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8895

 

화합의 시대 - "상실의 시대"를 읽고

부산 영도구 신선1가 데레사여고 박지나

 

  

 

조금 이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참 독특한 것들을 좋아한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넓은 들판이 아닌 빽빽히 들어선 도심의 빌딩숲, 빵을 입에 한가득 넣고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꽉 막힘을 느끼는 것, 단 한자리도 비어있지 않은 도서관에서의 연필 사각거리는 소리, 어둡고 우울한 영화를 보고 일주일정도 그때의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읽고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나를 서서히 적시는 슬픔 등이 있다. 혹자는 나를‘정신병자’라 하겠지만 이런 것들이 나를 고통스러운 고교생활로부터 잠시 해방시켜주는 유일한 낙이다.

 

이 책을 학교도서관에서 처음 접하게 되었을 때,‘아, 두껍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느 고등학생이라도 그러했으리라. 그래서 나는 한 달이라는 긴 시간동안 곱씹어 읽으며 "상실의시대" 를 나와 동화시켜 나갔다.

 

제목 아래에 (원제: NORWAY NO MORI) 라는 글귀가 있었고, 그 다음장에 비틀즈의 노래인‘노르웨이 숲’이라는 곡의 가사가 있었다. 나는 얼른 컴퓨터를 이용해 그 곡을 들었고, 글 중간중간 쓸쓸한 기타소리를 배경으로 글을 읽어 내려갔다.

 

이 책은 나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흔들어 놓는 책이었다. 내가 늘 바라던 나의 마음을 꽉차게 하는 그런 애틋한 이야기 이었기 때문이다. 와타나베라는 한 젊은이가 사랑을 하고, 또 그것을 잃는 등의 일상생활이 아주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언젠가 내가 엘리자베스 굿지의‘작은 백마’를 읽고, ‘이 책은 온통 음식묘사 뿐이군.’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뭔가 말할 수 없는 뜨거운 답답함이 내 심장을 요동시켰다. 

 

와타나베가 17살이 되던 해에 유일한 친구인 기즈키가 자살을 한다. 영문없는 죽음이었기에 그는 놀라기도 하며, 그를 통해 죽음의 의미를 새로이 느낀다. 또한 기즈키와 함께 늘 셋이서 데이트를 하던 그의 연인인 나오코와 우연히 지하철에서 만나게 되고, 그녀와의 데이트를 시작한다.

 

그 무렵 그는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룸메이트인 돌격대의 이야기로 늘 나오코에게 웃음을 주었다. 또한 나가사와 선배와의 교류로 그의 게임과 같은 삶의 방식을 알게되고, 그 덕분에 여러 여자와 잠자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렇게 지내던 대학생활에서 나오코의 20번째 생일이 찾아온다. 그는 나오코의 집에서 축하를 해주고 술을 마시고 이야기하던 중 나오코의 울음으로 그녀와 자게된다. 그 뒤 나오코는 어디론가 떠나고 그는 여러번의 편지로 그의 마음을 전한다.

 

그러던 중 같은 대학의 미도리라는 생기넘치는 여자를 만나 교류하게 되고, 나오코가 요양원에 있음을 알게된다. 그렇게 요양원을 두 번 정도 찾아가 나오코와 레이코를 만나게 된다. 나오코와 미도리 사이에서 갈등하던 중 나오코의 죽음을 맞고 미도리의 아버지 또한 돌아가신다. 그리고 레이코가 7년 만에 요양원에서 나와 와타나베의 집을 방문함으로써 둘은 잠자리를 하게 되고, 마지막에 미도리를 부르는 장면에서‘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는 의문을 남기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 마음에 쏙 드는 이야기였다. 과거회상식의 첫머리부터, 답답함으로 나를 엄습해오는 중간의 사랑이야기들, 그리고 여운을 주는 결말까지, 비록 두껍고 글자 투성이의 책이었지만 단 한 장도 빼놓아서는 안 될 소중한 것들이었다. 마치 여고생들에게 매점이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 것처럼......

 

이 책에는 와타나베와 뭇 여자들의 성애장면이 짙게 묘사되어 있었다. 아직 이런 경험을 하기에 어린 탓일까? 얼굴이 벌게지는 친구들과는 달리 무덤덤하게 글을 읽었다. 친구들이 어떻게 그런 내용을 표정이 변화없이 읽을 수 있냐는 친구들의 물음에 나는 "예전부터 많이 봐왔으니까 이런 것 쯤이야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구." 라고 대답하였다. 하지만 나는 내 스스로에게 ‘작가가 이런 이렇게 생생하게, 그것도 자주 삽입시킨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100% 연애소설이라는 작가의 말에서도 그 뜻을 찾을 수 있겠지만 내 나름대로 해석을 해 보았다.‘이 책의 주인공인 와타나베를 작가 자신이라고 본다면 젊은날의 욕망과 그로 인한 상실감을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함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그가 이 책을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 의미 또한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욕망과 사랑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로써는 와타나베의 심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외부세상과 단절하고 자폐증을 앓는 나오코처럼 살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붙잡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생기발랄한 미도리보다는 오히려 죽었다는 느낌의 나오코가 되고 싶었던 내 마음에 어느새 그 여자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나오코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녀는 사랑을 했고, 그로 인해 상실을 맛보았다. 와타나베 또한 그런 상실을 겪었고, 오히려 나오코보다 더 큰 아픔을 알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나약했던 나오코는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다. 조그마한 상처로 마치 커다란 상처를 입은 척하며 나를 스스로의 마음속에 꼭꼭 감추고 생활하는 나와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 모두 나오코와 같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있을지도 모른다. 도시화와 산업화의 영향으로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던 우리의 삶은 갈수록 삭막해져만 갔고, 가족으로부터의 상실, 연인으로부터의 상실, 사회로부터의 상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들 중 일부는 와타나베처럼 견디어 내기도 하고, 나오코처럼 패배를 맛보기도 하며, 레이코처럼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서기도 한다. 또는 미도리처럼 그런 것에 슬픔을 삮이며 적응하여 살기도 하고, 나가사와선배처럼 세상을 자신의 머릿속에 넣고 게임하듯 주무르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각각 우리 사회에 다 존재하고 있는 인간 유형이기도 하며, 우리 중 대부분이 이에 속하기도 한다.

 

견디어 내는 유형의 와타나베가 적응하여 사는 미도리를 찾음으로써 결말이 난다. 이것은 결국 우리 인간이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며, 서로 기대어 살아가야 한다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 공중전화 박스에서 혼자 있던 와타나베가 결코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듯이...

 

이 글을 마무리 짓고 있는 현재, 나는 다시 한 번 노르웨이의 숲을 배경으로 내용을 되뇌이어 보고 있다. 이런 종류의 책을 한 번 읽으면 일주일 이상 감상에 젖어 지내는 나에게 이 책은 나에게  마치 나오코처럼‘나를 잊지 말아줘.’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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