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6728

 

자아찾기 - "사람풍경"을 읽고

 부산시 동구 초량2동 정해주

 

 

 

“브랜드 커피 한 잔이요.”

나는 오래되어 코팅이 벌어지는 메뉴판을 다시 겨드랑이에 끼고 계산서에는 능숙하게 ‘C'를 적는다. 그리고 살균기에서 빈 센트 반 고흐의 노란 해바라기가 그려진 빨간 잔을 꺼내어 미리 만들어 놓은 원두커피를 따른다. 하얀 김이 공중에서 파르르 떨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면 잔은 까만 커피로 알맞게 채워져 있다. 

 

바싹 마른 낙엽이 나뒹구는 부산역 광장의 트인 길을 따라 썩은 부두의 냄새가 이따금 쉘부르 카페에 스며든다. 카페에는 비발디의 사계 중 ‘가을’ 3악장이 흘러 나오고 있다. 항상 반복되는 음악인데 질리지 않는 것은 왜 일까.

 

그는 항상 A룸1번에 앉고 나는 항상 그를 관찰한다. 그는 키가 크고 차갑도록 하얀 피부를 가졌다. 그러나 풍부하고 차분한 음성으로 항상 블랙커피 한잔을 주문한다. 기호에 알맞게 먹도록 커피 잔 옆에 설탕 1봉을 추가로 얹는데 그는 설탕엔 손도 대지 않는다. 사실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아직 그것 뿐이다. 

 

커피를 테이블 위에 가만히 내려 놓으며 그에게 말을 걸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맞은편 사람들에게만 관심이 있는지 꾸욱 누르듯 광장을 응시했다. 혹은 바닥에 뒹굴고 있는 검은 잎사귀들의 운동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김형경 작가의 「사람풍경」을 읽고 나서 내가 일하는 커피숍의 손님들을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전에는 비록 벌판 빛을 따라 작은 눈동자가 뒤쫓다가 정신이 아득아득해지거나, 산등성이를 올라타는 갈기 세운 바람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산의 오래 참음을 가슴으로 느껴보곤 했었다. 때론 모네의 지베르니를 동경하고 모네의 하늘 앞에서 숨이 콱콱 막히기도 햇으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뿜어 나오는 빛들은 좀처럼 나에게 인식되지 않았다. 현실에서 조금은 도피된 곳에서 인식되는 풍경이야말로 생활 속에 잃어가는 힘을 재충전하고, 내 안의 나를 재정립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사회 속 ‘사람’들, 그리고 ‘공동체’ 왜 인간들은 관계하며 살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수많은 자문이 일었었다. 이기적이어서 홀로 고립되는 정도의 인간관계는 아니였고 평범한 생활 속에서 많은 사람들과 관계하는 나였음에도, 생활속에서 참된 나를 찾지 못할 것이라 여겼다. 이것이 바로 군중 속의 고독인가를 생각한 적이 많았고 나는 스스로 침전하는 앙금이 아닐가 생각했다. 혹은 내가 그레고르 잠자의 후예인 것처럼 생각도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조용히 홀로 방 안에서 바싹바싹 말라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나에게 「사람풍경」은 적잖은 충격을, 그리고 새로운 인식의 방법론을 가르쳐 주었다. 부산MBC의 소설을 소개하는 한 프로그램에서 작가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김형경 작가는 매우 차분했고 여성스러웠으며, 모든 것을 감싸줄 듯 포근한 엄마 느낌이었다. 그러나 책속에서 만난 작가는 나에게 무섭도록 냉철했고, 객관적이었으며 관계 속에서도 얼마든지 자유롭기를 요구했다. 그녀와 함께 떠나는 로마, 피렌체, 밀라노 등의 여행지에서 나는, 나 아닌 사람들을 만났고 그 사람들의 눈을 통하여 나를 보았다. 그리고 끝내는 나의 내면세계의 질서를 그들을 통해 다잡고 있었음을 발견했다.

 

내가 타인에게 대상으로 선택되는 것이 싫었다. 때문에 스스로에게 옹호적이고 방어적이던 나에게 작가는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라는 팻말을 걸어 주었다. 내가 가지는 분노의 이유, 우울한 날의 상태도, 나는 무엇을 두려워 하는지 세상을 얼마나 반으로 쪼개고 싶어 했는지, 등 돌리고 싶은 때가 왜 그렇게 많았었는지, 나는 무엇에 약하고강하기 위해 어떤 방법들을 고수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나에게 있을 남은 용기와 변화에 대해, 결론적으로 진정한 나 자신을 어떻게 발견할 것인지를 모두 배운 여행이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모두 나를 투명하고 있었고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남의 것이기도 했다. 나만의 세상이 아닌 세상 속에서, 나는 실체가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와 체계 속에서만 의미가 있는 사람이었다.

 

이제야 겨우 사람들을 바라보고, 그 사람들에게 진정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세상 속 사람풍경을 어떻게 완성할지 고민하며 배우는 중이다. 조금씩 덧칠을 하다보면 그 풍경은 내 남은 삶의 인상적인 장면들이 될 것이리라. 태양의 그림자 일지라도 노을의 시뻘건 뒷모습 갚은 사람풍경이 완성될 쯤에 나는, 가장 원시적이고 근원적인 순수한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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