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6729

 

"미실"을 읽고

 부산시 강서구 대저1동 낙동중 박주영

 

 

 

미실 미실 미실

 두번째 만남은 달랐다. 처음 책장을 펼쳤을 때는 온갖 상념들이 머릿속을 헤맸지만, 두 번째에는 오히려 미실을 평가하는 말들이 머릿속 깊숙이 파고들어 나타나지 않았다. 읽을수록 환해지는 그래서 종내에는 책을 덮고서 멍한 눈으로 저 편을 바라보게 되는 미실은 그런 책이었다.

 

볼 때마다 다른 느낌과 감정을 주는, 국화같은 책. 그래서 두 번째로 책장을 넘길 때마다 미실, 억지로 그를 떠올리려 해도 자꾸 생각을 끄집에 올려도 오히려 내 머릿속을 하얗게 비어갔다. 그렇게 보면 볼수록 판단하기 어렵고, 책장을 넘길수록 어렵고 감당하기 힘든 존재로 나타나는 그를, 결국 나는 내 마음은 받아들이지 못했고, 오히려 더 하얗게 지워버리는 결과를 가져온거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오히려 생소한 그 방식이 더 내게 소중한 것으로 다가온 것 같다. 지금껏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그 모습을 그리고 떠올리며 읽어보지 않은 것이 없었기에, 미실은 더욱 당혹스럽고 의문스러운 책이었다.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비우는 것. 그것이 주인공을 가장 잘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는 나처럼 상상이나 억지로 라는 단어를 떠올려서는 안되는 것이다. 미실. 색공지신. 색사. 삼대의 아름다움. 묘한 매력을 가진 여인 경국지색의 미희, 그를 칭하는 말은 많다. 하지만, 그것들은 그를 '칭'하는 말일 뿐이다. 미실은 미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1.미실의 사랑

 나도 안다. 사랑이라는 건 내가 왈가왈부할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마디 하려고 한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케케묵은 옛날이야기도 아니다. 그저, 내가 글을 읽으면서 잠깐 느꼈던 것, 길을 걸으면서 문득 떠올랐던 것, 그 모든 것을 종합한 이야기다. 어쩌면 다른 누군가가 했던 이야기일 수도, 아니면 작가가 하고 싶었넌 말일수도 있다. 더 나쁘게 생각한다면, 이건 내 생각이 아닐 수도 있다. 마음 속에 잠겨 있던 다른 이의 부르짖음이 문득 적힌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고민하고 생각했던 것임은 분명하다. 실제로 지금의 내 내이가 그렇지 않은가

 

미실. 진정 그는 자신과 색을 통한 모든 나자들을 사랑했을까.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몸도 통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처럼, 그는 그들을 사랑했을까? 아니다. 그가 사랑한 건 그들이 아닌 그들의 모습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 자신들 먼저 사랑하지 않으면 남을 사랑할 수 없어서, 그래서 그는 남을 통해 자신을 사랑한 거다. 그것도 아니라면, 미실이 사랑한 건 어쩌면 그들의 상처, 그것이 비록 크던 작던 그 주인의 지위가 높건 낮건 미실은 그들의 상처에 끌린 걸지도 모른다. 그들의 고뇌와 번민을 감싸주고 해결해 줄 방도를 자신이 갖고 있음에, 동시에 그 방도로는 그들의 상처를 싸매줄 수 없음에 미실은 그들을 사랑하는 것 밖에 하지 못한 걸지도.... 

 

그들의 사랑은 진정 사랑일까? 살아가는 뿌리를 찾지 못하고 숨 쉬는 존재 이유를 찾지 못한 이들의 마지막 발악, 그리고 그것을 감싸는 슬픔을 일방적으로 사랑이라 이름 지은 것이 아닌가? 존재하는 이유, 그것은 살아있기 때문이다. 살아서도 사랑하고, 죽어서도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은 떨어져 있지 않다. 미실의 말을 빌리자면, 그저 저승에서 보낸 거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것이 죽음일 수도 있다. 

 

아니, 그것도 아니다. 죽음은 육신의 심장이 멈추고 혼이 정신을 잃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존재감을 상실당하는 것이 죽음일지도 모른다. 결국 어떠한 것이 죽음이든, 삶과 죽음이 떨어져 있지 않기에, 그들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고민하기에 앞서 죽음을 두려워했고 사랑을 아파했기 때문에 미실이 그들에게 준 것은 사랑이 아닌 관용과 위로, 이미 자신이 겪고 깨달은 것을 그들은 힘들게 찾아 헤매는 것을 미실이 연민과 안타까움, 그들의 슬픔을 통해 보고 가슴으로 품은 것이 아닌가, 그것을 사랑이라 칭한 것이 아닌가.

 

2. 운명을 따라, 어쩌면 거슬러서... 

어쩌면 그는 자신조차 사랑하지 못했더 걸지도. 끝끝내 운명을 용서할 수 없고 그 운명에 순응하는 자신 또한 용서할 수 없어서, 그 슬픔과 분노를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한 이들을 향해 내뱉은 것일지도....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무기는 그가 용서하지 못한 운명, 복수하기 위해, 자신에게 이런 운명을 지운 세상에 복수하기 위해 그는 운명에 순응했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갔다. 쉼 없이,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 하면서..... 

