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6734

 

달팽이는 슬퍼도 집을 내려놓지 않는다 - "아빠는 꽃보다 아름답다"을 읽고

 서울시 양천구 목1동 이화

 

 

 

01. 고백 “마흔 아홉의 소년이 살아요.”

 “배 곪지 마라” 

삼년 째 마흔 아홉인 우리 아빠는 오늘도 여지없이 까칠한 목소리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곤드레만드레 혀가 꼬여도 절대로 세 번 이상 생각하지 않고서는 말하지 않는다는 아빠의 인사이기에, 나는 배를 곪으면 금방이라도 죽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철석같이 믿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객지 생활 만 삼년 째 접어드는 이 상황에서 가끔은 ‘용돈 없지? 아빠가 내일 아침 입금 시키마’ 내지는, ‘우리 딸 아빠가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알지?’ 정도의 멘트는 날려주는 로맨스는 갖춰도 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내 말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말 말고, 하루 정도는 특별해지는 것이 서로의 지루한 기억을 자극시키는 기회 정도로 잡을 수 있는 시기가 왔다, 이 말이다. 낯선 서울 생활이 아직도 삐걱거리는 터라 누군가가 기댈 어깨만 내어줘도 그 사람을 사랑할 정도로 마음이 허했고, 그 허한 마음을 쿡 한번 찔러 줄 배짱이 아빠에게는 없다는 것이 내심 섭섭했으니까. 

 

그리하여 밥보다 사랑이 고팠던 나는, 영화나 드라마의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도 늘 기분 좋은 해피엔딩의 러브스토리에 감동했고, 첫 장의 다섯 줄 이내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는 책을 베스트셀러쯤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간접 경험이야말로 고픈 마음을 채울 최후의 선택이자 최소한의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책 중에 원미네 이야기가 눈에 띈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아빠는 꽃보다 아름답다’에서 느껴지는 따뜻함과 나를 잡아당긴 ‘아빠’라는 이름의 아늑함이 시기적으로나 마음 적으로나 꼭 알맞은 선택이 된 것이다.

 

하지만, 고백하건데 처음 이 책을 집어 드는 순간에는, 신파조의 상황 연출과 억지스러운 코맹맹이 문체가 가득이겠거니 싶어, 그래, 외로운 내가 제대로 울어주마 하는 약간의 자만심이 있기도 했다. 드라마 작가가 꿈인 나로서는 이미 수많은 눈물의 장면들에 깔려 죽을 지경이었으니까. 하지만 몇 페이지 넘겼을 때, 제대로 운 것은 보기 좋게도 내 자만심이었다. 원미네 이야기는 굳이 눈물을 준비하지 않아도, 입속에만 꽉 잠가놨던 아빠라는 그 서글픈 말을 밤새 중얼거리게 만들기 충분했던 것이다.

 

