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6738

 

"누가 뭐래도 우리는 민사고, 특목고 간다"을 읽고

 경남 진해시 도만동 천성빈

 

 

 

다름 달이면 첫 아이 돌이다. 몇 달 전만 해도 징징거리면서 보채기만 하던 녀석이 '아빠'하고 조그마한 입술에 힘주며 달려들 때면, 사는 기쁨이 이런 것이로구나 싶다. 그러나 이런 기쁨 뒤에는 고민의 싹 또한 도사리고 있으니, 바로 교육 문제다. 아직도 학생인 것만 같은 내 맘과 달리, 몇 년 후면 학부모라는 역할 또한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가 그렇지만, 교육 문제만큼 복잡한 것도 많지는 않은 것 같다. 교육 정책은 정권, 아니 교육부 장관이 교체될 때마다 바뀌어 왔다. 개정된 정책에 대해 겨우 의견이 수렴되나 보다 싶으면 도다시 개정안이 나온다. 도대체 교육 철학이 있는 나라인가 의심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아니, 사실 그게 문제다. 교육에 관련한 공통된 가치관의부재,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선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정책이 어떻게 바뀌든 어차피 실력대로 대학가게 마련이다. 그러니 실력을 키워라." 

일면 맞는 말이다. 실제로 수능 첫 세대면서, 십 몇 년 만에 부활된 본고사 또한 처음으로 치러내야만 했던 94학번의 나로서는 이 말이 진리였다. 열심히 공부했고, 그래서 다들 부러워하는, 세칭 명문대 의과대학을 들어갔다. 그러나 내 삶을 돌이켜 보면, 그것이 정답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내 아이에게 다시 적용할 수는 더더욱 없다. 무슨 말인가? 

 

중학교 시절 과학고 진학을 원했는데, 선생님과 부모님 모두 말리셨다. 이유는 단 하나, 의대 진학에 방해된다는 것이었다. 어린 맘에 꼭 가고 싶었지만, 결국 원서조차 내보지 못했다. 부모님의 꿈이 내 진로를 막았다.

 

고등학교에 가서 이과를 선택했는데, 그 이유는 이과가 '가치'를 다루는 문과와는 달리, '사실'을 다루는 학문 영역이라 생각해서였다. 당시 나는, 비록 그 실체를 잘 알진 못했으나 이 사회가 구조적으로 모순덩어리임을 감지했었다. 그러나 나 자신이 허약한 심성의 소유자라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가치를 다뤄야 하는 문과는 피하자는 것이었다. 구조적 모순의 세계 속에서 바른 가치를 위해 살 자신이 없어서 결정한 이과 선택은, 의대 진학을 원한 부모님의 소망과도 일치하였다. 한편, 물리학을 못 하는 이과학생이 지원할 수 있는 학과는 의학과 화학 계열뿐이었다. 1지망 의학과, 2지망 화학과를 지원했는데 1지망 합격했다. 결과적으로 부모님의 뜻이 이루어진 셈이었다.

 

부모님의 뜻이라는 큰 틀 안에서, 용기 없는 나의 심성과 물리학적 능력 부족이 혼합되어 선택하게 된 의학은, '가치 판단을 피하기 위한' 선택으로서는 크게 틀리지 않아 보였었다. 5년마다 지식이 2배가 된다는 의학 지식을 대학 6년 만에 따라잡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마치 파도 위의 파도처럼 쌓여만 가는 지식들을, 나느 다 습득해내야만 했다. 언젠가 만나게 될 환자들, 보지도 못한 그들의 '고귀한 생명'이라는 가치 - 이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확고부동한 가치여서, 옳고 그름이나 우선 순위 등을 판단할 필요가 없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 를 위해서 나는 좋든 싫든 젊음을 불살라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의사라는 자격을 취득하고, 임상에서 수많은 환자들을 진료하게 되면서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젊음을 바쳐 배운 의학적 지식들을 얼마나 선용할 수 있는가는 그 사회와 구성원들의 가치 체계가 어떠한지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가치 판단을 피해보고자 지식들 속에 파묻혀 지냈는데, 막상 그 지식들을 적용하려고 보니 가치 판단이 개입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순위가 문제였다. 아이러니였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 환자가 그리고 사회가 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돈, 명예, 생명? 스스로에게 솔직해져야만 했고, 또한 인간과 세상을 잘 알아야만 했다. 피해 다닌 가치관들의 분쟁 속으로 들어가 계속적으로 그 우선순위를 가려내야만 했다. 

 

물론 나도 내 아이가 명문대에 진학했으면 좋겠다. 그걸 부인하면 거짓말이리라. 그러나 그것은 내 마음의 반쪽이다. 왜냐면 우리 사회에서 명문대 학생은 '고교 졸업 시에, 측정 가능한 지식을 질서정연하게 많이 습득하여 대입시험을 잘 치른 학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대학의 네임 밸류가 그 학생들의 가치관을 보장하지 못함이 현실이다. 그러나 지식은, 그것을 소유한 사람의 가치관에 의해서만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저자들에게 일부 공감하면서도 그 철학에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자들의 열의는 정말 치하할 만하다. 모두가 반시반의하던 민족사관학교를 직접 방문, 그 건학 이념과 학풍을 직접 확인하고서 사람들에게 힘써 추천한 것이나, 또한 그런 열의로 많은 학생들을 민사고, 특목고에 합격시켜왔음은 그들의열정을 충분히 증명한다. 한번 인연 맺은 학생들과 - 주로 좋은 결과를 거둔 학생들과의 관계에 치우쳐있긴 하지만- 꾸준히 교류함은 그들의 인간미도 보여 준다. 그리고 부모교육의 원칙이나 민사고, 특목고의 입성 전략, 핵심 포인트, 과목별 학습 방향 잡기 등에 관한 설명은 그 분야의 베테랑답게 실질적이면서 탁월하다. 적어도 '지식' 습득이란 부분에서 나는 대체로 공감한다.

