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아직은 오를 계단이 많이 있는 이들에게- <마지막 강의>를 읽고
부산시 해운대구 좌동 박근택
야간 자율학습을 하기 위해 저녁식사를 하고 친구들과 쉬는 시간을 보내고..
아직 해가 저물지 않아 따사로운 햇살 아래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내가 교실로 막 가려던 참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그리고 내가 최고라고 자부하던 값싼 나의 핸드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발신자는 ‘누나’.
“여보세요?”
“택아, 놀라지마라, 아빠 교통사고 당했다.”
“...”
도대체 놀라지 마라는 말은 무엇 때문에 한 것일까. 그 소식을 듣고도 안 놀라면 그게 무슨 아들인가. 어쩔 줄 몰랐지만 나는 누나에게 물어봤어야 했다. 생사여부를.... 하지만 난 다르게 물었다.
“어디 다치셨어?”
1초 안되어 답변이 돌아왔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겁을 먹은 탓인지 그 시간이 한없이 길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아주 다행히, 아주 다행히 그나마 괜찮은 소식이 들려왔다.
“왼쪽 다리 어디를 다치셨다는데...”
2002년 4월 1일.
대한민국에서 월드컵이 열리던 해. 그리고 내가 고등학교 3학년으로서 수능시험을 준비하던 해. 그리고 유일하게 1년에 한번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만우절. 거짓말처럼 아버지는 출장을 가시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야간 자율학습을 하지 않고 가려면 학원 수강증이나 기타 사유가 필요하고 선생님께 최대한 약한 모습을 보이며 굽신거리는 게 그 당시의 모습이었지만, 나에게는 선생님을 찾아갈 시간조차 없었다. 반장에게 말을 하고 나는 듯이 내려왔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쏜살같이 집으로 왔다가 바로 병원을 향했다.
누군가의 죽음, 누군가의 불치병, 누군가의 난치병, 누군가의 사고, 누군가의 횡재, 누군가의 합격... 뉴스나 혹은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많이도 들어오던 소식이지만, 단 한번도 나의 일이라 여겼던 적은 없었다. 그렇게 보통의 삶을 살고 있었는데, 아뿔싸. 가벼운 사고도 아닌 무려 1년을 병원에서 지내야 하게 되는 이번 사고의 주인공이 바로 나의 아버지가 된 것이다.
복권 1등에 당첨되어 수십억 수 백 억원을 손아귀에 넣게 되면, 과연 실감이 날까. 그저 말없이 버스를 기다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노랬다. 아찔하게 빈혈기마저 느껴졌다. 푸른 하늘이었는데, 나에게는 노랗게만 보였다. 여전히 실감은 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사고라니. 우리 아버지에게.....
한걸음에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실 앞에 써져 있는 이름 석 자. 분명 우리 아버지 성함이다. 태어나서 남자가 거쳐야 할 수술 때 말고는 거의 병원에 와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더욱 불안과 초조함이 앞섰다. 그리고 병실 문을 열었다.
회사 직원 분들이 계셨다. 그리고 다시는 보기 싫은 하얀색 병원용 침대 위에 누워서 군데군데 붕대를 감고 있는 사람은 당연 우리 아버지였다. 가까이 다가갔다. 일단 손을 잡고 살펴보았다. 온데 간데 피투성이에 입은 피로 가득하여 모든 치아가 부러진 듯이 벌겠다. 얼굴에도 여기저기 긁힌 흔적에 피가 묻어 있었고 왼쪽 무릎에는 아주 무거운 추를 달아놓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좌측 다리가 그야말로 박살이 나서 수축된 근육을 당기기 위해 그 무거운 추가 달려 있었단다. 의사 선생님이 무어라 했었는지 여쭈었더니 아버지께서는 6주 정도 걸릴 것이란다.(물론 6주는커녕, 6개월도 넘는 기간으로 늘어나긴 했지만) 우와! 천만 다행이네요!라고 말씀 드렸던 바, 그래, 그렇게 대답하면 됐어. 긍정적이라 다행이구나! 라며 웃음을 보이셨다. 결론적으로는 갈비뼈가 3개 부러지고 오른쪽 다리 타박상에 왼쪽 대퇴부는 무려 12조각으로 산산조각 났다.
엄마는 누나와 나의 반찬을 준비해주시고는 새벽에 병원으로 가셔서 아버지를 간호하셨고, 집과 병원을 오가시며 수백일간을 병원의 그 좁은 의자에 누워 지내셨다. 언제나 6시에 전화를 하여 우리를 깨우고는, 또다시 아버지 간호를 위해 힘든 하루를 시작했다. 아버지의 고통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수술을 몇 번이나 하고, 전신마취를 할 때에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유언 아닌 유언을 남기기도 하셨다. 악몽 같은 1년. 하지만 수년이 지난 지금, 아버지는 누구보다 산을 좋아하시고 매일같이 어머니와 저녁에 운동을 가신다. 과연 일어설 수나 있을까 의심하던 다리였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다니신다. 지금에 와서야 정말 하늘에 감사하다는 마음을 내비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솔직히 아직도 아버지께서 사고를 당하셨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 단 몇 초 만에 일어난 일이 몇 년간 지속될 줄은 더더욱...
