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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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진, 명성황후와 마주 앉다 - "리진"을 읽고

부산시 사하구 괴정4동 박연주

 

 

 

"웬일이래. 너 팩션은 안 본다며......."

"그냥, 봐야할 것 같아서........" 

 

친구의 이야기를 귓가로 들으면서 리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도 지극히 형식적이었고 지극히 의무적이었다.

 

나는 역사를 전공했고 그동안 사극이나 역사소설을 보는 것을 너무도 꺼려하였다. 그것은 소설의 구성이 역사적 사실과 일치되지 않는 부분이 많고 역사적 흐름을 방해한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극이나 역사소설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늘 등한시되는 존재였다. 수많은 역사소설과 사극의 열풍 속에서 그런 나는 친구들에게 늘 괴짜취급을 받기가 일수였다. 이런 내가 리진에게 선뜻 손을 내민 것은 순전히 내 학문적 결핍 때문이었다.

 

역사공부를 무척이나 하고 싶어서 간 대학에서 배운 학문은 항상 나의 기대와는 괴리가 있었다. 그것은 나를 너무도 힘들게 하였다. 그렇게 보내던 날들 그 가운데서 나는 페미니즘과 조우하였고 자연히 역사에 대한 내 호기심은 여성사로 그 방향을 선회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모든 방황과 나의 모든 고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여성사를 공부하다보면 가장 자주 부딪히게 되는 벽이 바로 사료의 부족이라는 커다란 현실의 벽이다. 그네들의 삶은 많게는 한 페이지가량 적게는 단 한 줄로 쓰여 있기가 부지기수이고 그때마다 그네들의 삶, 그 대부분을 상상력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것은 힘들고 어렵다는 사실을 떠나 상상력만 가지고는 역사라 칭할 수 없기에 마음이 많이 아픈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소설의 상상력이 역사 속의 한 인물을 어떻게 생생히 살려낼 수 있는가?라는 호기심과 약간은 삐딱한 시선으로 그녀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그러나 우습게도 나의 삐딱함과 단순한 호기심은 그녀의 여정을 따라가는 동안 혼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내 눈이 그녀의 여정을 따라가는 동안 나는 그녀와 함께 울었고, 그녀와 함께 비통해 했으며, 그녀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연민과 애정을 느꼈다. 콜랭의 연약함과 무모함에 아파했고 홍종우의 끝 모를 집착에 쓰라려했으며 강연의 한없는 사랑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그녀의 여정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명성황후의 죽음과 쇠잔하게 무너져 내리는 조선의 모습. 그리고 불어사전을 뜯어 먹으며 죽은 리진의 죽음을 마지막으로 여정은 끝이났다.

 

이 여정의 몰에서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쇠잔하게 바스러지는 조선의 멸망 앞에서 느끼는 아픔, 혹은 강연과 홍종우, 그리고 콜랭이 보여주는 사랑의 다양한 모습들, 아니면 한 인물을 멋지게 생생히 살려낸 작가의 뛰어난 작품성과 위대함. 아니었다. 그것들 중에서 내가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이 책은 멋지게 잘 쓰인 글이었다. 신경숙님의 문체와 문장의 흐름은 숨이 턱하고 막힐 정도로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들었고 스러져가는 조선의 모습은 내가 손만 대며 꼭 스르르 무너질 모래성처럼 손에 잡히는 듯했다. 또한 강연과 홍종우, 콜랭이 보여주는 사랑과 집착, 소유의 모습의 현대의 사랑에 대해 혹은 사랑의 세 형태에 대해 이야기해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것들이 내 안에 각인되지 못한 것은 이 여정의 끝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 때문이었다. 나에게는 그녀들이 무엇보다 깊이 각인되어 버린 것이다.

 

여정의 끝에서 내가 얻은 것은 그래 단지 두 여인이었다. 나는 단지 리진과 명성황후라는 두 여인과 마주 앉았을 뿐이다. 두 여인은 많은 부분이 나와 비슷하였다. 아니 이 땅의 많은 여성들과 그녀들이 비슷하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리진이 보여주는 주변적 존재감과 소외감은 아주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닌 꼬리표와 같은 것이었다. 학창시절 나는 내가 참 벌을 닮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항상 같은 자리를 붕붕 맴도는 벌.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고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벌말이다.

