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5871

 


<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 하다>를 읽고                                                                                                 서울시 동작구 사당동 김세진  
그렇습니다. 고백건대 이번 여행은 자유의지에서 시작된 여행은 아니랍니다. 여행 결정은 제가 한 거지만 ‘신나게 여행하세요. 얼마나 신나게 여행했는지 잘 말씀해주시는 분께는 선물을 드립니다.’라는 초대장의 문구를 보지 못했더라면 이 여행은 나중에 할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허허. 굳이 말할 필요까지야 없다고요? 아니요. 꼭 말해야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은 이번 여행이 제게 어떤 의미였는지 정확하게 아실 수 있다 이 말입니다. 뭐 그래야 더 재미있지 않나요? 아, 이쯤에서 밝혀야 할 게 하나 있네요. 제가 말하는 여행은 ‘마음의 여행’을 가리킵니다. 엥? ‘마음의 여행’이 뭐냐고요? 뭐 꼭 몸으로 하는 여행만 여행인가요? 

내 방식대로 진종일 대부분의 시간 / 혼자서 여행을 했다 
꿈속에서도 여행을 했고 / 서산 바라보면서도 여행을 했고 
나무의 가지치기를 하면서도, / 서억서억 톱이 움직이며 
나무의 살갗이 찢기는 것을, / 그럴 때도 여행을 했고 
밭을 맬 때도 / 설거지를 할 때도 여행을 했다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 혹은 배를 타고 
그런 여행을 아니었지만 /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 
그런 여행은 아니었지만 / 보다 은밀하고 내면으로 내면으로 
촘촘하고 섬세했으며 / 다양하고 풍성했다                                   

- 여행 中
 
이제 좀 아시겠어요? 이 여행의 지도를 만드신 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 세상 모든 게 여행이 될 수 있다 이 말입니다. 마음으로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걸 여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다녀온 독서 여행도 ‘마음의 여행’ 아니겠습니까? 이제부터 굳이 촌스럽게 독서 여행이라는 말을 붙일 필요는 없겠지요? 저는 말입니다. 평소에 여행을 꽤 좋아하고 그만큼  많이 한답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사람들이 좋다더라 하는 여행지도 많이 가본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실은 말이죠. ‘어디어디가 좋다더라.’라는 사람들의 말이 여행선택의 기준은 아닙니다. 실제로 가보면 별로인 곳도 많았거든요. 사람들의 호들갑이 항상 의미가 있는 건 아니잖아요? 뭐, 지금까지의 여행 경험에 비추어 괜찮을 것 같다 싶으면 여행하는 거죠. 국내 국외 할 것 없이, 또 어떤 테마냐 할 것 없이 가리지 않고 말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옛길을 걷는 것도 좋아해요. 그런 제가 이번 여행 초대장을 받고는 조금은 민망하기도 했어요. 이 여행지를 못 가봤던 이유는 순전히 제 게으름 때문이기도 하거든요. 제 방 커다란 지도보관함에 박경리 작가가 만든 지도는 하나도 없었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요? 글쎄요. 딱히 그럴싸한 대답을 드릴 수는 없을 것 같군요. 다만 말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적이 있지 않나요? 유명한 여행지지만 정작 나는 가보지 못했던 여행지가 있을 겁니다. 하여튼 이번 여행의 시작은 부끄러움과 설렘으로 시작됐습니다. 