 

미실의 첫 이야기, 그녀가 삼킨 푸른 잎 섞인 물앵두는 그가 앞으로 걸어나가야 할 운명과도 같으 색사의 길을 뜻하는 게 아닐까. 억지로 집어 삼키고, 목마르지 않아도 손에 쥐어야 할 운명 색공지신. 반면, 그의 마지막 이야기, 생의 마지막을 눈앞에 두고 그가 발견한 어린 소녀의 앵두는..... 그래, 그것은 그가 삶을 내려놓을 만큼 만족스러움으로 다가왔던, 깨어졌으면서도 완전한 운명의 마지막 끝자락....

 

어차피 한번 왔단 가는 세상, 뜻하는 바대로 하지 못하는 무슨 낙이 있으리. 그런 면에서 미실은 숙명을 부러워 한 적이 있으리라. 그때 내가 저러했다면.....' 이미 그의 사랑이 죽었기에 그는 후회만 할 뿐.... 후회는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만 또한 과거를 더 비참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다함이 가야 정벌에 출정했을 때, 미실은 지소 태후의 부름을 거부할 용기가 없었다. 거부라, 그건 삼대의 죽음 아니, 멸족을 의미하는 말이기에..... 아니다. 죽음도 불사했다면, 사랑을 위해 죽음을 뛰어 넘었다면 이미 그는 미실이 아니다. 

 

미실이라면, 미실이라면 마땅히 운명에 순응했을 테니, 사랑조차 마음대로 이루지 못하는 색사의 길. 그 길을 밟으며 운명에 또다시 피눈물을 먹였으리라. 사다함 또한 다르지 않다. 이화랑처럼 한 번의 밀회라도 시도해보련만, 그의 성품과 환경과 운명이 그에게 그저 포기하고 바람에 시 한 편을 흘려보내라고 강요하므로, 사다함은 모든 걸 가슴속에 묻어버렸다. 물론 사다함은 이화랑이 아니기에 오히려 그렇게 미실을 놓아두고 그리워하는 것이 그에게 어울리는 사랑일 수도 있다.

 

사실 그에게는 사랑한 무관랑이 있었으니까.... 사랑만 받는 여인이 자신의 사랑을 잃어버리면, 그때서야 비로소 여인은 냉혹해진다. 이전에는 욕심내지 않았던 것에 눈을 뜨고, 도리어 모든 것을 놓아버릴 준비를 시작한다. 결국, 미실은 맡은 바 운명을 완수한다. 미실의 마지막 왕인 진평왕에게 그 색을 알려주고, 미실은 떠난다. 그가 욕심내던 음행, 권력, 온갖 부귀영화,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다. 애초에 그를 잡아 세울 것은 없다. 그를 사랑한 이도, 그가 사랑한 이도 없다. 미실의 처음이 그러했듯이, 마지막도 그러했다. 소리 없이, 흔적 없이 세상에 그 무엇 하나 남기지 않고,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듯이, 미실 또한 죽은 것이 아님에.... 단지 사라졌을 뿐이므로...

 

그래, 책 끄트머리에 남겨놓은 그 말처럼, 그저 흐르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그대로 몸을 맡기면서 미실은 마지막 몸부림마저 허용하지 앟았다. 물결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기고, 오히려 더 세차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물결을 거스르는 것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실은 신과 역사 중 가장 운명에 불순응한 요녀가 되어 버렸다. 

 

맺음말... 결국 미실일 뿐이다

 내가 아는 미실, 그것은 사람의 이름이 아니다. 온갖 영웅과 재사를 홀린 아름다움과 매력, 지혜를 갖춘 여걸을 뜻하는 게 아니다. 숲을 뛰어놀면서, 미실. 그는 하나의 존재로 자라났다. 왕을 모실 운명에 걸맞게, 또 그 운명을 제 뜻대로 부수고 휘두를 만큼 그는 사람이 아닌 존재로 일어났다.

 

미실. 그는 사람이 아니다. 과거에 그리고 현재에 존재하는 특별한 하나일뿐이다. 하지만 나는 미실을 평가할 수 없다. 그가 사람이 아니든, 특별하든, 그는 미실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미실의 외조모 옥진이 말했듯, 미실은 다른 누구도 아닌 미실인 것이다. 또한 나는 여전히 마음을 비우지 못한다. 길고 긴 글을 써내려가면서도, 끝까지 생각을 비우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안 미실을 그리 많지 않다. 길게 또 장황하게 미실을 설명했지만, 내가 한 말 중 미실을 가장 정확하게 묘사한 말은 하나도 없다. 모두가 미실을 설명하기에는 터무니없고 몽상적인, 단지 내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상념들 중 몇 가지일 뿐이다. 그것도 간신이 건져낸..... 내가 미실에 대해 하고 싶은 터무니 없는 마지막 말이 있다면 내가 책장을 넘기며 알아간 그는 크고, 아름다우며, 그러기에 더욱 슬픈 한 송이의 꽃이라는 것. 더 이상은 아는 것 없는 중학생 여자애이기에 나는 한 시대를 호령한 부드러운 여걸을 곱씹기에는 부족하고 때론 과분하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하나였다. 이 모든 터무니 없는 말들을 쏟아내며 하고 싶었던 말. 그건, 미실은 미실일 뿐, 함부로 평가하거나 치부하기에는 너무 크고 아름다운, 한편으로는 천한 여인이라는 것. 평가라는 단정이라는 그 자체가 미실에게는 무의미하다는 것. 그래서 지금 이 길고도 짧은 글에 마침표를 찍으며 마음 속 깊이 허무가 느껴지는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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