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영광도서 0 5954

 

문명인- <초원의 바람을 가르다>를 읽고

                                                                                         청주시 채혜나

 

  

 

그날은 내 성적표를 받은 날이었다. 숙제하느라 정신없는 나에게 난데없이 나눠준 성적표는그리 현실적이지 못했다. 수학공식이 잔뜩 눌러붙은 머릿속에 새로운 숫자가 추가되었다.

 

나는 그 때 책상에 엎드려 내 등을 토닥거리는 친구들의 위로를 받았다. 패배자. 내 스스로 붙인 주홍글씨였다. 나름대로, 적어도 반에서 노는 축에 드는 저 아이보다는 잘 나왔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 아이는 내 머리 꼭대기보다 높았다. 나는 학생이다. 공부가 곧 인생인 시기이다.

 

엄마가 놔두고 외출나가신 사이 이 책을 보았다. 아름다웠다. 이 책이라면 빨려들어가도 좋을 듯 하였다. 당장이라도 사진 속에 풍덩 뛰어들어 말을 타고 달리며 바람냄새를 맡고 싶었다. 발을 구를 정도로 안달을 부리는 걸 부추겼던건 내 주홍글씨였다. 패배자.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저곳은 나를 얽매이던 모든 것은 이슬처럼 흔적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아아, 못난 생각이다. 비록 나 스스로 자청했던 건 아니지만 문명의 혜택에 뼈가 삭을 정도로 푹 즐기고 있던 나였다. 그런데 문명이라는 것이 나에게 날카로운 끝을 돌리자 허겁지겁 돌아온 탕자처럼 아버지 품에 가겠다고 이런다. 

 

성경의 이야기다. 두 아들을 가진, 넓은 땅의 주인인 아버지가 있었는데 성실한 첫째아들에 비해 둘째아들은 방탕하기 그지없었다. 허황한 바람이 들린 둘째아들은 아버지께 유산을 미리 달라 했고 그 돈은 예상대로 알게 모르게 도시에게 모두 빼앗기고 말았다. 아들은 마지막에 용서를 빌 생각으로 아버지께 갔는데 아버지는 기쁘게 맞으며 돌아온 아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다. 나는 돌아온 탕자이고 초원, 즉 자연은 아버지다. 내가 아버지의 재산을 회색 숲에 바쳤지만 아버지는 돌아온 나를 안아주실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에 고개는 점점 숙여져 땅속 에 파묻을 지도 모른다. 비단 그런 자식이 나 하나뿐이겠는가. 회색숲의 매혹적인 미소에 헤어 나오지 못하는 자식들은 얼마나 많고. 떠난 아이들이 만든 상처에 아버지의 가슴은 얼마나 부르르 떨릴까.

 

그런데 난 아직 확신하지 못한다. 과연 내가 아버지 밑에 얌전히 있을까? 기름지고 화려한 음식을 떠올리며 농사꾼의 전형적인 식사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신영길씨는 훌륭한 분이라 생각한다. 그는 초원에선 편리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명의 때를 벗겨내기 위해 뜨거운 물에 몸을 불리고 거친 때수건으로 빡빡 미는 시련을 버티어 내 마침내 그 아름다운 초원의 푸르고 생기 그 자체를 마음에 담고 그 차분한 황홀함을 우리에게 전하였다. 그는 아버지와 자식의 편지배달부같은 사람이고 문명인이면서 언제든지 그 껍질을 벗을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소위 나같은 사람들이라면? 우린 거의 문명에게 입양된 자식이나 마찬가지이다. 힘들게 친아버지와 만나 기쁨의 눈물을 흘리지만 결국 양아버지에게 돌아간다. 양아버지가 행하는 친아버지와 첫째아들의 탄압에 작은 소리로 항거하다가 눈빛 한번에 움찔하며 꼬리를 만다. 이른바 피보다 더 진한 관계라는 것이다.

 

문명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만약 문명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나무 위에서 끽끽 거리며 바나나나 따먹고 있었을 것이다. 또 자연도 자식에게 혹독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모든 초원의 생물들은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생물들은 자연에게 감사할 줄 모른다. 패륜이 아니다. 그저 그들에겐 자연이 조금이든 많이든 주는건 당연하고 그들 또한 먹을 만큼만 먹는게 당연할 뿐이었다. 우리는? 지금 우리는 부탁을 무시하고 애원을 뿌리치는 사회적인 것부터 각종 오염으로 하나뿐인 생명을 사라지게 하는 걸까지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누가 봐도 자연이 훌륭한 부모라는걸 알 수 있다.

 

내가 모순되게 말한다 말할지도 모른다. 나는 문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면서 문명을 비판하고 있다. 나는 단지 문명인이면서 자연을 지향하고 있을 뿐이다.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았다. 자연의 품이 얼마나 행복한지 느꼈다. 모든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산다. 고로, 우리는 지금 당장 양아버지를 설득하고 친아버지와 정답게 악수를 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행복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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