 

학창시절의 나는 조금 특이한 아이였다. 지독한 염세주의에 빠져있었고 아주 오랜 기간을 사람을 혐오하고 사람과 지내기를 꺼려하였다. 그 점들 때문에 나는 종종 리진이 파리에서 까만 머리에 드레스를 입은 궁중무회로 구경거리가 된 것처럼 사람들의 호기심과 흥미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러한 시선보다 더 싫었던 것이 바로 내 자신이 주변인임을 인식하던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주변인임을 스스로 인식하는 순간의 쓰라림은 그 무엇보다도 크다. 아마 리진이 파리의 새벽거리를 헤매고 다닌 것도 단순한 향수병이 아니라 그러한 쓰라림의 표출이었을 것이다. 리진은 그러한 쓰라림 속에서 조선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이미 그녀는 그 곳에서도 주변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에 대한 표시였을까? 아니면 자신에게 내린 스스로의 벌이였을까? 그녀는 조선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드레스를 벗지 못한다. 그 드레스가 몸에 맞지 않아 흘러내리는데도 말이다. 나는 그녀의 그러한 심정을 너무나도 잘 이해한다.

 

그것은 나였으므로.......... 주변인이 되어 아파하고 스스로 벌을 내리고 또 그것으로 인해 아파하고 결국에는 스스로가 스스로를 얽매이고 상처받게 만드는 것, 그것은 그래, 나였다.

 

아주 오랫동안 나는 나만이 주변인으로 사는 것이라 생각한 날들이 있었다. 그러나 여성들만의 모임에서 나는 여성은 누구나 다 가끔 주변인으로서의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직장을 다니는 여성들은 남성사회에서 늘 자신이 주변인임을 느끼고 가정주부로서, 어머니로서 실고 있는 여성들은 가정에서 자신이 주변인임을 끊임없이 느낀다고 하였다. 그래 그것은 비단 나와 리진 만의 자화상은 아닌 것이다. 주변인은 어쩌면 늘 주류에서 밀려 나있던 여성의 자화상은 아닐까?

 

커다란 배를 깎아 숟가락으로 단물이 뚝뚝 떨어지는 배를 퍼내 입에 넣어주던 명성황후는 마치 내 어머니의 모습 같기도 했지만 나나 다른 여성들의 모습 같기도 하였다. 궁궐 담을 넘어 훨훨 날아 넓은 세계를 보고자 했던 그녀의 이상 그 이상과 여인의 삶으로서의 현살 그리고 국모로서의 현실 속에서 그녀는 늘 갈등하고 아파해야했다. 누구보다 총명하고 누구보다 아름다운 그녀였기에 이 내적갈등이 더 아팠던 것은 아닐까? 리진을 궁 밖으로 내치는 것부터 리진을 파리로 보내는 일까지 그리고 궁궐 한 구석에서 그렇게 죽을 때 까지 명성황후는 끊임없이 고뇌하고 갈등하여야했다. 물론 왕비라는 위치였기에 그녀의 갈등은 세간 사람들과의 갈등과는 달라 보이나 한 꺼풀 벗기고 나면 여전히 이상과 현실 속의 관계에서 갈등하는 그녀를 볼 수 있다. 이 역시 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성의 모습인 것이다.

 

단지 학문적 도의나 호기심으로 혹은 약간은 삐딱하게 그저 그렇겠지 라는 조금은 거만한 생각으로 시작되었던 나의 여정은 결국 시대를 초월해 같은 것을 느끼고 같은 것에 아파하고 죄책감으로 죽어간 한 여인과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뇌하다 죽임을 당한 한 여인을 만나는 것으로, 그녀들과 마주앉아 그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끝이 나버렸다. 그리고 그녀들과의 만남은 다시 한 번 나를 돌아보게 하였고 여성성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다.

 

책을 읽는 기쁨에는 정보를 얻고 지식을 넓히는 것 간접경험을 해보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고 두 여인과 소통할 수 있었고 나아가 모든 여성과 소통하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었다. 이제 책 읽는 즐거움 중 소통의 즐거움도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그러한 소통의 즐거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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