원미네 이야기의 주인공은 모두 넷, 이제 겨우 일기장에 ~했다, 보다는 ~하고 싶다, 식의 문장이 제법 많아질 꿈 많은 열일곱의 원미와, 루게릭병과 사투하는 원미의 아빠, 하루에도 수천 번 가슴이 철렁할 일이 많지만 늘 웃는 원미 엄마와, 공부보단 스타크래프트가 더 좋을 철부지 원미의 남동생 민철이 바로 그들이다. 집안의 대장인 아빠가 아프다는 것 빼고는 평범한 가족과는 별반 다를 게 없는 전형적인 구성원이었다. 하지만 아프고, 슬퍼서 펑펑 흘리는 드라마 속 주인공의 눈물보다, 아픈 걸 숨기고 참으며 간신히 미소 짓는 주인공의 모습이 더 슬픈 것처럼, 그들의 빈곤 속 미소의 풍요는 그 슬프다던 웬만한 영화에도 끄덕없던 날 크리넥스 한 통을 부여잡게 만들었다. 읽는 내내 아빠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얽히고설켜 몇 번이고 눈물샘이 눈 밖으로 튀어나올 만큼 펑펑 울었다. 이 책은 끊임없이 아빠의 기억을 들춰내는 엄청난 마력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하여 알 수 없는 그 치열한 감정 속에서 나는 조금 전 ‘배 곪지 말라’는 아빠를 떠올릴 수 있었다. 오십의 문턱이 마치 아저씨와 할아버지의 경계선이라도 되는 양 삼년 째 마흔 아홉이라 주장하는, 그래서 흰 머리카락 하나에도 씩씩대는 철없는 모습의 아빠. ‘나는 적어도 돈을 위해 사람을 살리진 않아’ 라는 칠십 년대 공익광고 수준의 철학으로, 주위 사람들로부터 동양 최초의 교황님이 될 사람이라는 뜨거운 호응을 한 몸에 받는 아빠. 집에 도둑이 들어 엄마가 가장 아끼던 십년지기 카메라를 훔쳐갔을 때도, 허허. 사람이 안 다쳤음 그만이지, 하고 누워 쿨쿨 잠을 쏟아냈던 아빠의 천진무구함이 타닥, 타닥, 내 머리 위를 차례로 스쳐 지나갔다. 늘 미소와 사랑으로 일관하는 원미의 아빠 모습과는 사뭇 다른데도 난 왜 ‘아빠’라는 그 이름만으로 세상 모든 아빠들을 엮어냈던 것일까. 마흔 아홉 쯤 되는 세상의 모든 가장들에게 ‘당신들도 아직은 소년이군요.’ 내지는 ‘당신들의 사소함도 딸의 기억에는 특별함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이제 알아주세요.’ 정도의 주장이라도 펼치고 싶었던 것일까. 어쨌던 중요한 사실은 원미의 아빠나 우리 아빠나, 그 밖의 모든 아빠들의 그 까칠한 ‘아빠’라는 호칭만으로도 딸의 가슴에 먹먹한 그리움으로 밀려온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 책을 읽는 철부지 스물 셋의 ‘나’에게는 말이다.

 

 

02. 추억 “사랑에도 등수가 있나요?” 

원미네 가족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아까도 말했듯이 아픈 것 빼고는 평범해 보이는 원미네 가족 이야기가 뭐 그리 특별할까 싶었다. 누구나 사연은 있기 마련이라는 나의 개똥철학이 그 생각에 기꺼이 일조를 하고 나선 까닭이다. 하지만 원미네 가족은 ‘사연’으로 다르지 않았다. 원미네 가족은 ‘마음’으로 달랐다. 서로를 꼭 끌어안은, 그래서 그 어떤 누가 보아도 사랑한다면 저 정도는 되어야 되지 않을까 싶을 만큼의 ‘마음’이 꽃보다 아름다운 가족이었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크게 얻어간 부분도 이 점이었으며, 내가 마흔 아홉 쯤 되었을 때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원미네 가족만큼만 살다 가야겠다, 하는 생각을 간절하게 만든 부분이기도 했다. ‘마음’은 ‘마음’을 진정으로 울릴 수 있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루게릭병을 앓는 원미 아빠는 이제 입 밖으로 말을 할 수가 없는 상황에 이르렀음에도, 원미와 민철이 병명을 알고 놀랄 것을 막기 위해 애써 건강한 척, 아프지 않는 미소로 일관했던 아빠였다. 엄마를 통해 아빠가 오년 밖에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들은 원미를 꼭 끌어안고 결혼식 때 함께 입장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아빠였다. 그런 아빠의 마음은 열일곱 번째 결혼기념일을 위해 원미를 시켜 부탁한 열일곱 송이의 장미꽃을 엄마에게 전달하는 순간, 가장 빛을 발했다. 그 열일곱 송이의 장미꽃을 부여잡고 눈물을 펑펑 쏟아냈던 원미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 순간의 침묵은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아름답다는 말을 모아 놓은 것의 딱 열일곱 배 만큼이나 뜨겁고 강렬한 것이었다.

 

나는 그 순간 ‘이번 당신 파마 이쁘네.’ 라는 아빠의 고백에 열일곱 소녀마냥 붉게 달았던 엄마의 얼굴과, 뒤돌아 글썽이던 두 눈이 생각나 수건에 얼굴을 박고 한참동안 울었다. 가족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가 박힌 값비싼 결혼반지보다도, 열일곱 송이 장미로 모든 마음을 전해 줄 수 있는 강렬한 눈물 같은 것임이 틀림없다.

