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16005

말은 노래가 되고 시가 되고 눈부신 청춘이 된다. (두근두근 내 인생을 읽고) 

 

박민경

 

비는 비, 낮은 낮, 여름은 여름, 구름은 구름, 아이는 아이. 살면서 많은 말을 배우게 된다. 처음 접하게 된 그 낱말들을 신기하게도 자연스럽게 터득해 나가기도 하고 누군가로부터 배우기도 하며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어느새 익숙하게 내 안에 배어 있기도 한다. 성장해 나가면서 불과 몇 개의 낱말들로 시작된 말들이 하나의 말이 되고 완결된 문장이 되고 더 나아가 누군가를 위한 아름다운 한편의 시가 되기도 하고 노래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몇 개의 낱말로 시작된 말이 나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진한 울림으로 전해지기까지 몸도 마음도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우리는 아마도 청춘이라고 부르는 것이리라. 이 소설은 17살에 너무 일찍 부모가 되어 ‘청춘’을 흘려보낸 젊은 부모와, 17살 ‘청춘’ 임이 분명하지만 부모보다 먼저 늙어가는 ‘조로증’에 걸린 자식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품은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미처 깨닫지 못한 작은 행복이 사실은 얼마나 가치 있고 더없이 의미 있는가를 일깨워준다. 늘 반복되는 일상이 무료하고 하찮게 여겨지는 사람들 속에서, 인생을 무의미하게 여기고 금방 포기해 버리는 사람들 속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바로 살아 있다는 것, 아프지 않다는 것, 해맑게 웃을 수 있다는 것, 즐겁게 대화할 수 있다는 것, 별 건 아닌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나 소중한 일상임을 느끼게 해 주기도 한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줄곧 두 가지의 ‘말’이 떠올랐다. ‘늙음’과 ‘청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아름이는 분명 ‘청춘’이지만 이미 ‘늙음’ 안에 있고 ‘청춘’을 즐기기보다는 ‘늙음’을 먼저 알아버렸고 ‘청춘’과 동시에 ‘늙음’을 먼저 경험하고 깨달아 버린 아이다. 그러나 아름이는 ‘청춘’을 만끽하기도 전에 머리카락이 자꾸 빠지고 눈까지 보이지 않는 상황임에도 ‘늙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의연함을 보일 정도로 생각이 깊고 내면의 성숙함이 엿보이기까지 한다. 눈부시게 찬란한 청춘은 인생에 딱 한 번뿐이다. 그 청춘이 지나고 나면 늙음을 경험하게 되고 죽음까지도 생각해 보게 된다. 인생에서 ‘청춘’을 건너뛰고 늙음 안에서 죽음의 문턱에까지 와 있게 된 아름이지만 자신처럼 머리카락이 빠지고 아픈 ‘서하’라는 동갑내기 여자 아이의 편지를 받게 되면서부터 야릇한 감정에 빠지게 된다. 어쩌면 그런 감정은 그 나이 또래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사춘기’일 테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마냥 설레고 풋풋한 감정만이 아니라 그 감정 안에서 느끼게 되는 동질감과 안타까움, 애틋함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으리라. 서하의 편지에 뛸 듯이 기뻐하기도 하고 어떻게 답장을 쓸까 고민하기도 하며 또 답장이 늦을 때는 혼자 토라져서 분노를 느끼기도 하는 아름이를 보면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겪게 되는 사춘기와 그 시기의 서투름과 혼란 역시 꽤 설레는 일이었음에도 청춘, 그 안에서 한없이 방황하던 내 모습도 떠올라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어느 날, 아름이는 서하에게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 ‘너는 언제 살고 싶니?’ 그러고 보면 산다는 것은, 밥을 먹고 옷을 입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하게만 여겨지는 것들이지만 아름이의 대답이 걸작이다. 재미있는 오락 프로그램에서 좋아하는 연예인이 재치 있는 에드리비를 던질 때, 동네 구멍 가게의 무뚝뚝한 주인아저씨가 드라마를 보다 우는 것을 볼 때, 여러 가지 색깔이 뒤섞인 저녁 구름을 볼 때, 버스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여자애들을 볼 때, 머리맡에서 아버지가 발톱 깎는 소리, 한밤중 윗집 사람이 물 내리는 소리... 그 모든 것들에서 살고 싶다고, 정말 살고 싶다고 말한다.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소소한 행복은 주변에서 들리고, 느끼고, 깨닫고, 보게 되는 아주 작은 것들 때문일 것이다.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통해 즐거움을 맛보고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 어떤 청춘보다도 더 빛나는 모습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아름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마지막 사랑이었던 ‘서하’가 사실은 열일곱 살 소녀가 아니라 서른여섯 살의 남자이며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 지망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아름이의 마지막 ‘청춘’은 그렇게 지나간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가슴이 참 먹먹해짐을 느꼈다. 17살의 나이에 죽음을 앞둔 아름이가 불쌍해서도, 아름이를 보낼 수밖에 없는 부모의 애잔한 마음이 느껴져서도 아니었다. 다만 찬란하게 빛나던 내 청춘의 조각들이 기억 속에서 아스라이 떠올라서였다. 청춘은 늘 아름답지만 그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어쩐지 가슴이 한없이 먹먹해지고 후회와 아쉬움만이 남기 마련이다. 이 작품을 통해 결국 현재에 감사해야 한다거나 주어진 삶에 충실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 것도 같다. 하지만 처음 태어나서 말을 배우고 그 말을 아름다운 시와 노래로 전하게 되면서 성장해 가는 동안 그 찬란하고도 눈부신 ‘청춘’이라는 이름은 온전한 모습으로 내 마음 한 켠에도 남아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눈물겹게, 때로는 아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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