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6011

밭 매며, 책 읽으며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읽고 - 헬렌 니어링 -

 

이원자

 

가을입니다. 하늘이 참으로 맑습니다. 그 하늘 아래 우리 텃밭에서는 지금 빨간 고추잠자리가 날고 여기저기 취나물 꽃이 예쁘게 피었습니다. 추석 전 씨를 뿌린 무, 배추도 가을볕에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습니다.

한쪽에선 들깨가, 한쪽에선 강낭콩이랑 쥐눈이콩도 알차게 여물어갑니다. 사실 이름을 들먹이자면 아마도 50여 종은 넘을 많은 작물들이 우리 밭에서 숨 쉬고 있습니다. 아니 그 이상일겁니다. 내가 심지 않아도 달개비니 고들빼기, 비름, 까마중, 머위, 돌나물 등은 성격도 좋은지 아무데나 자리 잡아 잘 어울리고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내가 이 방면으로 전문가는 아닙니다. 말 그대로 초보 농군이지요. 흙을 만지며 산지가 10여 년이 넘었습니다만 아직 작물들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그들의 작은 음성을 들을 만한 심성이 되지 못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저 그들의 살고자하는 생명력에 기대어 그럭저럭 이 밭주인 흉내를 제법 내고 있는 편이지요. 요즘은 완전한 생태농법을 위한 공부를 많이 하고 있답니다. 생선을 삭혀서 거름을 만들고 식구들의 오줌을 받느라 부산을 떨기도 하지요. 태풍이 불 때는 해초를 구하러 바닷가로 달려가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근처 탕제원 찌꺼기를 날마다 갖다 나르고, 나무 재를 만들고, 건초를 만드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느새 이 모습이 내 모습이 되어 살아가고 있네요. 나는 흙에 대한 공부가 이렇게 재밌는 줄을 예전에는 몰랐습니다. 알아갈수록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공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옷에 흙칠갑을 하며 주저앉아 호미질을 하고 있으면 마음이 그렇게 편안해질 수가 없습니다. 땀 흘리는 시간 속에 온갖 종류의 풀벌레와 새들이 함께 어울려 오케스트라 연주를 해줄 때면 내 마음의 때가 다 씻겨 나가는 기분입니다. 

 

