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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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는 영국의 오만, 셰익스피어 - "한 권으로 읽는 셰익스피어"을 읽고

 부산 해운대구 좌동 김대갑

 

 

 

고등학교 1학년 때, 나는 잠시 문예반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문예반에는 괴짜들이 참 많았다. 그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사람은 박씨 성을 자닌, 큼지막한 안경을 낀 선배였다. 그이 말 중에 아직까지도 내가 잊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

 

‘영국인들은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이야기 했다. 그러나 만일 우리나라가 영국처럼 강대국이었다면 우리는 송강 정철을 중국과도 바꾸지 않겠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참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 저런 말도 가능하겠구나 하는 감동이 천천히 밀려왔다. 지금 생각해봐도 당시 그 선배의 사고는 대단한 것이었다. 서구 중심적 획일적 사고를 벗어나자는 그 선배의 발언은 이후 두고두고 내 인생의 소중한 화두가 되었다. 

 

그 선배의 말에 의해서인지 나는 그 후 셰익스피어로 대표되는 서구 문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학이라는 제도 공간에 들어가서 다양한 책을 접하면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이었다.

 

한마디로 셰익스피어 희곡은 그 자체가 서구의 역사이자 문학의 정수였다. 소포클레스로 시작되는 서양 문학의 모든 것을 셰익스피어는 훌륭하게 통합하고 있었다. 그를 읽지 않고서는 결코 서구 문학을 논할 수 없었다. 인도라고 하는, 인류 문명의 소중한 보고를, 잠시 식민화하였다는 이유로 그리고 간단히 폄하하는 건방진 사고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지만, 셰익스피어는 영국인뿐만 아니라 서구인들의 자존심임에는 틀림없다.

 

흔히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으로는 4대 비극을 꼽는다. 햄릿과 오셀로, 리어왕 그리고 백베스가 바로 그것인데, 미하엘 쾰마이어라는 독일의 신화작가는 엉뚱하게도 가장 나중에 발표된 맥베스를 첫 번째 이야기로 등장시키는 소설집을 만들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발표된 햄릿을 마지막에 등장시켰다. 왜 쾰마이어는 이런 구성을 시도했을까? 또한 이들 비극사이에 ‘한 여름 밤의 꿈’이나 ‘뜻대로 하세요’, ‘끝이 좋으면 좋아’등의 희극을 삽입하였다.

 

왜 이랬을까? 나는 탁월한 신화작가인 그의 의도를 파악하느라 한참을 궁리해야 했다. 작품을 읽으면서 저자가 이런 구성을 시도한 이유를 정확히는 파악할 수 없었지만 그가 한 가지를 노렸다는 것은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그건 셰익스피어가 시도했던 자기완결성을 저자가 조금이라도 닮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맥베스는 타인에 의한 비극의 희생양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던컨 왕의 충실한 신하였던 맥베스는 사막에서 만난 세 명의 마녀가 던져 놓은 덫에 어이없게 걸려들고 만다. 그러나 햄릿은 자의에 의해 스스로 비극을 창조한 측면이 짙다. 클라우디우스가 형을 살해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가 햄릿의 친모와 오래전부터 연인 사이이며, 더 놀라운 것은 햄릿이 그들 사이의 자식이라는 것도 어찌 보면 햄릿이 만들어낸 허상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마지막 문장에서 분명히 말했다. 소문, 추측, 억측이 남았노라고, 또한 오늘날까지 아직도 그 끝을 모른다고 하였다.

 

맥베스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였다면, 햄릿은 결코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다. 불행하게 죽은 부왕의 복수를 위해 햄릿은 결코 죽을 수가 없었다. 결국 미하엘 쾰마이어가 노린 것은 맥베스로 대표되는 인간의 양심과 영혼의 절대적 붕괴를, 진실과 허위, 양심과 결단, 신념과 회의 등의 틈바구니에서 삶을 초극해보려는 햄릿의 모습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셰익스피어와 동시대 극작가였던 B.존슨은 셰익스피어를 ‘당대뿐 아니라 만세를 통해 통용되는 작가’라고 칭송하였다고 한다. 사실 셰익스피어만큼 칭송을 널리 받은 극작가도 드물다. 그는 총 37편의 희곡과 몇 권의시집, 그리고 소네트집을 남겼는데, 그가 절대적으로 숭앙 받은 계기는 19세기 초 낭만파 시인과 비평가들의 재평가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미하엘의 기지와 해학이 곳곳에 숨어 있는 것을 여러 차례 발견하였다. ‘뜻대로 하세요’에서 로잘린드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잘 사세요’라는 대사와 ‘한여름 밤의 꿈’에 나오는 요정 퍽의 싱그러운 장난질은 작가가 원작의 뜻을 충분히 살리면서 독자로 하여금 슬그머니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재치 만점의 장치들이었다. 그리고 액자연극의 틀을 지닌 작품들을 액자소설의 형식으로 교묘하게 바꿔치기한 형식물은 절묘한 느낌까지 주기도 했다. 

 

흔히 우리는 잘 알려진 작가나 작품들을 피상적으로만 알지 그 정확한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셰익스피어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워낙 잘 알려진 작가이기에 그의 작품들에 대해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제대로 탐독한 독자는 드물다. 이런 점에서 미하엘의 ‘한 권으로 읽는 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제대로 접하지 못한 독자들에게 새롭고 신선하면서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휴가지에서 사무실에서 짬을 내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재미있게 보되 ‘인도’라는 거대 문명을 일개 극작가와 바꾸지 않겠다는 영국인들의 오만과 편견, 몽매함은 언제나 비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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