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영광독서 감상문

영광도서 0 6881

 

겨울로 가는 아이들의 따뜻한 이야기-<연탄길4>을 읽고

  부산시 남구 용호1동 윤미영

 

  

 

2004년 10월 5일 화요일 - 새로운 계절 속에서 불씨 하나 피우며 

‘따뜻한 차 한 잔 할까!’ 사람들은 새로운 계절이 와 바람이라도 불어 나뭇잎이 지면 어떤 방법으로든 정신적 사치를 꿈꾼다. 특히 이 가을에는 나 역시도. 모두를 빠져나가 버린 집 한모퉁이에 햇살 한 줄기 들어와 앉을 때 포트에서는 잘 익은 물소리가 보글보글, 찻잔에 파르라니 초록물빛이 돈다, 따뜻하다, 어깨를 스치는 바람에 창문을 닫는다. 여름내내 온 집의 창이란 창은 다 밖으로 열어젖혔더니 이제 10월의 문턱에서 마음까지 한기가 차곡히 켜를 부풀린다. 가슴이 알싸하다. 뭔가 따뜻한 것이 없을까? 

 

생각끝에 여름내내 한번도 기웃거리지 않았던 책꽂이 가까이 다가선다. 이것저것 엷은 먼지 바람 일으키다가 손길이 머문 책은 <연탄길4>이다. 연탄길의 표지에는 ‘가난하지만 행복한 우리 이웃들이 전해 주는 가슴 찡한 선물’이라는 구절이 찻물만큼이나 고요하게 메아리쳐 온다. 처절한 가난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아이들과 주변인들의 이야기라니 잠시 정신적 허영을 채우려 애쓰던 나에게 일침을 주는 듯하다. 

 

그래도 난 내 바짝 마른 울타리 가에 연탄 불씨 하나 피우며 첫 장을 넘긴다. 가을, 이 계절에 만난 <연탄길>에서 작가 이철환 님은 이 책을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들의 이야기와 친구, 그리고 이웃의 실제 이야기를 11년간 묶었다고 하는데.... 순간 나도 아이들을 매일 만나 글쓰기, 책읽기 등 여러 가지를 강요하고 있지만 정작 그 아이들의 마음이 묻어나는 이야기 한번 제대로 가슴에 담아둘 여유가 없었던 것을 새삼 반성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작가의 말을 꼭 기억하려고 애를 썼다. “이 책은 한번에 읽기 보단 조금씩 조금씩 읽어주기를 바란다” 던.

10월6일 수요일 - <연탄길> 그림속 그림읽기1.  

오늘은 <연탄길> 그림감상을 했다. 눈망울 초롱한 아이처럼 그림을 감상하듯 책장을 넘기니 인물들의 얼굴표정은 정말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장진일 님 그가 이야기 전체의 느낌과 메시지를 하나의 그림으로 담아내는데 탁월하다는 평을 미리 책머리에서 읽은 탓일까. 그림속 그림이야기에는 빼곡히 지면에 박힌 활자들보다 더 많은 이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인물들의 또렷한 검은 눈동자 속에는 삶의 애잔함과 따뜻함, 가슴 벅참, 떨림, 쓸쓸함 등 갖가지가 녹아있다. 

 

학교 다닐 적 그림을 가장 못그렸고 미술시간이 정말 없어지기를 바랬던 나로서는 여간 부럽지가 않았다. <아버지의 일기> 끝자락에는 뒷짐을 지고 걸어가는 아버지의 시름이 깊다. 루게릭병과 7년간 투병하는 아내를 간병하며 간암 말기를 맞은 아버지가 쓴 일기를 부둥켜안고 숨죽여 울던 기완의 얼굴도 숨어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소녀, 소년 가장이 얼마나 많은가, 그 중 또 한명이 될 기완을 생각하니 가슴이 짠하다. 

