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7685

 

이 아름다운 소풍이 끝나는 날 -  "인생수업"을 읽고

부산시 사하구 당리동 윤정은

 

  

 

인생은 무엇일까? 나에게 왜 이런 환경과 삶이 주어졌는가? 삶의 질곡을 겪어 나갈수록 한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갈수록 이런 질문들이 내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시인 천상병은 이 세상을 ‘아름다운 소풍’이라고 했고, 오쇼 라즈니쉬는 ‘삶은 가장 큰 웃음이다’라고 했으며, 크리스마스 미사 중 신부님은 ‘삶은 잠시 쉬어가는 아름다운 휴식처’라고 했다. 내가 이렇게 아둥 바둥 힘들게 살아가는 인생이 이렇듯 ‘소풍이고 웃음이고 휴식처’란 말인가? 그렇다면 나는 왜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할까?

 

그러한 생각들로 가득 차 있을 무렵 나의 눈길을 끈 책이 <인생수업>이란 책자였다. 책의저자 옐리자베스 퀴블로스의 ‘생의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 그것을 지금 하라’ 라는 외침에 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호스피스 운동을 하는 정신의학자로 그녀의 제자 데이비드 케슬러와 함께 죽음 직전의 수백 명올 인터뷰해 ‘인생에서 꼭 배워야 할 것들’을 받아 적어 <인생수업>을 편찬했다하니, 저술 과정부터 흥미진진했다. 

 

또한 내가 좋아하는 류시화 시인의 번역이기에 서슴없이 <인생수업>을 선택할 수 있었다.‘소금이 바다의 눈물’이라고 한 그의 시 구철처럼 그의 글에는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는 철학이 담겨 있었다. 그의 여행기를 읽으며 인도 버스안의 여유로움과 넉넉함을 체험했으며,<인디언의 영혼>이라는 책에서는 인디언의 맑은 영혼과 위대한 철학에 서구편향적인 내 편견이 깨어지기도 했다. <달라이라마의 행복론>을 읽으며, 잔잔한 가슴의 평화를 느끼기도 했다. 그가 번역한 여러 책들은 그만의 일관된 철학이 함께 녹아들어 있어 후회 없는 선택이라고 언제나 느끼게 만들었다. 

 

책을 읽는 순간순간 나의 경험들이 되살아났다. 그 중 내가 봉사자로 지원한 병원에서 자원봉사자률 위한 3개월 여간의 봉사자 교육의 마무리 수업이 있던 날이 떠오른다. 봉사자들 대다수는 중년의 아주머니가 대부분이라 강의가 시작되기 전부터 가정 일에서부터 사소한 오늘 아침 반찬 이야기까지 조잘 재잘, 술렁술렁 너무 활기찼다. 그래서 수녀님이 ‘정숙’이라는 큰 글귀를 여기 저기 붙이고 미리 봉사자 아주머니들의 기선을 제압했다. 모두들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긴장된 얼굴로 엄숙히 신부님을 맞았다. 그런데 신부님은 들어 오시자마자 강론은 안 하시고 교실 안을 홉사 ‘노래 교실’로 만들어 갔다.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메아리 소리 해맑은 오솔길을 따라, 산새들 노래 즐거운 용달 샘터에~ 비둘기처럼 다정한~.” 

봉사자들이 의아해하며 같이 불러가는 ‘즉흥 노래 수업’은 박자나 기교를 강조하는 여느 노래수업이 아니었다. 가장 행복하게 가장 즐겁게 부르면 충분했다. 미소와 함께 서서히 가슴이 뛰기 시작하고 신명이 불어나는 순간이었다. 신부님이 “진짜 행복한 마음으로, 모든 근심 떨쳐버리고 노래에 빠지세요.” 라고 말했고, 우리는 같은 노래를 몇 번이고 불렀다. 

 

그러면서 노래에 서서히 동화되어 갔고, 눈에서 입으로 미소가 행복이 번져 감을 서로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가장 어색하게 느껴지는 ‘정숙’이라는 무거운 글귀들을 우리는 과감히 떼어버리고, 행복한 신명에 몸을 들썩였다. 박장대소에 웃음바다의 수업이었다. 그러면서 인생은 이렇게 즐거운 것이며 행복한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언제나 참고 정숙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행복한 순간들을 온전히 누리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분출하고 표현해야 할 존재임을 노래로 알려주는 나에겐 소중한 ‘인생수업’이었다. 

 

위대한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자신이 창조한 아름다운 조각품들이 이미 다듬지 않은 돌 안에 있었다.’고 했다. 그가 한 일은 이미 존재한 아름다운 초각들이 드러나게 여분의 돌들을 깨고 다듬었을 뿐이라고 한다. <인생수업>을 읽으며, 저자가 소개한 미켈란젤로의 명언은 나에게 참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말은 흡사 우리 자신도 충분히 행복한 존재로 살 수 있도록 모든 조건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행복한 존재로 우리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한 조각가의 노력처럼 우리의 몫인지도 모른다. 

 

올 초부터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 운동장을 돌기로 결심했었다. 처음에는 한 달에 2키로 감량이라는 목표를 두고 정해진 목표치의 운동 시간을 정해가며 힘차게 두 팔을 흔들며 앞만 보고 걷기만 했다. 하지만 <인생 수업>을 얽으며, 나의 아침운동은 서서히 달라졌다. 해가 막 뜨기 전에 울긋불긋 번지는 아침 하늘의 붉은 기운과 아름다운 구름의 빗살을 보기 시작했다. 교정 옆을 지날 때면 이슬 묻은 풀냄새를 타고 오는 “쓰르르~ 쓰르르~ 섹섹~” 풀벌레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반신이 마비되어 손을 굽히고 다리를 절뚝이며 걸어가시는 파란 운동복의 아저씨의 걸음이 매일 조금씩 빨라져 감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의 눈동자가 붉게 퍼지는 아침 하늘을 느끼고, 나의 두 귀가 풀벌레 소리에 감응하고 내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그리고 온 몸에 잔잔한 행복이 물결쳤다. 그냥 내 모습 그대로 행복을 느끼면 그만이었다. 내가 더 잘난 사람이 될 필요도 없고, 2키로 감량되지 않는다고 해서 불행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인생수업>을 읽으며 돈으로 보상할 수 없는 소중한 ‘인생수 업’을 받았다. 이젠 내가 조금씩 달라질 것 같다. 

 

나 자신의 좁은 관념으로 세상을 보지 말 고, 나를 잉태한 우주의 큰 그림과 뜻을 이젠 이해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않을 것이며, 완전한 존재가 되도록 애쓰지 않을 것이다. 다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하며, 온전히 오늘의 행복을 즐길 것이다. 받아들이고 용서하고 화해할 것이다. 나의 온 귀와 눈을 행복을 찾는데 쓸 것이며, 나에게 불현듯 찾아오는 시련과 고통도 이 우주가 준 ‘인생수업’이라고 생각하고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언젠가 내 인생의 소풍이 끝나도록 허락되었을 때, “ 정말 수없이 밤하늘을 지켜보고, 별들을 아름다움을 원 없이 보았지. 바다를 실컷 보았고, 매 순간 가슴 뛰는 일을 하며 살았어. 참 나의 인생은 즐거운 소풍이었어.” 라고 고백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수 많은 나비가 날아갔던 엘리자베스의 장례식 때처럼, 이 소풍이 끝날 무렵 나 또한 한 마리의 무지한 애벌레에서 번데기의 아픔을 혜치고 인생을 제대로 배운 성숙한 나비로 다시 태어나 더 넓은 세계로 새로운 여행을 시작할 수‘ 있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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