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5997

- '울고 싶어도 내 인생이니까'를 읽고

 

                                                                                               부산 국제고1 주우진

 

얼마 전 신문기사 하나를 읽었다. 익산에서 실종된 여중생이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는 소식이었다. 고등학교 진학문제로 부모님과 갈등을 맺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진학문제 이야기가 나오니, 나도 남의 이야기 같지는 않았다. 처음 이곳 국제고등학교에 발을 디뎠을 때, 나는 국제고의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열려 있어서 노력하면 다 이루어질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현실은 내가 바라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선, 이곳의 수준을 따라가기에는 나는 너무 약하고 무지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다 나보다 우월해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성적도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 잘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치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이곳은 성적이 자신의 미래와 직접 연관되는, 성적이 개인의 가치를 결정하는 곳이었다. 학업에서의 실패와 주변 환경과의 괴리감에서 오는 열등감은 나를 좌절 속으로 밀어넣었다. 얼마 전,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지난 한 학기 동안 내가 무엇을 했는지 되돌아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지난 학기동안 이루어 놓은 것이 크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먼 곳까지,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온 것일까? 고민은 점점 커져만 갔는데, 내 주위 사람들 중 아무도 내 고민을 알아주지 않았다. 고민은 고통으로 변했다. 주위의 모든 것들이 내 가슴을 칼로 찌르는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삶의 의욕을 잃어버렸고, 나중에는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내 꿈이 무엇이었는지 조차 잊어버렸다. 내 곁에 함께하는 것은 오직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과, 목표 상실에서 오는 허무감과, 주위 사람들과의 비교에서 오는 열등감 뿐이었다.

 

정말 한바탕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이 책을 서점에서 보게 되었다. ‘울고 싶어도 내 인생이니까.' 제목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그 제목이 당시 내 마음과 비슷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살고 싶었다. 하지만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바라고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마치 빠져나갈 수 없는 어두운 방 속에 갇혀 버린 것 같은 답답한 느낌이었다. 울 수도, 절망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이 세상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오래전에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바랐던 것은, 단지 중학교 시절처럼, 순수하게 꿈만 쫓으며 살아가는 열정적인 삶을 되찾는 것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인생에 관해서 써 내는 감성적인 글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글들은, 한 순간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는 있겠지만 인생의 교훈으로 자리잡아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는 없다. 그래서, 책을 골랐지만 책의 내용에 큰 기대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책의 첫 장을 읽고 나서는, 솔직히 조금 별로라는 인상을 받았다. 작가는 긍정적인 사고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긍정적인 사고는 당신의 성공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긍정적인 사고가 마냥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빛은 분명히 어둠을 이긴다. 하지만 빛 속에서만 살아가는 사람은 영원히 어둠의 깊이를 알 수 없다. 그래서 긍정적인 사람은 꿈속에서만 존재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으로 남기 십상이다. 내가 너무 비관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작자의 손을 떠난 책은 독자의 것이고, 독자는 자유롭게 책을 읽고 비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세 번째 장에서 작가는,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많은 사람들이 노래, 글, 그림 등의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 사랑을 노래하고 예찬하지만, 우리는 사람들이 심심할 때마다 가사의 주제로 삼는 일회적이고 짧은, 인스턴트적인 사랑에 익숙해져 버렸다. 작가는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라는 역설적인 비유를 통해서 성현들이 말씀하셨던 순수한 사랑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사랑을 되돌려 달라고 치열하게 기도하던 청년의 모습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 생생하다. 그 청년의 모습을 보면서 깨달았다. 비록 사랑하기 때문에 사람은 상처받고 괴로워하지만, 아직 이 세상에 사랑이 남아있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따지고 보면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은 누군가의 뜨거운 열정과 사랑의 결과물이 아니던가. 사랑은,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인생에서 꼭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내가 기대했던 꿈과 미래에 관한 이야기는 네 번째 장에 등장했다. 이 책에서는 꿈을 ‘인생의 동반자’라고 표현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나를 떠나도, 내 꿈만은 항상 나와 함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꿈은 아무에게나 찾아오지 않는다. 꿈은 자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만 찾아온다. 네 번째 장을 읽으면서, 순수하게 꿈만 바라보던 중학교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비록 돌이켜 보면 힘들고 괴로웠던 일 뿐이었지만, 그래도 꿈을 바라보면서 살 수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행복했었다. 작가의 말대로라면, 그건 내가 꿈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꿈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책을 덮었다. 이 책이 결과적으로 내 인생에 무슨 교훈을 주었는지는 아직 뚜렷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건 오랜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결과적으로 내 인생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도록 했다. 사랑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나는, 어쩌다가 꿈을 잃어버리게 되었을까? 처음부터 내가 이곳에 발을 디뎠을 때 원했던 것은 정말로 이런 삶이었을까? 어차피 인생을 살아야 한다면, 조금 더 나은 삶, 즐겁고 열정적인 삶을 사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 물음들보다 더 앞서는 질문이 하나 있다. 작가가 내게 던진 질문이다. 다시 나에게 묻는다. ‘나는 꿈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꿈의 문제는 내 주위 환경이 원인이 아니었다. 문제는 바로 나에게 있었다. 내가 꿈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꿈이 나에게서 떠나 버린 것이었다.

 

이제는 다시 꿈을 꾸어야 겠다. 꿈을 꾸는 길은 험하고 어려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내 꿈을 알아주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끊임없이 내 꿈을 쫓아갈 것이다. 꿈꾸면 이루어진다고, 그리고 꿈을 꾸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나를 위한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글을 마치려니 노래 가사가 하나 떠오른다. 인순이의 ‘거위의 꿈’이다. 글을 격정적으로 마칠 의도는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의 내 심정을 가장 잘 대변하는 노래인 것 같아 가사의 일부분을 실으며 이 글을 마친다.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난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순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날을 함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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