 

요즘 부모의 뜻하지 않은 이혼과 재혼으로 그 속의 아이들이 겪는 슬픔과 사랑을 그린 <고기잡이 가마우지>의 그림이 눈에 띈다. 새엄마에게 호되게 매를 맞은 날에도 혼자서 해벌쭉 울다 웃던 성국이의 쓸쓸한 눈망울을 가만히 감싸던 성국 할아버지는 근심어린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 있다. 내가 일주일 마다 만나는 민석이처럼 다른 아이들과 쉽사리 어울리지 못해 늘 혼자 노는 아이 덕배의 이야기 <바보 덕배와 나무다리>, 은실이만 보면 수줍어 고개숙인 덕배와 은실의 다정한 모습의 그림이다. 덕배가 매일 아이들에게 ‘바보’라고 놀림 당하고 괴롭힘 당할 때 마다 언제나 수호천사처럼 나타나 자기편이 되어주던 은실이의 따뜻한 손이 덕배의 어깨위에서 웃고 있다. 

 

민석이에게도 은실이 같은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나도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캐럴이 흘러나오는 하얗게 눈쌓인 길이 보인다. 그 길을 뽀드락 뽀드락 발자국 소리 내며 걸어가는 재혁의 뒷모습에서 “타인에게 베푸는 친절은 비록 그것이 짧은 한마디일지라도 그 메아리는 이 세상 끝까지 무한히 퍼져 나간다”는 가르침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따뜻한 겨울풍경>, 점점 추워지는 계절에 나는 무엇을 베풀까 숙제 하나 던져 주었다. 

 

그때였다. 바깥에서 갑자기 아이 울음소리가 정적을 깬다. “아빠, 그거 사 줘 응 사 줘 으앙....” 베란다로 나가보니 앞집 다섯 살 남자아이 ‘준이’의 목소리다. 시장통에서 파는 곰인형을 사달라고 떼를 쓰는 모양이었다. 얼마전 실직하고 교통사고까지 당해 양쪽에 목발을 짚고 선 준이의 아빠, 때이른 당뇨와 싸우는 준이의 엄마가 아이의 마음하나 달랠 방법을 찾지 못해 애쓰고 있었다. 그때 집 안에서 준이의 할머니가 나와 냉큼 준이를 안고 들어가 버린다. 

 

평소 손주를 그렇게 예뻐하시던 할머니는 집안에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가난이 주는 댓가가 손주에게 돌아감이 안타까왔으리라. 그런 준이의 마음 닮은 <지붕위의 하얀 곰> 전신주가 장승처럼 서 있는 지붕 한켠에 작은 곰인형이 널려 있다. 손녀에게 변변한 인형 하나 못 사주는 할머니는 길에서 주운 곰인형을 몇 번이고 씻고 또 씻어 말려 두었다. 비록 색은 바랬지만 그것이라도 행복해 하는 하영이의 얼굴위로 준이의 우는 모습이 겹쳐진다.

10월7일 목요일 - <연탄길> 그림속 그림 읽기2.

출근길 아침, 오랜만에 버스를 탔다. 마음이 여유로왔다. 겨우 자리를 잡아 며칠째 책장을 넘기던 <연탄길>에서 <참치가 살아가는 힘>를 읽었다. 어부의 속셈이긴 했지만 “참치는 상어에게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해서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여 살아남은 참치 본능의 생명력, 때론 상어의 이빨이 삶에 의욕을 자극한다”는 메시지가 입안을 하루종일 간질거렸다. 

 

누구에게나 상어의 이빨같이 자신을 거세게 몰아세우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끝없이 자신을 옥죄이거나 푸념 한번 늘어 놓지 못하게 되는 현실에 나도 가끔 신물이 난다. 그럴때 난 어김없이 두통이 몰려오고 충혈되어 핏발이 선 두 눈을 엘리베이터 거울속에서 만난다. 섬짓하다. ‘이겨내야지, 살아야지’ 절박함속에서 자신을 곧추세울 뿐이다. 

 

언젠가 TV에서 여자 연예인이 했던 말 중에 주변사람들이 ‘생활력이 무척 강하다’라는 말을 자주 해 준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삶인데... 라며 말꼬리를 흐렸더랬다. 그러고 보면 삶이란, 매일의 조각들을 잘 맞추어 가는 ‘퍼즐 맞추기 게임’같다. 각기 다른 조각천을 아름답게 맞춰 한 폭을 완성해 내는 ‘퀼트’같다. 희노애락 순간의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는 시간과 속도와의 거대한 ‘게임’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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