 

가족의 사랑은 주고받고가 아니라, 그냥 침묵 속의 나눔 같은 것이다. 아프지마, 내가 대신 아플께 하고 스스럼없이 말해 줄 나눔. 아픈 남편을 위해 24시간 대기조를 설 수 있는 원미 엄마의 배려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그 흔한 연애에는 누가 누구를 더 사랑하고 있다는 정도쯤의 등수를 매길 수 있지만, 가족의 사랑에는 등수가 없다. 모두가 일등의 마음으로 일등의 사랑으로 서로를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마치 원미 엄마가 아빠를 지켜주고, 원미가 민철이와 엄마를 지켜주고, 아빠가 가족을 지키듯이 말이다. 그리하여 ‘민철아, 우리에게는 다음이 안 올지도 몰라’ 라는 원미의 그 슬픈 고백에도, 원미네 가족은 서로 일등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슬프지 않은 것이다. 가족 안에서만큼은 추억도, 사랑도, 모두 함께 한 시간 자체가 가장 큰 힘이자 서로의 연결고리가 되는 것이 분명하다.

 

 

03. 슬픔 “달팽이가 지나간 길은 축축해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아빠도 눈물이란 게 있기는 한 걸까. 동생에게 텔레비전 리모컨을 빼앗긴 억울함에 쏟는 눈물이나, 아침 일찍 식빵 한 조각을 꾸역꾸역 집어넣으며 찌익 하고 내뿜는 하품의 눈물 같은 거 말고 진짜 슬퍼서 우는 ‘눈물’말이다. 나는 아빠는 절대로 울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애시 당초 그런 것조차도 염두 해 본 적이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아빠’라는 사람들은, 눈물 같은 건 흘릴 줄 모르는 플라스틱 마루인형 쯤으로 생각했나보다. 하지만 그 날의 아빠는 분명 울고 있었다. 깜깜한 소파 위에서 코를 찡하게 훌쩍거리며 말이다. 그 날은 이래 없던 늦가을 호우주의보 경보가 내려진 날이기도 했으며, 아빠의 가장 친한 친구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날이기도 했다. 술에 진득하게 취해 돌아온 아빠는 소파에 누워 한참동안 노래를 부르더니 이내 잠잠한 빗소리 속에서 주름진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연신 눈물을 닦고 있었다. 방문을 빠끔히 열고 바라본 아빠의 뒷모습이 내 기억에 판박이처럼 박힌 그 날, 방구석에 웅크려 한참을 훌쩍였던 나는, 아빠도 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많은 눈물을 참아내기 위해 그리도 씩씩하게, 바보처럼 불평도 불만도 없이 늘 헤죽이던 아빠였구나 하는 것을 스물 셋의 문턱에서 느지막이 깨달았다. 아빠는 울 수 없는 게 아니라, 우는 것을 참고 있던 거였다.

 

원미 아빠가 원미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내 생각을 굳힐 수 있었다. 호흡 곤란이 오자 삶을 포기하고 싶었다던 원미 아빠는 얼마나 많이 울고 싶었을까. 단지 아빠 라는 이유로 투정도, 발악도 하지 못하는 마음은 얼마나 찢어졌을까를 생각하면 스물 셋 인생의 모든 고통을 통 틀어서 내민다 해도 부족할 것이 틀림없다. 아빠의 소변을 받게 하는 딸에게로의 부끄러움과 미안한 마음, 그리고 가족이 힘들까봐 삶을 포기할 뻔 했다는 원미아빠의 고백 속에 누구나 있으면서도 누구나 갖기는 힘든, ‘진짜 꽃’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원미 아빠의 마지막 두 장짜리 편지 속에서 나는 ‘아빠의 사랑’보다 더 진득한 ‘아빠의 눈물’을 보았다. 이 세상의 모든 아빠들이 그렇듯 육십 평생 가족이란 짐을 등에 맨 채 자갈밭도, 사막 위도, 심지어 파도 휘몰아치는 바다도 거뜬히 걷는 사람들이 바로 ‘아빠’란 말이다.