언젠가 인터넷 최고의 동영상 천국 유투브에서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던 영상이 하나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길래 그렇게 인기가 많을까, 검색해보았더니 췌장암을 선고받은 시한부 인생을 사는 한 교수가 자신의 학교에서 ‘마지막 강의’를 하였다고 나와 있었다. 아직 50도 되지 않은 나이. 그리고 결혼을 늦게 하여 학교도 가지 않은 어린 자녀들 3명. 그리고 6개월 정도밖에 살지 못한다고 못 박은 의사의 진단.
‘마지막’이라는 것은 언제나 의미가 남다르다. 누군가를 마지막으로 볼 수 있다는 것.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다는 것. 그 마지막이라는 것 때문에 한정된 상품의 희소가치가 엄청나게 올라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인생이라면, 삶이라면, 삶의 마지막이라면, 과연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남은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한참 자기계발에 열중해 있던 터라, 그리고 이런 소중한 영상들은 결코 놓치기가 아까웠기에 바로 그 자리에서 동영상을 보았다. 아쉽게도 한글 자막이 입혀져 있지 않은 상태였기에 짧은 영어 실력으로 수많은 부분을 놓치면서도 끝까지 보았다. 그의 몸 안에 존재하는 병에 대한 소개와 함께 한바탕 관객을 웃게 만드는, 그 누구보다 자신이 건강하다는 확신아래 팔굽혀펴기를 하는 그의 모습에서 희망을 볼 수 있었다. 중간에는 여느 교수님과 다르지 않게 아주 평범하게 강의를 잘 해 나갔다. 정말 재치 있고 유머가 넘치며 열정적인 분이 아닐 수 없었다. 강의 중간 중간에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내고 단 한시도 웃음을 잃지 않았기에 정말 그가 췌장암으로 고통 받고 있는 환자인지 되묻게 되었다. 좋은 말씀 감사히 잘 들었다며 그가 아프다는 사실을 서서히 잊어갈 때 그의 아름다운 아내를 위한 케이크가 무대 위로 나왔다. 사랑하는 남편과 보낼 수 있는 마지막 생일, 사실 하루 지났었지만 500여명의 관중들이 박수를 치며 함께 Happy birth day축가를 불러줄 때는 나 또한 눈물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남편을 꼭 껴안고 입을 맞추며 고마움을 표했다. 누가 봐도 최고의 생일이 아닐 수 없었으리라....
시간이 얼마간 지난 후, 마지막 강의를 책으로 다시 접하게 되었다. 다행히 부록으로 한글 자막이 입혀진 동영상 CD가 있어서 다시 한번 그때의 객석으로 돌아가 앉을 수 있었다. 그리고 더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온 췌장암이라는 진단. 그는 물론 그의 아내도 믿을 수가 없었다. 40대 중후반의 나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세 명이나 있는 아버지로서 수긍할 수가 없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수차례의 검사 결과 시간이 흘러 다른 곳으로까지 전이되었다는 결과까지 접하게 되었고 6개월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다. 울었다. 아내와 함께 울었다. 이 쯤 되면, 누군가가 자신이 죽음에 임박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세워놓았던 원대한 꿈, 갚아야 할 은혜, 만나야 할 사람, 주변의 친구들, 그 모든 것들이 얼마간의 시간만 지나면 다 필요 없게 되기에... 나라고 다를 수 있을까. 지금 당장 6개월만 살 수 있다는 진단을 받는다면... 과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랜디 포시 교수는 달랐다. 그는 평생을 낙관적으로 살아왔으며, 진단을 받은 당시 또한 낙관적인 사람이었다. 그가 그렇게 낙관을 했기에 충분히 비관을 하고 모든 것을 놓아버릴 수 있는 그 시점에서 그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즐겁게 남은 삶을 살아가기로 결정을 했다. 그리고 추억을 많이 남기지 못했던 그의 아이들을 위하여 이 ‘마지막 강의’를 하게 된 것이다. 순식간에 일어나는 어떤 사고가 아니라 정리할 시간을 주는 암이라는 병이기에 그는 차라리 고맙다고 말한다. 아무 준비도 못했는데 교통사고나 등의 이유로 갑자기 생을 마감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
자신의 무서운 병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위로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릴 적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여러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그는 한마디로 말하면 장난꾸러기이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더욱 그로 하여금 장난을 치게 놓아두었다. 그러했기에 그가 더 훌륭한 장난꾸러기가 될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무엇이든 호기심이 가면 가서 만져보아야 했고, 자신의 깨끗한 방에 무언가 그리고 싶다며 아버지에게 허락을 받고 나서 그는 방에 갖가지 그림을 그렸다. 근의 제곱근 식을 포함하여 엘리베이터, 그리고 잠수함을 관찰하는 잠망경까지도 그렸다.