아, 혹시나 해서 말해둬야겠군요. 이번 여행은 도보여행이었답니다. 자동차 여행도 좋기야 하지만 전 걸어서 여행하는 걸 더 좋아하거든요. 게다가 기억에 남을 여행을 하려면 아무래도 달리는 것 보다는 걷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아직 이 여행을 하지 않은 분이 있다면 걸어서 여행할 것을 권합니다. 저보다 먼저 여행을 했던 분이 있더라도 다음 여행은 걸어서 해보는 게 좋겠네요. 저런. 인상을 찌푸리는 걸 보니 도보여행이 힘들까봐 걱정되나요? 여행지에 따라 여행 수단이 다 다르기 마련인데 굳이 힘들게 걸으면서까지 여행을 할 필요가 뭐가 있느냐 이 말씀이죠? 그래도 도보여행이 힘들고 시간은 많이 걸리긴 해도 기억에 오래오래 남는답니다. 씽씽 달렸을 때는 감히 엄두도 못 냈던 것들을 할 수 있지요. 보고, 듣고, 향기를 맡고, 만질 수도 있으며, 운이 좋으면 싱그러운 과일도 따 먹을 수 있답니다. 에이. 천천히 달려도 할 수 있지 않느냐고요? 뭐 그렇게까지 딴죽을 거신다면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 지도를 만드신 분들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야 지도를 보면서 슬슬 여행하면 금방이라지만 작가가 여행지도 하나를 만들기까지는 생각지도 못할 고통과 노력이 존재한다는 건 다들 아실 겁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여행을 하는 사람도 지도를 만든 사람의 노력만큼 최선을 다해서 여행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좋은 여행길이라면 천천히 걸으며 작가가 왜 이런 지도를 만들었을지 생각해보면 될 거에요. 

거 참. 이번 여행길은 어땠느냐고요? 길이 험하거나 멀지는 않더군요. 詩 여행 치고는 길이 곧고 반듯해서 보이는 길만 곧장 따라가면 됐거든요. 그렇다고 무턱대고 쉬운 길이겠거니 지레 짐작했다간 큰 코 다칠 수도 있답니다. 박경리 작가의 유고 시집인 이 지도를 보면서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만 주목했다가는 너무 일찍 도착해서 여행의 참 의미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거든요. 쉬엄쉬엄 쉬었다 가세요. 어떻게 보면 박경리 작가의 전기 여행이기도 한 이번 여행은 둘러봐야 할 곳이 네 군데나 되니까요. 순차적으로 ‘여기는 어떻고 저기는 어땠어요.’라는 식의 재미없는 말들은 늘어놓고 싶지 않네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이번 여행의 제목이랍니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이번 여행의 의미는 제목 안에 모든 것이 숨겨져 있답니다. 사실 저는 이 제목에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렸답니다. 운동화와 배낭이 해질 때까지 여러 번 여행을 해야만 했어요. ‘뭐 그리 어려운 말도 아닌데.’라고 중얼거리는 여러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네요. 제 말이 엄살이 아니란 걸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우선 ‘홀가분하다’라는 길은 시작부터가 힘이 들었답니다. 

모진 세월 가고 /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까분하다

- 옛날의 그 집 中
 
가진 것이 많다 하기는 어려우나 / 빚진 것도 빚 받은 것도 없어 홀가분하고

- 천성 中

죽음을 앞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홀가분하다는 말이 말의 겉옷과는 달리 무겁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녀의 삶을 더듬어 보는 건 절대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이 말입니다. ‘홀. 가. 분. 하. 다.’라고 말하는 작가의 얼굴 표정을 상상할수록 작가의 ‘삶과 죽음에 대한 긍정의 길’에 어떻게 도착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습니다. 작가와의 ‘57’이라는 나이 차이의 강을 어떻게 건널 수 있을까 겁이 났던 거지요. ‘백내장 수술을 하고, 치유가 안 된다는 황반 뭐라는 병에 걸려 한쪽 눈이 초점이 맞지 않아 곧잘 비틀거려도 억울할 것 하나도 없다.’는 작가의 말은 얼얼했고, 걸음을 멈추게 했습니다. 이내 ‘남보다 더 살았으니 당연하다.’는 말은 땅바닥에 저를 털썩 주저앉혔습니다.