이제 고백해야겠네요. 여기 이 자리에 데려다 준분은 바로 헬렌 니어링, 당신이라는 것을요. 그러니까 10여 년 전, 당신의 책을 읽은 것은 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어릴 적 경험을 조금은 이야기해야겠지요. 어느 날 내가 ‘나’라는 걸 인식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어느 산간 오지 시골마을에 있었습니다. 중학교를 다닐 때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던 그곳에서 나는 그냥 자연에 내던져진 채 자랐습니다. 주변에 강과 자그마한 야산들로 둘러싸인 그곳은 우리 아이들의 놀이터였고 우리는 그 속에서 무엇으로든 환희에 가까운 놀이를 찾아냈습니다. 나물 캐고, 소 먹이고, 풀 뜯고, 미꾸라지 잡고, 말밤 따고, 조개 잡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이 그 때만큼 속속들이 나를 채운 적이 없었고 그때야말로 내게 가장 황금기의 시절이었다는 것을 늦게 서야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알지 못했지요. 머리가 커지면서 힘든 농사일이 무엇보다 싫었고 그 일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성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향에서는 희망이 없어보였습니다. 산업화가 막 진행된 시기였던 그때, 그래서 우리는 내남없이 하나, 둘 꿈을 안고 도심지를 향해 떠났고 나 역시 밖으로 나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어찌어찌해서 손에 흙 묻히지 않는 생활을 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또 당연하다는 듯이 손에 흙 묻히지 않는 사람과 결혼했고 누구나 그렇듯 도시 속의 내 꿈은 돈 많이 모아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는 것이었고 내 아이들이 공부 잘 하여 성공하는 아이들의 엄마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내게 좋은 날은 그렇게 올 걸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살면 먼 훗날 행복을 적금처럼 찾을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도서관에서 당신을 만난 겁니다. 아, 지금도 내게 스펀지처럼 스며들던 스코트와 당신의 주옥같은 생각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두 분의 빛나는 지성과 삶에서 당신들이 찾아내는 진정한 가치들은 마치 씨앗처럼 내 마음에 날아 앉았습니다. 그리고 그 씨앗은 내 속에서 수시로 꿈틀거리며 나를 간질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사는 게 별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복잡하고 현란한 변화에 속고 있는 것이었고 그것이 또한 내 허영과 욕심에 맞물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로소 내가 발 딛고 선 곳이 오직 돈으로 지탱하는 도시의 모래성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책 속에서는 내가 그렇게 벗어나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농촌생활, 그렇게 탈출하고 싶었던 힘든 노동이 당신들의 철학을 통해 전혀 다르게 표현되고 되고 있었습니다. 오직 극복할 대상이라고 여겼던 일투성이의 시골생활이 본질적 아름다움으로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자연을 향한 스코트와 당신의 자세는 경건함 그 자체였고 두 분의 자리는 자연 속에 놓인 성역이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전율이 일었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참으로 적시에 내 영혼을 진단하러 나타난 손길이었지요. 그로부터 내 속에 숨어있던 흙에 대한 본능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나 봅니다. 나는 어느 날부터 갑자기 너무 일이 하고 싶어졌습니다. 손에 너무나 흙을 묻히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은 무작정 삽을 사서 산언저리 공터를 팠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남의 땅에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지만 뒷날 그 자리에 가 봤더니 누가 고구마를 예쁘게 심어놨더군요. 그냥 뿌듯했습니다. 그 후로 저의 계획은 나를 다시 흙과 연결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 무엇보다 내 속에 심어진 어린 시절의 그 자연 속에 나를 다시 데려다 놓는 것이었습니다. 본래 나에게 주어졌던 그 근원적인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남의 밭을 많이도 전전했지요. 그러다가 작년에는 그래도 농사짓기로는 조건이 괜찮은 이곳으로 이사를 해서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축하해주시지 않을래요? 나는 지금 저 파란 하늘 밑의 우리 밭에 서서 당신을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내 자신에게 늘 물어보곤 합니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인가? 살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나를 가치 있는 일에 쓰고, 최대한 자연에 의지해 살다 죽는 것이 내가 잘 살다 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 다시 당신의 책을 읽어보니 내 자신이 당신을 완전히 따라하지는 못하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네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일이 참 많습니다. 남편이 밥벌이의 수단으로 힘든 사회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아직 말리지 못하고, 가끔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가격을 궁금해 하며, 내 아이들이 무사히 저 경쟁 사회에 잘 편입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비록 내가 바라는 쪽으로 가고 있다 하더라도 내가 발 담그고 있는 현실을 부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가진 부모 마음으로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생활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유에 의존하는 삶’과 ‘존재를 바탕으로 하고 싶은 삶’은 늘 내 속에서 부딪히곤 합니다. 나름대로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정도라고 할까요. 아니, 어쩌면 아직은 당신의 세계가 이상에 더 가깝다는 게 맞을 겁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실제로 우리의 생활은 몇 십 년 전과 비해 무척 윤택해졌습니다. 가끔 내가 너무나 첨단 세상을 살고 있다는 것에 놀라곤 하지요. 그러나 그 발전 속에 있는 우리는 지금 엄청나게 높아진 삶의 비용을 멍에처럼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산다는 것이 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 되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그렇다면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 아닐까요? 지금 이 세상은 누구도 자기 삶의 온전한 주인이 되도록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상하지요? 세상은 점점 발전하는데 그 속도만큼 살기는 더 어려워지고 삶의 본연적인 질은 갈수록 더 떨어지고 있으니 말이에요. 문명이 바람직한 생활에 장애가 되지 않고 기여할 수 있게 만드는 문제를 고민하셨던 두 분. 그러나 우리의 모습은 편리한 것에 길들여지는 만큼 오히려 그 문명으로부터 속박당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을 때가 많습니다. 이제 TV나 전화기는 완전히 우리를 지배하여 책 읽어야 할 시간을 그것에 고스란히 뺏기고 있습니다. 갈수록 전화기를 손에서 놓을 수가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TV라는 네모난 세상의 환상에 빠져 몰려다닙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크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픕니다. 그 뒤에는 음흉한 자본이 숨 쉬고 있고 실제로 그 힘이 광고의 막강한 영향력으로 연결되는 것도 참으로 꼴불견입니다. 두 분은‘자본주의의 저급함과 주변에 난폭하게 구는 약탈 경제’를 가장 경계하셨지요. 그러나 세상은 자꾸 근사한 이름을 붙인 투전판이 되어가고 이제 세상 모든 일이 다 돈 버는 일이 되어가고 있는 듯 보입니다. ‘함께하는 삶’보다는 갈수록 빈부격차는 더 커져 상대적으로 느끼는 박탈감과 패배감은 사람들의 마음을 점점 더 피폐시키고 있습니다. 삶의 본질에 충실하고자 했던 스코트와 당신, 원칙주의자이며 옳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항상 고민하셨던 두 분을 떠올리며 생각해 봅니다. 우리 현대인들이 과연 이 위험한(?) 끈을 놓을 수 있을까요? 어느 날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로 턱 도착해버리기 전에 정신을 차리는 날이 올까요? 내가 현실 속의 발을 무작정 뺄 수 없듯이 아마도 수많은 ‘나’들로 이루어진 세상은 그냥 그렇게 흘러가지 않을까요? 아휴, 그렇게 회의적으로 생각하니 우울해지네요. 그러나 적어도 희망은 가지고 싶습니다. 이 책이 우리 삶의 진정한 교과서로 자리 잡기를 바래봅니다. 그래서 발전 속에서도 당신들의 생활이 애초에 우리의 근본이고 뿌리였음을 자각하는 힘도 함께 커졌으면 좋겠습니다. 마치 내 마음에 당신이 그렇게 날아와 앉았던 것처럼 당신의 풀씨가 또 수많은 가슴에 날아가 앉기를 빕니다. 

 

나는 몇 년 째 ‘밭 매며, 책 읽으며’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낮에 햇빛 받으며 몸 움직여 일하고 저녁에 아이들 옆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만큼 좋은 시간도 없습니다. 가끔은 내가 누구인지 글 쓰며 찾아나서는 일도 의미 있는 시간입니다. 나는 이 생활을 내 행복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듭니다. 당신을 닮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지금의 나로 만들어주고, 지금 이 자리에 나를 데려다주신 두 분, 정말 고맙습니다.

 

10월 어느 날, 독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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