보통 이런 일은 어린 나이일 때만 하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사라지게 마련인데, 그는 오히려 더 심해졌다. 한번은 무중력 상태를 느끼고 싶다면 NASA에 갔던 참에 학생들과 함께 무중력 실험실에 들어가기도 했고, 디즈니랜드에 한번 가 보고는 자신이 직접 디자인을 하고 싶다며 떼를 쓰기도 했다. 유명을 다리하기 전까지 근무하던 카네기 멜론 대학도 처음에는 떨어졌지만 결국은 자신의 주 무대로 만들어버린, 한다면 하는 멋진 사람이다. 더구나 마지막 강의를 하게 된 것도 아내 재이와의 많은 갈등이 있었지만(강의를 준비하기 위한 노력이 너무나 힘든 것을 알기에) 결국 그가 진정 원하는 것이 그런 자리에서 자신의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말을 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아내를 설득시켰고 아내를 관중으로 두고 세계 최고의 ‘마지막 강의’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갈수록 넥타이들이 많이 팔리고 있다. 정장 또한 불티나게 팔리고 있으며 의자, 책상도 판매율이 증가하고 있다. 많은 노동을 기계가 대신하고 있으며, 사람이 하는 노동을 보면 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밥을 먹는다면 분명 누군가는 그 음식을 준비해야 하고, 또 누군가는 음식찌꺼기도 치우고 설거지도 해야 하게 마련이다. 결국 세상은 시소와 같다. 누군가 올라가면 누군가 내려가야 하고, 또 누군가 내려가면 누군가는 올라가야 한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속담이 잘 말해주듯, 그 무엇에도 귀하고 천한 것이란 없다. 다만 우리의 생활 속에서 서서히 귀하고 천하다고 인식되어질 뿐. 대학에서 전공까지 잘 마무리 지어 놓고도 안정적인 직장을 얻기 위해 수년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에게 어릴 적 꿈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안정적인 수입만이 그들의 커다란 목표가 되었다. 아무리 경제가 힘들고 세상이 어려워진다 해도 단 한번 사는 세상이라면 굳이 남들과 같이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유명한 한 장면인, 학생들이 책상위로 올라서는 것처럼-우리가 바라보는 시야를 약간만 다른 각도로 조정한다면 전에는 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아무리 정보와 자원이 고갈된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 개척되지 않은 곳이 무수히 많고 분야 또한 넘쳐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이루는 것이다. 어릴 때 이런 꿈이 있었지, 그땐 그게 하고 싶었지-이런 망상으로 술안주로만 삼을 것이 아니라 직접 가서 그것을 해 보는 것,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보는 것, 이것이 단 한번밖에 없는 생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일이며 삶의 마지막 계단에 서 있는 사람이 남은 사람들에게 해주는 마지막 이야기이다.
어디에도 비할 바 없이 절망스러운 죽음을 앞두고도 항상 입은 U자를 유지하며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 누구보다 쾌활하고 유쾌한 목소리로 사람들의 가슴 속 깊은 무언가를 요동치게 하는 훌륭한 강의를 해주신 랜디 포시 분의 명복을 빌며, 그리고 이 세상의 육체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으면서도 감사할 줄 모르는, 늘 시무룩하게 있으며 쉽게 꿈을 포기하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목소리를 듣고 힘을 내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Chapter
- 제19회 영광독서 감상문 현상공모 당선자 발표
- 최우수상(일반부) - 안종열 / 경남 양산시 <천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고
- 최우수상(학생부) - 이지선 / 남성여고 2학년 <똥 치우는 아이>를 읽고
- 우수상(일반부) - 김세진 / 서울 동작구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 하다>를 읽고
- 우수상(학생부) - 채혜나 / 충북 청주시 <초원의 바람을 가르다>를 읽고
- 장려상(일반부) - 김혜인 / 부산 남구 <빛>을 읽고
- 장려상(일반부) - 박근택 / 부산 해운대구 <마지막 강의>를 듣고
- 장려상(일반부) - 서영주 / 부산 부산진구 <즐거운 나의 집>을 읽고
- 장려상(학생부) - 기하야진 / 부산 북구 <스무살, 도쿄>를 읽고
- 장려상(학생부) - 박선빈 / 남성여고 2학년 <연을 쫓는 아이>를 읽고
- 장려상(학생부) - 박해지 / 남일중학교 1학년 <노란 코끼리>를 읽고