속박과 가난의 세월 /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 산다는 것 中

작가가 이 지도를 만들게 되기까지 정말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나봅니다. ‘그런 세상은 처음이었다 / 악은 강렬했고 천하무적이었다 / 아 참, 그 얘기는 / 저승에나 가서 풀어 놔야지 / 그 끔찍한 사실들을 측천무후인들 믿을 것인가(어머니의 사는 법 中)’를 보며 조금은 짐작할 수 있나요? 그래서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는 반복의 울림은 컸습니다. 그때서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작가가 길의 끝에서 홀가분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를 말이지요. 놀랍게도 그렇게 말하는 작가 옆에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지만 젊은 날에는 보이지 않았던 그 청춘의 길을 걷고 있는 내가 보였습니다.

‘홀가분하다’의 길로 가기 위해서는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라는 길을 반드시 통과해야 했답니다. 실은 이 길을 갈 때 무척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나네요. ‘홀가분하다’가 저 너머 보이긴 하는데 거기까지 갈 수 있는 길의 종류가 너무 많더라 이 말입니다. 어떤 길로 가야하는지 몰라서 우물쭈물 하고 있는데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길옆 그 많고 많은 길 중에 유난히도 밝은 길 하나가 보이는 겁니다. 그 길의 이름은 ‘의연함’이었습니다. 홀가분하기까지 작가는 수많은 ‘버림’의 길을 지나왔을 테고 부단한 자기 초월의 과정 속에서 ‘의연함’이라는 길을 만들 수 있었던 거 아닐까요? 의연함으로 가는 길의 중심에는 ‘글’이라는 길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책상 하나, 원고지 하나, 펜 하나를 벗 삼으며 걸어왔던 그 길 말입니다. 

결국 시간 따라 쌓이는 것은 글줄이나 실린 책이다 //
벼개에 머리 얹고 곰곰이 생각하니 / 그것 다 바느질이 아니었던가

- 바느질 中
 
그러나 내 삶이 / 내 탓만은 아닌 것을 나는 안다 
어쩌다가 글 쓰는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고 / 고도와도 같고 암실과도 같은 공간
그곳이 길이 되어 주었고 / 스승이 되어 주었고 / 친구가 되어 나를 지켜 주었다

- 천성 中

네. 그렇답니다. 제가 여행했던 ‘의연함’이란 길은 작가가 바느질을 하듯 한 땀 한 땀 기워나갔던 길이었네요. 인생의 갑작스러움에도 결코 소란스럽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행길에 목이 말랐던 건지 아니면 작가의 의연함에 숙연해져서 목이 메어왔던 건지 하여튼 저는 물을 마셨답니다. 벌컥벌컥. 물을 마시다 문득 만약 제 인생의 지도를 만든다면 어떤 지도가 나올지 궁금했어요. 온몸 가득한 먼지 짜내고자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았답니다. 26년 동안 대답은 않고, 묻기만 줄곧 해왔던 나에게 스스로 대답을 해봐야 할 것 같았거든요. 이쯤에서 그래야만 할 것 같았어요. 허허. 마침내 터져버린 선홍빛의 붉은 외침이 안개를 걷어 내기 시작하고 숨 막히는 안개사이 나무 한 그루가 보였어요. 믿음의 나무였답니다. 제가 그동안 인생을 보려고만 했었나 봅니다. 인생은 ‘보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인데 말입니다. 몰랐던 거죠. 인생은 두 눈으로 보는 게 아니란 걸. 오히려 두 눈을 감아야 한다는 걸. 할 수 있는 온 힘을 다해 두 눈을 감아야 한다는 걸. 그리고 느껴야 한다는 걸.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느낌을 ‘믿음’으로 채우는 일이란 걸 왜 지금까지 몰랐을까요? 