 

구부정히 앉아 딸 자취방의 컴퓨터 선을 연결하다 허리가 꺾여 119에 실려 갔던 아빠의 웅크린 허리를 본 적이 있었다. 채 펴지도 못한 채 바닥만 응시하며 느릿느릿 한 걸음을 내딛는 아빠의 등에는 큼지막한 집이 불쑥 솟아나와 있었다. 나와, 동생과, 엄마가 사는 그 집. 아빠 등보다는 딱 세 배 정도는 큰 둥그런 그 집이 분명 내 눈에 보였다. 아빠는 틀림없는 ‘달팽이’였다. 지나간 길마다 소리 없는 축축한 눈물을 흘리며 걷는 착한 달팽이....... 

 

아마도 루게릭병에 걸려 온 몸이 딱딱하게 굳어가면서도 원미 아빠는 등에 진 집 만은 절대로 내려놓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모든 아빠들의 ‘희생’이자, 어느 누구도 섣불리 흉내 낼 수 없는 ‘사랑’임이 틀림없다.

 

 

04. 희망 “우리 마음만은 아프지 말아요”

얼마 전 나는 지독한 첫사랑의 열병을 앓았다. 그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했고, 어리석게도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었다. 어쩌면 그건 사랑이 맞았을지도 모른다. 잠시나마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사랑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사람’이다. 사랑과 사람의 차이는 받침 하나 차이지만, 사랑은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것이고, 사람은 함께 다닥다닥 붙어 울타리가 되는 것이었다. 스물 셋, 너무 늦게 그것을 깨달았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소중한 것들. 아무리 화려하고, 값비싼 다음 생애를 내준다고 해도 바꾸고 싶지 않은 내 사람들. 원미의 말처럼 그냥 그 사람이 웃어도 내가 즐거울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가족이다. ‘아빠는 꽃보다 아름답다’를 읽으면서 나는 가족을 위해 우는 방법보다, 가족을 위해 웃는 방법을 더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과거를 추억으로 만들어주었고, 내가 좋아해도 되는 가족을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가족으로 만들어주었다. 서로를 ‘사랑’하는 것을 넘어서 서로를 진심으로 ‘내 사람’이라고 믿고 있는 원미네 가족, 그리고 몸이 아픈 것보다 마음이 더 아픈 원미 아빠의 진실한 마음이 내게는 단순한 감동 이상의 아주 강렬한 자극이었다. 사랑은 때로 없어도 되지만,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 그것이 가장 서럽고 외롭다는 것을, 포장되지 않은 순수의 열일곱 원미가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원미네 가족에게 있어서 어쩌면 ‘희망’이란 아주 작고 멀어서, 가끔은 잊혀지기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아빠가 아픈 것보다 내가 아픈 게 더 나을 것이라는 원미 엄마와 원미와 민철이의 마음속에서 이미 ‘희망’을 읽었다. 원미네 가족의 희망은 아주 작고, 멀어서 그만큼 소중하고 놓치기 싫은 것이었다. 나는 분명, 그들 마음에서 그것을 보았다.

 

아빠는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틀림없다. 그리고 어깨에, 등에, 허리에 큼지막한 집을 매고 걷는 달팽이 같은 아빠들은, 꽃보다 아름다운 것의 백배 천배 아름다운 것보다 적어도 제곱만큼은 더 아름다운 것도 틀림없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아빠들의 숨은 눈물이 고맙고, 이 세상의 모든 가족들의 마음에 뿌듯하다. 각박한 이 세상으로부터 하루에도 몇 번씩 무릎이 꺾이고, 믿음에 또 사랑에 강력한 뒤통수 한 방을 맞는다 해도, 가족이 있는 한 외로움보단 희망이, 눈물보단 웃음이 먼저 생겨날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가족에게 몸도, 마음도 아프지 않은 순간이 올 것을 믿는다. 원미네 가족에게도, 우리 가족에게도.......... 

그 순간만큼은 이 세상의 가족이란 이름의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덤벙덤벙 피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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