 

그러나 내가 완전히 동의할 수만은 없는 것이 이들의 철학이다. 저자들은 단순히 명문대 입학 문제를 떠나, 아이의 똑바른 성장과 더 큰 장재를 위해서라면 일반고에묶어 두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자신감이 그들에게서 배운 학생들이 최고의 명문대학에 합격했음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차치하겠다던 명문대 입학 문제를, 본질적으로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 

 

이 문제는 접어두자. 그럼 과연 민사고, 특목고는 학생들이 똑바른 성장과 더 큰 장래를 보장하는가? 그들의 대답은 '예스'다. 그 근거로 안정된 면학 분위기, 좋은 선생님, 우수한 학생들간의 자극 등을 지적한다. 어느 정도 동의한다. 내 주변의 특목고 출신들을 보아도 안정된 면학 분위기에서 좋은 선생님들 지도하에 - 사실 선생님들이 똑똑한 학생들 때문에 꽤나 고생하신다고 한다. - 서로 선의의 경쟁을 통해 '지식 습득의 방법론'을 잘 연마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지식 습득의 탁월함이 '똑바른' 성장, '더 큰' 장래의 기준점이란 말인가? 저자들에게 있어 우수한 학생들은, '지식 습득을 잘 하는' 학생이다. 그가 올바른 가치관을 가졌는지 여부는고려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나도 작금의 지식 교육 하향 평준화에는 분명 반대한다. 비록 내 아이가 능력이 떨어져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한다 해도, 우리 나라의 지식 교육은 질은 더욱 높아져야 한다. 자원이라고는 인구밖에 없는 나라에서 지금의 교육 정책은 문제가 많다. 그러나, 지식 습득의 탁월함이 인간의 우수함의 잣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각기 다른 재능을 가진 모든 학생들에게 지식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 예컨데 예술, 체육, 기능 등 - 그들만의 특기를 살릴 수 잇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다양화되고 있는 특별 전형은 좋은 제도라 생각한다.) 그렇게 다양한 재능을 가진 개인들이 서로 존중하며 공존하는 방법을 교육함으로써, 서로에게 감사할 줄 아는 문화 시민들을 키워내야 한다.

 

예전의 명문고 출신들이 이 사회의 지도층 인사를 이루고 있듯, 민사고, 특목고 출신들 또한 이 나라를 이끌 주요 그룹 중의 하나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나머지 반쪽이다. 역사를 면면히 살펴보면, 문제는 지식인층의 부족이 아니었다. 지식인들의 바른 가치관 부재가 진짜 문제였던 것, 이는 당장 우리 사회의 현실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 아닌가. 

 

그런 면에서 내겐 오히려 경남 거창의 한 사립 고등학교가 더 맘에 와 닿는다.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황무지를 택하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을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등을 직업 선택의 원칙을 가르치는 학교, 지식은 물론이요, 가치를 교육하는 데 힘쓰는 학교. 이런 학교에 이 사회의 진짜 미래가 걸려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교육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가치관의 문제다. 한편 삶을 최선을 다해 살기 원하는 이의 가치관은 더 나은 방향으로 계속 수정, 보와되기 마련이다. 내가 교육 문제에 대해 아직, 아니 어쩌면 평생 해답을 못 가질 지도 모름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그 대답이 미래로 열려 있는 이상으로 현재를 더욱 가치 있게 살아가기로 다짐함은, 나의 준비 여부에 관계없이 부모라는 교육 주체로서의 내 역할을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대답이 미래로 열려 있는 이상으로 현재를 더욱 가치 있게 살아가기로 다짐함은, 나의 준비 여부에 관계없이 부모라는 교육 주체로서의 내 역할은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민사고, 특목고 졸업생들이 이 사회를 진정 아름답게 이끄는 훌륭한 리더들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그리하여 이 나라, 이 세계를 진정 사랑으로 가득 채우는 사람들이 되길 원한다. 이제 나는 그들의 미래를 지켜볼 것이다. 그들이 받은 엘리트 교육의 진정한 가치는, 명문대 재학생으로서의 자신감에 차 있는 현재의 모습이 아닌, 몇 십 년 뒤 그들이 세상에 보여줄 삶이 증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년의 나이에 갖게 될 나의 가치관, 그리고 관심 갖고 지켜보고 있는 학교의 졸업생들이 실제로 사회에 보여줄 모습들, 이 두 잣대가 모두 탁월하기를, 서로 잘 맞아떨어져서 내 아이의 학교 선택의 폭이 넓어지길 간절이 소원해본다. 그러면서도 아내의 다음과 같은 말이 기우이기를 바라는게 부모 된 자의 솔직한 심정인가 보다.

 

"그 학교들, 아무나 가는 줄 알아요? 일단 우리 애 실력이 되면, 그때 가서 얘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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