다만 절실한 것은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 그 절실한 것은 / 대체 무엇이었을까 //
행복…… / 애정 …… / 명예 …… / 권력 …… / 재물 ……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
그러면 무엇일까 / 실상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바로 그것이 / 가장 절실한 것이 아니었을까 //
가끔 / 머릿 속이 사막같이 텅 비어 버린다
사물이 아득하게 멀어져 가기도 하고 / 시간이 / 현기증처럼 지나가기도 하고 //
그게 다 / 이 세상에 태어난 비밀 때문이 아닐까

- 비밀 中

전 지금도 인생이란 ‘이유 없음의 실타래를 푸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답니다. 작가가 말한 비밀과도 어느 정도 맞닿아 있지 않나요? 저는 그 비밀이 ‘믿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느껴야만 하는 천형(天刑)으로 인생을 볼 수 있게 만드는 힘. 그 보이는 것들을 통해 다른 것들을 보게 하며, 다르게 보이는 것들을 통해 인생을 느낄 수 있게 하는 힘 말입니다. 물론 살면서 어렴풋이 이 비밀을 눈치 챘던 것 같기도 합니다. 항상 ‘오늘도, 여전히, 끝없이, 아무도 모르게, 이 힘 속에서 이 힘을 의심하고, 이 힘을 믿어야 하며, 이 힘을 믿으며, 이 힘 속에서’를 반복했거든요. 참 다행인 것은 이런 반복의 간극에 놓였을 때 이번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네. 이제 여행의 끝에 다다랐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때가 궁금하다고요? ‘참’을 만났을 때입니다. 네. 참 말입니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의 ‘참’이 탁 걸리더란 말입니다. 발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참’은 작가가 정말 홀가분했는지 한 번만 더 생각해보라고 타일렀습니다. 그렇게 ‘참’에 담긴 의미를 찾기 위해 ‘작가의 어린 시절, 말년의 인생, 가족에 대한 기억, 세상에 대한 경고’의 길을 걸었습니다.

백발이 되어 / 이제 겨우 겨우 당도하니 / 당신은 아니 먼 곳에 계십니다 
절절히 당신을 바라보면서도 / 아직
한 발은 사파에 묻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 우주 만상 속의 당신 中

내 육신 속의 능동성은 / 외친다 자꾸 외친다 / 일을 달라고
세상의 게으름뱅이들 / 놀고먹는 족속들 / 생각하라
육신이 녹슬고 마음이 녹슬고 / 폐물이 되어 간다는 것을
생명은 오로지 능동성의 활동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밤 中

어머니 생전에 불효막심했던 나는 / 사별 후 삼십 여 년
꿈속에서 어머니를 찾아 헤매었다 (생략)
꿈에서 깨면 / 아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
그 사실이 얼마나 절실한지 / 마치 생살이 찢겨 나가는 듯했다
불효막심했던 나의 회한 / 불효막심의 형벌로서
이렇게 나를 놓아주지 않고 / 꿈을 꾸게 하나 보다

- 어머니 中

사실 ‘홀가분하다’와 ‘참 홀가분하다’의 차이를 발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참’은 어차피 ‘홀가분하다’의 길과 닿아있기 때문입니다. ‘홀가분하다 홀가분하다’ 외치면서도 아직 한 발은 사파에 묻고, 스러져 가는 육신이라는 틀 안에서 일이 보배라고 외치며 어머니를 그리워했을 작가의 ‘참’은 ‘한(恨)’의 다른 말처럼 느껴졌답니다. 작가의 ‘한(恨)’을 들여다보는 건 고통이 우리의 삶의 일부라는 걸 깨닫게 해줬습니다. 작가는 우리에게 절대 홀가분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아직은 우리가 버릴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지요. 버리고 버리다가 그 버림이 채움이 될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살아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답니다. 

배고픈 새들 짐승들 / 그림의 떡, 그림의 떡이라 / 아아 풍요로움의 비정함이여

- 까치설 中

밀렵꾼 손목 부러트리고 / 새들 지켜 주며 살고 싶어

- 연민 中 

소비가 왕인 정경 합작의 괴물을 / 그 누가 퇴치할 것인가
천하무적의 폭군이 지나간 자리엔 / 영세민의 수만 늘어나고
얽히고설킨 이른 봄 / 연못의 맹꽁이 알처럼 파산자가 떠돈다

