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6951

 

언제나 심청이고 싶습니다 - "아빠는 꽃보다 아름답다"를 읽고 

부산시 남구 용호동 국제고 선정연

 

 

 

아빠는 새천년이 시작하는 해, 2000년에 실직하셨다. 다른 가족들이 밀레니엄이니, 새해가 밝았느니 하며 기뻐하고 있을 즈음 우리 가족은 침울하게 그저 시간만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어둡고 막막한 시간들. 신문에서만 보아왔던 업자란 단어가 이제 우리 아빠를 지칭하다니, 끔찍할 따름이었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새해를 맞이했다. 아빠가 실직하신 후 엄마와 아빠는 많이 싸우셨다. 조그만 일에도 서로 얼굴을 붉히셨으며 대화하시는 시간도 줄었다. 따스한 햇살이 느껴지는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나들이 가던 가족행사조차 사라졌다.

 

쓸쓸한 정적만이 감도는 주말. 집에는 나뿐이었다. 나 혼자서 텅 빈 거실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야했다. 소파에 기대서 생각했다. 아빠가 나쁘다고. 아빠가 어째서 실직하게 되셨는지 모르겠다. 아빠도 견디다 못해 직장에서 나오셨겠지. 그렇지만 꼭 아빠가 노력하지 않아서 우리 가족이 고생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감에 따라 아빠를 미워하는 마음만 커져가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아빠와 대화하지 않았다. 식탁에 마주앉아 식사할 때도, 거실에 앉아서 텔레비젼을 볼 때도, 아빠와 대화하지 않았다. 사실, 대화할 주제도 없었지만, 아빠와 마주치는 시간도 없었다. 아침에는 학교가고, 방과후엔 학원가고, 저녁에는 컴퓨터 한다. 이런 일상속에서 아빠 얼굴 보기는 참 힘들었다.

 

아빠는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변해가고 있는 듯 했다. 말수도 적어지시고, 얼굴도 홀쭉해지시고, 항상 어두워 보이신다. 내가 아빠만 보면 얼굴을 찌푸려서인가. 이렇듯 아빠에게 불신의 감정만 나날이 쌓아가던 중 나는 `원미`를 만났다. 

 

원미는 나와 같은 17살의 고등학생이었다. 나처럼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고, 가끔은 노래방도 가는 평범한 학생이다. 우리는 서로 비슷한 점이 많지만, 단 한 가지 두드러지게 다른 점이 있다. 원미는 아빠를 무척이나 사랑한다는 것. 원미는 아빠의 병명을 초등학교 6학년 때 알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아빠가 루게릭병에 걸렸다는 사실은 매우 버거웠을 텐데, 그리고 하늘을 정말 많이 원망하게 했을 텐데. 적어도 나는 그랬을 거다. 그렇게 많고 많은 사람들중에서 왜 하필 우리 아빠가 그 병에 걸렸냐며 울부짖었을 거다.

 

그런데 원미는 오히려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 아빠가 아프신 것은 싫지만, 언제나 옆에 계시니까 어쩌면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누굴 사랑한다는 건 그런 거 같다. 그 사람이 웃을 때 내가 즐겁다는 것, 행복하다는 것. 아빠가 아픈 7년 동안 나는 그걸 알게 되었다. 내가 정말 아빠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 아빠는 세상에서 단 한 분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빠는 세상에서 단 한분뿐이라는 것. 머리로만 알고 있던 사실을 나는 이제야 가슴으로 깨닫게 되었다.

 "아빠는 사랑해야 할 대상이지. 돈벌어오는 존재가 아니다."

나는 아빠를 용돈 주는 기계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던것은 아닐까. 아빠는 항상 강한 모습만 보여줘야 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아빠를 그 편견에 맞추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원미의 이야기가 슬펐기 보다는 아빠한테 미안해서, 너무 미안해서 울었다. 

 

나는 얼마나 불효녀였나. 아빠한테 매번 도움만 받고 손 내밀 생각만 했지 정작 아빠가 힘들 때, 아빠가 바닥에 떨어지셨을 때 나는 아빠를 모른 척 했다. 나는 얼마나 불효녀였나. 아빠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사회에서 외면당하고 가족에게 외면당하고...... 아빠는 홀로 외로우셨을테다. 

 

나에게는 아빠가 안 계신 친구가 있다. 친구의 아버지는 주무시고 계시던 중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말하는 친구의 표정이 너무나 담담했기에, 나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은가 보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사생대회날, 장산의 따뜻한 햇살을 느끼며 친구들과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울긋불긋한 단풍과 대청공원의 활기. 그리고 엄마, 아빠와 같이 산책 나온 아이의 천진난만한 얼굴. 그런데 갑자기 친구가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하는 것이다. 모두들 당황해하며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친구가 말하길, 엄마와 아빠 손잡고 있는 아이의 미소를 견디지 못하겠다는 거였다. 아빠가 있어서 좋겠다고.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나도 저렇게 웃을 수 있었을 텐데!" 아빠가 없다고 한번도 슬픈 내색을 비친 적 없는 친구가 울면서 소리치고 있었다.

 

순간 숨이 콱 막히는 느낌이란- 그 친구는 우리들의 아빠가 살아았단 것만으로도 그 아이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아빠없는 아이들도 있다. 많다. 그 친구들에 비하면 원미, 니는 행복에 겨운 거다. 그런데 너는 겨우 아빠가 아프다고 투덜대나? 자기가 갖고 있지 않은 것에만 연연하는 건 바보다." 원미 엄마께서 원미를 꾸짖으시면서 하신 말씀이다. 이번엔 나에게 말씀하신다.

 

"아빠없는 친구들도 많다. 그 친구들에 비하면 니는 행복에 겨운 거다. 아빠가 건강하시고, 항상 곁에 있으시잖아. 그거면 충분하지 않나?" 내가 태어나면서 가장 기뻐하신 분이 우리 아빠이고, 엄마한테 혼나서 울고 있을 때 몰래 과자를 주시면서 달래신 분도 우리 아빠이다. 아빠는 언제나 내편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빠는 내 손을 한번도 놓으신 적이 없다.

 

아빠의 크고 따뜻한 손. 오늘밤엔 내가 아빠 손을 꼭 잡아 드려야 겠다. 아무 말 없이 웃으면서 손을 잡아드려야지. 그리고는 주말에 놀러갈 계획을 세울 거다. 등산을 갈까, 놀이공원에 갈까. 이것저것 즐겁게 목적지를 정하고 나면 마무리는 "아빠, 제가 아빠 사랑하는 것 알죠?" 애교섞인 웃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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