶다. 대신 나를 가두어 두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쉼 없이 자신을 개척해 나가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서태후의 여장부 기질을 나의 삶으로 끌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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