- 소문 中

이어 작가는 확신을 버리라고 말하더군요. ‘옳다는 확신이 죽음을 부르고 있다 / 일본의 남경대학살이 그러했고 / 나치스의 가스실이 그러했고 / 스탈린의 숙청이 그러했고 / 중동의 불꽃은 모두 다 / 옳다는 확신 때문에 타고 있는 것이다(확신 中)’ 물론 그 이유도 말해주고 있답니다. ‘세상에는 결론이 없다 / 우주 그 어디에서도 결론은 없다 / 결론은 삼라만상의 끝을 의미하고 / 만물은 긴장 속에서 존재한다(모순 中)’ 그러면서 슬쩍 작가는 우리에게 한 번 더 버리라고 말합니다. ‘후함으로 하여 / 삶이 풍성해지고 / 인색함으로 하여 / 삶이 궁색해 보이기도 하는데 / 생명들은 어쨌거나 / 서로 나누며 소통하게 돼 있다(사람의 됨됨이 中)’ 라고 말입니다. 나눔과 무소유로 이어지는 ‘버림’은 ‘마음’으로써만 가능합니다. 

마음 바르게 서면 / 세상이 다 보인다 
빨아서 풀 먹인 모시 적삼같이 / 사물은 싱그럽다 

- 마음 中
 
드디어 목적지가 보이네요.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의 제목은 ‘마음’으로 요약할 수 있었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마음이 ‘씨앗’과도 같다는 것을 자주 잊는다는 사실입니다. 씨앗이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애초에 씨앗을 심었던 나 자신에게 달린 거 아닐까요? 물을 주고, 햇빛을 쐬게 하고, 성심성의껏 보살피지 않으면 씨앗은 자랄 수 없습니다. 또는 자라기는 하되, 볼품없는 모습이 되기도 하죠. 결국, 인간이 행복한지 불행한지도 씨앗을 잘 자라게 하느냐 아니냐와 같은 이치인 것 같네요. 눈에 보이지도 않고 형체도 없는 인생이라지만, ‘마음’이란 재료를 손으로 오물조물 주물러서 원하는 것을 만든 다음, 붓으로 물감도 입히면 마침내 우리는 ‘인생’이라는 완성품의 실체를 볼 수 있게 된답니다. 

이번 여행은 묘하게도 죽음을 생각하게 만들었던 여행이었어요. 떠나는 그날 나도 정말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얘기죠. 이 여행 지도를 만든 작가의 말에는 수긍이 가지만 아직 제 인생이 홀가분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살아가면서 더 가벼워질 수 있겠죠? 훗날 여행했던 이 길이 조금은 변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 길에 이런 꽃이 피었었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 할 수도 있겠네요. 여러분도 어서 여행을 떠나보세요. “말씀하셨던 길은 아니더군요.”라고 핀잔을 주셔도 딱히 드릴 말씀은 없답니다. 허허. 열 내실 필요는 없답니다. 다만 여러분은 저와 다른 길에 올랐을 뿐입니다. 매 여행마다 새로운 길이 펼쳐지게 될 겁니다. 여행 팁을 하나 드릴까요? 자, 이리로 오세요. 더 가까이 말입니다. 귀를 갖다 대셔야죠. 여러분은 여행을 하면서 ‘길’이 될 겁니다. 웃으시는 걸 보니 뭔 말인지 아시겠다고요? 네. 여행 지도를 만든 작가 분은 따로 계시지만 여행을 시작한 이상 우리가 곧 다른 사람의 ‘길’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말이죠. 혹시 아나요? 나중에 다른 이들이 여러분의 길을 여행하게 될 수도 있잖아요. 모든 게 여행이 될 수 있다는 제 말 잊지 않으셨죠? 다른 이에게 이 여행 지도를 선물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자 이만하면 이번 여행이 저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잘 아시겠습니까? 

어, 근데 저게 뭐죠? 이게 길의 끝이 아니었나요? 하하. 길의 끝에 또 다른 길이 있었군요. 박경리 작가가 만든 다른 여행 지도네요. 그럼 저는 또 걸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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